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세이노의 가르침> [사진제공=책짓는 아재]

작년(2023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단연 <세이노의 가르침>이다(국내 출판시장을 대표하는 교보문고나 예스24 등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일단 -연령대가 상당히 높은- 부동의 두터운 팬층과 -저자와 출판사가 경제적 이윤을 포기한 덕분에 가능해진- 엄청나게 저렴한 책값의 덕이 크다.

신국판 736쪽에 7200원

책값의 부분은 참 흥미롭다. 저자 세이노 씨는 엄청난 갑부이다. 그가 인세를 포기한 것은 놀랍지 않다(<세이노의 가르침> 724쪽에 보면 그 배경이 소개된다, “그때부터 가르치는 데 돈을 받지 않는 게 철칙이 된 거야.”). 더욱이 이미 오랫동안 구제나 사회봉사에 힘을 쓴 분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죽고 나면, 인세를 자선단체에 기증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출판사도 이에 부응해야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가 기존에 유통되던 제본값(6600원)에 상응한 가격으로 판매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결국 정가는 7200원으로, 실질 판매가(10% 할인가)는 6480원으로 책정됐다. 심지어 전자책은 무상 공급된다(실은 이미 예전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책의 판형은 신국판(정확하게 말하면 152*223mm)에 쪽수는 무려 736쪽이다. 스타벅스 돌체라떼 Grande 사이즈가 6400원인데,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면 6480원이다. 배송비가 아깝다면 교보문고에 가서 바로드림 서비스를 신청해 10% 할인가로 구매하면 될 것이다. 이건 너무 혜자로운 가격이 아닌가.

물론 출판사 쪽에도 결코 손해가 아니다. 책값을 통한 이윤 확보 대신 출판사 홍보라는 무형의 자산을 얻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신생 출판사가 해외 유명 작가의 신작 판권을 수십억 원의 선인세를 감수하고 가져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출판사를 널리 알리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데이원 출판사는 매우 영리한 선택을 했다(앞서 출간을 의뢰한 오십여 출판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먼저 나서서 책값을 기존 제본 비용에 맞춰 제안한 것이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

내가 책값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는 이게 남다른 모습이라서다. 수많은 부자들이 책을 내고 엄청난 인세를 받아간다. 물론 이는 조금도 잘못이 아니다. 실로 정상적인 선택이다. 이 점은 확실하게 짚어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세이노 씨는 이러한 선택을 거부했다는 점을 나는 주목한다. 그는 확실히 자신의 이름값을 했다. 남들이 믿는(Yes) 것들에 No라고 하고 있지 않나.

아무리 부자라도 최소 수억의 인세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전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실제로 출간 8개월 만에 73만부가 팔렸는데, 이 정도 분량을 시중에 유통되는 가격으로 출간한다고 생각하면, 인세가 십억 이상으로 훌쩍 넘어갈 것이다. 심지어 그는 명예도 거부한다. 그의 얼굴도, 그의 실명도 우리는 모르지 않나.

솔직히 나는 이런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나아가 존경한다. 이런 과감한 선택을 통해 그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 돌체라떼 Grande 사이즈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성공의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 이 정도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봐도 되지 않나? 물론 그렇게 말하기에는 매우 엄격한 코치님이시다. 즉 따스한 힐링 멘토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다.

세이노는 누구인가

세이노는 이십여 년 전, 즉 2000년대 초에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깐깐한 자기계발 코치였다. 말했듯이 그의 이름과 얼굴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문 칼럼에서 소중한 정보를 나누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만든 카페(세이노의 가르침)에 기꺼이 들어가 글을 올리고 상담(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팩트 폭력)을 해줬다.

