대법 판단에도 검찰 “자폐 아동 사례…차이 있어”
분노한 교원단체…오는 30일 탄원서 제출 앞둬

대법원 전경.  [사진제공=뉴시스]
대법원 전경.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검찰이 웹툰작가 주호민씨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하자, 교사들 사이에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최근 자녀 소지품 등에 몰래 넣은 녹음기를 통해 수집한 내용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음에도 녹음파일이 증거로 인정돼 교사들의 항의가 더욱 거센 상황이다. 여기에 학부모단체가 상반된 의견을 표명하며 ‘몰래 녹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19일 초등교사노동조합(이하 교사노조)에 따르면, 교사노조는 지난 16일부터 오는 29일까지 동의서를 모은 뒤 오는 30일 수원지법에 제출할 방침이다.

이번 탄원서는 해당 특수교사 선처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행위에 대해 엄벌을 촉구하는 내용이 기본 뼈대가 된다.

혼잣말까지 신경써야 하는 세상...교사들 반발 거세

탄원서에서 교사노조 정수경 위원장은 “최근에는 통상 원칙과 같이 교실 내 언사에 대해서도 마땅히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몰래 녹음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대법의 판결까지 있었다”며 “그런데 이에 반하는 특수 선생님의 징역 10개월 구형 소식은 저희를 다시 좌절케 했다”고 했다.

판사를 향해서는 “지난 4차 공판에서 3시간에 달하는 몰래 녹음 내용이 공개됐을 때 해당 선생님 안위가 염려됐다”며 “허나 그것은 불법으로 당한 녹음일지라도 학대의 목적이 없었음을,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제발 들어봐달라는 피고 측의 간절한 호소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 사안이 비록 학생의 마음에 서운함을 남겼을지라도 혹자에게는 칭송받기도 하며, 교직에 20여년 헌신해 온 선생님을 선처해 주시기를 탄원드린다”며 “그리고 교실 내 몰래 녹음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엄중한 사법적 판단을 내려 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해 8월 주씨의 아내는 아들 측에 녹음기를 숨겨 수업 내용을 몰래 녹취한 뒤 교사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아동학대)로 고소했다.

법정에서 공개된 녹음파일에 따르면 A씨는 수업과정에서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진짜 밉상이네”, “도대체 맨날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학생이 집중하지 못해 혼잣말로 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이 진행되던 중 지난 11일 아동 학대 범죄에 대해 자녀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를 통해 수집한 내용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로 인해 지난 15일 결심공판에서는 해당 녹음 파일의 위법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교사의 동의없이 ‘몰래’ 녹음된 파일이다 보니, 증거 인정을 두고 상반된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15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주씨 아들을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특수교사 A씨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했다.

대법원이 최근 자녀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를 통해 수집한 내용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한 것에 대해 검찰은 “해당 판례와 이 사건은 피해 아동이 자폐 아동으로 자기가 경험한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방어 능력이 미약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A씨 사건 1·2심 법원은 녹음 파일의 증거로 인정해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최근 대법원에서 녹음파일에 대한 증거능력에 관한 판결이 선고된 점을 감안해 추가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A씨 측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유죄의 증거가 없는 것은 물론 설령 일부 증거가 인정되더라도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반박한 상태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교원단체-학부모단체 반응 엇갈려

교원단체는 대법원 판단이 나온 당일 학부모 등에 의한 교육활동 무단 녹음 행위와 유포는 명백히 불법임을 밝힌 마땅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교원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학부모들의 무단 녹음에 무방비 노출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교원들은 언제든지 본인의 발언이 녹음되고 유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겪고 있고, 향후 협박 등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로 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교총과 현장 교원들의 탄원 내용을 적극 반영한 결과”라며 “수업 등 교육활동 중 불법 녹음, 유포 행위 등을 근절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이 교실 내 아동학대 여부에 대해서는 몰래 녹음이 아니라 학부모의 교육 참여와 합리적 민원 절차, 교육청의 사안조사 및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 등 합법적이고 교육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교총의 주장이다.

반면 학부모단체는 아동의 행복과 안전이라는 헌법상 가치를 외면한 대법원에 대해 규탄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녹취파일에 따르면 가해교사의 정서학대는 같은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수개월간 반복적으로 저질렀는데, 이는 영혼을 짓밟은 인격살인에 가깝다”며 “대한민국의 양육자들은 어떻게 아동을 보호해야 하는가, 아동들에게 녹음기 조작법을 일찍이 가르쳐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대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판단한 이상, 동법 4조에 따라 해당 녹음파일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따라서 가해교사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해임 처분도 뒤집힐 수 있다. 대법원의 잘못된 판결 하나가 말 그대로 지옥문을 열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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