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밝힐 입장이 없다” 답변 거부

   
 

삼성SDI 울산공장 노동자들 “직업성 암, 산재 인정하라”
산재 불승인 받아…삼성SDI는 ‘묵묵부답’
노동자들 “책임 회피하는 삼성 괘씸…끝까지 싸울 것”

삼성전자처럼 삼성SDI에서도 유해물질 등에 노출된 작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삼성SDI 직업성 암 피해를 주장하는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처럼 장시간 유해물질에 노출돼 불치병의 위험을 안고 있다며 삼성 측에 진실 규명을 위해 줄 것을 수년 째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만 적극 대처하고 있을 뿐 다른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직원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아 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삼성SDI 울산공장서 23명 사망
유가족, 부실한 작업 환경 원인 지목

11일 삼성일반노조에 따르면, 삼성SDI 울산공장에서 백혈병을 비롯한 각종 암과 뇌질환 등 발병 환자는 1공장에서 ‘사망’ 14명·‘완치’ 6명·‘치료 중’ 6명, 2공장에서 ‘사망’ 7명·‘완치’ 1명·‘치료 중’ 1명, 3공장에서 ‘완치’ 1명·‘치료 중’ 3명, ‘기타 사망’ 2명·‘치료 중’ 1명으로 총 ‘사망’ 23명·‘치료 중’ 11명·‘완치’ 8명이다.(2013년 9월 8일 기준)

상당수가 칼라브라운관 1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며, 칼라브라운관 1공장은 1986년 신설돼 2007년까지 가동된 후 말레이시아로 이전됐다. 칼라브라운관 생산이 증가하면서 1987년에는 2공장과 3공장이 증설돼 1공장에서 했던 작업을 하고 1공장에서 썼던 유기용제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각 공장별로 동일한 규모의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걸린 암은 백혈병, 폐암, 간암, 림프종, 직장암, 전립선암, 위암 등으로 이는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산재인정기준을 개선해 적용하기로 한 직업성 암에 대부분 해당되는 암들이라고 노조 측은 설명했다.

박형집 씨에 따르면 아들 박진혁 씨는 지난 2004년 6월 삼성SDI 울산공장 사내업체 KP&G에 입사했다. 이후 박씨는 브라운관 마스크 세척작업과 설비트러블 에러 발생 시 트러블을 조치하는 작업을 하며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일한 지 10개월가량이 지난 2005년 4월 박씨의 몸에 이상이 발생했다. 자꾸 몸에 힘이 없고 턱 밑에 뾰루지 같은 게 생겨 병원으로 향했고 동아대학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2005년 11월 29일 결국 사망했다.삼성SDI 울산공장 사내업체 KP&G 소속이었던 고(故) 박진혁 씨의 아버지 박형집 씨는 “자식을 키워 사업전선에 내보냈는데 아들이 죽어서 돌아왔다. 어떻게 억울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비통한 심정을 내비쳤다.

박형집 씨는 “우리 아들은 TV 뒤에 들어가는 전자총이라고 말뚝같이 생긴 게 있는데 그걸 세척하는 일을 했다”며 “세척작업이 총 3단계가 있는데 이 작업에 사용하는 물질이 독성물질이라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에서는 순수한 세정액으로만 세척을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들에게 들어보니 작업현장에서 입는 작업복이 부실했다고 한다. 또 그 안이 40도 정도 돼서 굉장히 더운데 직원들에게 몸에 해롭다는 말도 제대로 안 해줘서 사람들이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해 장구를 제대로 안 갖추고 일했다고 한다. 이런 작업 환경 때문에 노동자들 몸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삼성 노동자들의 죽음, 숨겨야 하는 진실”