하지만 원래 세이노 씨는 사업가로서 의류업, 음향기기, 유통업, 무역업 등에 종사해서 천억 대에 달하는 자산을 축적한 부호다. 모든 일을 직접 자신이 다 해보는 가운데 완전히 달통해 -그가 소개한 표현대로- ‘재가 잡힌다’고 하는 수준에 이르는 철저한 사람이다. 그의 모든 글에 꽉 찬 에너지는 이렇게 몸으로 체득한 통찰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글을 쓰고 상담해 줄 때 전혀 돈을 받지 않는다. “평생 다 쓰지 못할 돈을 벌었다. […] 이제는 좋은 일을 하고 싶다.”(724쪽) 그는 남은 생에 좀 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에 힘을 더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 그가 내민 손길에는 채찍이 들려있다. 그의 글은 누가 봐도 꼰대다. 따스한 멘토링을 기대하다가는 정말 큰코다칠 것이다.

따스한 멘토에서 깐깐한 꼰대로

<세이노의 가르침>에 관련한 기사나 리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그중 이데일리 기사(“왜 세이노를 읽는가…라떼의 갈증인가, 호기심인가”)를 보니 마지막 중제가 다음과 같다: ‘달콤한 힐링 가고 독설 돌아와’ 내 판단은 좀 다르다. 오랫동안 독설은 계속 잘 팔렸다. 세이노 이후에는 <언니의 독설>의 김미경이나, 심지어 인문학계의 슈퍼스타 김용옥과 강신주 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독설과 꼰대에 꾸준히 열광해왔다.

외려 힐링은 새로운 현상이었다(전에는 없었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거센 흐름으로서는 사실상 처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트렌드는 점차로 강해졌다. 2011년 종합 1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이고, 20212년과 2013년 종합 1위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며, 2014년 종합 1위는 <미움받을 용기>이다. 이 세 권이 바로 보여주듯 출판계에서 힐링의 주된 자리는 인문학과 에세이다(치유 관련 서적은 그사이 어딘가에서 맴돈다). 2010년대 초반의 이 흐름은 2020년대에 이른 지금에 와서는 더 미분화된 방식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은 힐링과 독설이 -주로 출판과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구성되고, 작동하는- 우리 시대의 정신세계를 거의 양분하고 있다고 본다(독설은 대체로 자기계발에 터 잡고, 인문학에서도 일정 지분을 획득한 상태이다). 그리고 힐링은 애초에 한국의 자기계발에서 주류를 차지한 적이 없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이노에 대한 비판의 상당수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는 소리다.

세이노는 어느덧 칠십에 근접한 어르신이기도 하지만(사실 처음 칼럼을 쓸 때만 해도 오십이 되기 전이었다), 그 이전에 진정성을 가지고 자기의 콘텐츠를 무료로 나누고 있다. 이게 바로 꼰대이다. 그가 말을 다소 험하게 하지 않아도, 그가 강하게 내지르지 않아도, 팩트를 잔인하게 휘두르지 않아도 이미 꼰대이다. 물론 토닥토닥을 비웃을 것만 같은 그의 이런 모습들로 인해, 안 그래도 꼰대를 혐오하는 분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물론 거부는 자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꼰대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따스한 위로와 격려만이 아니라 사물과 사건, 그리고 사람을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스승의 엄격한 지적과 책망이 필요하다. 조훈현에게 엄격한(그러나 속정은 깊었던) 스승 세고에 겐사쿠가 없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의 조훈현은 분명 겐사쿠 사부의 작품이다. 그가 조훈현을 낳았기에 조훈현은 이창호를 낳을 수 있었다. 조훈현은 스승에게 받은 만큼 이창호에게 사랑을 줬다.

<strong>바벨 도서관의 사서</strong><br>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br>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br>나 역시 마찬가지다.<br>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br>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시대착오적인 꼰대질로 보는 접근에 대해서 나는 반대한다. 그의 가르침 모두에 동의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이다. 나는 이런 꼰대가 한 분이라도 더 있어야 우리 사회가 나아진다고 믿는다. 자기 돈(시간) 써가면서 훈계하는 그들이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하다. 힐링 팔이하는 인간들은 한 손으로 등을 토닥거리면서 다른 손으로 돈을 빼간다(모든 힐링 멘토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이들을 경계하라. (다음 편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세이노의 가르침 그 자체를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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