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br>
▲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강릉 급발진 의심사고. 이 사고로 미처 꽃도 못다 핀 12살 아이가 사망했다. 이름은 이도현. 상훈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냈다. 이제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하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며 눈물을 보이는 이들이다.

억울하게 사망한 도현이를 위해서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급발진 사고’로 표기될 수 있도록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살아갈 희망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단다. 오늘도 그는 차량 결함을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 움직일 것이다. 수없이 흘린 눈물에 충혈된 눈으로 말이다.

거대 제조사를 상대로 한낱 개인이 차량의 결함을 밝혀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내부 자료’라는 이유로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어찌 할 방도가 없다. 급발진 인정 사례가 0건인 이유가 정녕 차량이 완벽해서일까. 완전무결한 전자기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와중, 제조사는 급발진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은 꽁꽁 숨겨둔다. 그래놓고선 개인에게 결함 입증을 하란다. 한술 더 떠 국과수까지 EDR(사고기록장치)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과실이라며 제조사에 힘을 실어준다. 제조사는 가만히 앉아 운전자의 페달 오작동이라 우기기만 하면 되니 참으로 편하다. 피해자만 늘 힘들다.

급발진과 관련해 취재하던 중 제조사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티볼리 에어 차량 관련 브레이크 스위치 다이어그램, 입·출력 다이어그램, 정지등 회로도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늘 ‘내부자료’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절하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나다. ‘저희가 해당 문건은 내부자료라 공개가 어렵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늘 이런 식이다.

고객이 자사 제품을 사용하다 의문스러운 현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정의이자 상식일까. 제품을 제작한 제조사가 차량의 결함을 밝히는 게 빠를까.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가 결함을 입증하는 게 빠를까. 이 질문이 고민 끝에 답을 내릴 만큼 어려운지 제조사에 되묻고 싶다.

제조사가 결함에 대한 입증을 책임지도록 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도현이 법)은 아직도 국회에 묶여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법안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국민의 목숨이 달려있는 이 법안이 한가로이 계류 중인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토록 치열한 어른들의 책임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도현이의 책상 위에는 미처 닿지 못한 편지들이 소복이 쌓여만 간다. 이를 보고 제조사가, 그리고 국회가 조금이라도 느끼는 게 있길 바랄 뿐이다. 부디.

‘항상 긍정적으로 웃어줘서 고마워! 지금은 곁에 없지만, 마음속으로 추억하고 그리워할게. 다시 한번 고맙고, 그리워. 하늘에서 우릴 보며 지켜줘’, ‘나의 의리 있는 친구이자, 축구선수이자, 드러머이자, 유쾌하고 재미있는 도현아. 사랑해’ 도현이에게 남긴 친구들의 편지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