이에 삼성SDI 울산공장 직업성 암 피해를 주장하는 직원과 유가족, 시민단체 등은 지난해 2월 21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측에 삼성SDI 발병 환자들에 대해 알리면서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울산 삼성SDI 백혈병 등 직업성 암에 대한 문제는 지난 십여 년 전부터 현장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의혹으로 제기됐던 문제이고 관리자들 사이에서는 숨겨야만 되는 사건으로 치부됐다”며 “삼성노동자들이 죽음이 의혹으로만 제기된다는 것은 인간중심의 경영을 한다고 말하는 삼성재벌을 부끄럽게 하는 치부요, 숨겨야 하는 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삼성재벌 이건희는 삼성노동자들의 운명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라며 “백혈병 등 직업성 암 피해노동자들의 문제를 통해 삼성족벌이 얘기하는 무노조 반노조 경영이 과연 누구를 위한 무노조 경영이었는지 그 실체를 확연히 알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과 정부는 삼성전자반도체, 삼성SDI를 포함한 삼성전자계열사 모두 백혈병 등 직업성 암 관련 역학조사를 실시해 발병원인을 규명하고 더 이상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하며 삼성의 관련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삼성재벌과 삼성SDI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박진혁 씨,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여병운 씨, 비인강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김송희 씨 등 현재 암이 발병해 치료 중이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에 출근하고 있는 직장암, 림프고환암, 백혈병 등 피해자노동자들을 즉시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삼성SDI 울산공장에 이미 많은 직업성 암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며 “삼성SDI는 직업성 암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직업성 암 집단발병에 대한 명백한 규명과 함께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삼성SDI는 직업성 암 피해자와 가족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치유할 수 있도록 충분히 보상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삼성 SDI 울산공장 직업성 암 피해자 제보를 지역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직업성 암 피해자들 중심으로 집단 산재신청과 산재인정투쟁, 진상규명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재 ‘불승인’ 통보에 재심 준비

이후 이들은 근로복지공단 측에 산재를 인정해달라고 적극 요구하고 나섰지만, 모두 ‘불승인’ 통보를 받은 상태다.

지난 2011년 삼성SDI TV칼라브라운관사업부와 피디피사업부에서 근무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지난 2012년 1월부터 암투병에 들어간 여병운 씨는 2013년 2월 21일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산재요양신청을 했다.

여 씨는 “23년간 칼라브라운관과 피디피 사업부에서 일하면서 불산과 유기용제 레이저 등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이 백혈병 발병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2004년 입사해 삼성SDI 울산공장 사내협력업체에서 일하다 급성림프구성백혈병에 걸려 지난 2005년 11월에 숨진 박진혁 씨 유가족도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신청서를 제출했다.

더불어 삼성SDI 울산공장 칼라브라운관사업부에서 브라운관 판넬을 불산과 가성소다에 세척하는 작업과 브라운관작업에 투입되는 형광체 조합업무를 3년간 해왔던 김송희 씨는 지난 2012년 9월 말 비인강암으로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산재신청을 해 역학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산재신청을 하면서 “직업성 암 피해자들의 산재요양신청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이들이 추천하는 전문인이 참여하는 공정한 역학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추가로 삼성SDI 울산공장에 근무했던 노동자 중 뇌질환과 신부전증으로 제보된 노동자도 10명에 이르는데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인지 뇌질환을 유발 내지 악화시키는 유해물질로 인한 것인지는 더 확인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6월 11일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서는 삼성SDI 직업성 암 피해자들 및 유가족들이 낸 산재요양신청에 대해 불승인 통보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불승인을 결정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먼저 작업과정에서 독성물질을 쓰기는 했으나 작업공간이 매우 넓었고 작업과정에 쓰인 독성물질의 양이 인체에 해를 끼쳐 병을 일으킬 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 두 번째는 공장에서 일한 근무기간이 짧았다는 것, 세 번째는 산재를 인정할 수 있는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과에 근로자 및 유가족들은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산재 불승인 결과에 대한 재심을 준비해 빠른 시일 내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박형집 씨는 “이런 상황에서 삼성 측이 보상은 둘째 치고 이에 대해 어떤 말 한마디도 없는 게 너무 화가 난다”며 “작은 회사에서도 이러지 않는데 대기업이라고 하는 삼성이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게 너무 괘씸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삼성은 아들을 비롯해 병에 걸려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치도 없다가 피해자들이 죽기 며칠 전 찾아가서 사직서를 받았다. 이런 태도를 보면 어떤 반성도 없이 무조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종이컵 버리듯이 한 삼성에 대해 끝까지 맞서 싸울 생각이다. 앞으로 우리와 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SDI 측과 삼성그룹 측은 현 상황에 대한 <투데이신문>의 취재 요청에 “입장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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