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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한 유형인 과로자살
매년 20여건씩 산재 인정

노동과 여가, 노동자가 조절할 수 있나
과로 자살, 개인의 선택? 사회적 타살?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과로’와 ‘자살’, 한국 사회에 익숙한 두 단어다.

먼저 과로. 2015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위에 해당하는 1인 연평균 2113시간에 달하는 근로시간을 한국인들은 보내고 있다. OECD 평균 근로시간 1766시간보다 347시간이나 초과하는 수치다. 이 초과 근로시간은 고스란히 과로로 누적된다.

그리고 자살. 한국의 자살률은 2015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6.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지난 2003년부터 부동의 1위다. 그것도 청소년, 중장년, 노년 등 세대 모두에서 상위권이다.

이렇게 두 개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두 단어를 합친 ‘과로 자살’은 아직 귀에 익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낯선 단어는 우리 현실에 생각보다 깊이 들어와 있다. 그간 ‘안타깝지만 개인적 사유로 인한 자살’로 설명하며 사회에서 개인으로 책임을 돌렸을 뿐이다.

<투데이신문>은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낯설고도 익숙한 과로 자살에 대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과로로 자살하는 나라

지난 4월 대법원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세가 악화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회사무처 직원 A씨에게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지난 2012년부터 국회사무처에서 청원담당 계장으로 근무하며 국회에 접수되는 청원, 진정, 민원을 소관부서에 전달하거나 직접 민원인을 상담하고 마무리하는 총괄 업무를 맡았다. 해당 부서는 지난 2012년 1년간 6000여건에 달하는 민원, 청원을 접수 처리했다.

여기에 지난 2013년 1월부터 자살 예방을 위한 전화 상담 서비스를 위해 국회 생명 사다리 상담센터 개소 및 운영 준비를 맡으면서 같은 해 4월까지 월 50시간 이상의 추가근무, 휴일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이런 과중한 업무로 허리, 엉덩이 등에 통증과 피로, 불면증으로 병가를 낸 뒤 요양했다가 출근을 앞둔 5월 1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같은 과로 자살의 개념에 대해 영산대 법대 방준식 교수는 논문 <과로 자살에 관한 법 이론적 검토>에서 “근로자가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질병(이하 정신장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자살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며 “대체로 과로 자살도 과로사의 한 유형”이라고 말했다.

방 교수에 따르면 과로사란 장시간 근로 등에 의한 만성적 피로, 스트레스에 의해 인간의 생체리듬이 붕괴되고 생명유지기능에 치명적인 파급을 일으키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생체리듬이 붕괴돼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고 결국 스스로 생명을 끊는 과로 자살도 과로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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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일하면 진짜 죽는다

‘죽도록 일하면 진짜 죽는다’는 한탄은 여러 차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지난 2015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근무시간과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유럽, 미국, 호주에 거주하는 53만명을 8.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하루에 1시간이라도 초과근무를 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10% 더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 41~48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은 주 35~40시간 정상 근로하는 노동자보다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10% 높아졌으며, 주 49~54시간 일하는 경우와 55시간 이상의 경우에는 뇌졸중 발병 위험이 정상 근로자들에 비해 각각 27%, 33%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장마비 등 심장질환의 경우에는 주 55시간 이상 일할 경우 정상 근로자보다 13%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2010년에는 핀란드 헬싱키대학 마리안나 비타렌 박사팀과 영국 런던대학 연구팀이 하루 3~4시간 초과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정상 근무하는 근로자들보다 관상동맥질환 발병 위험이 60%가량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이달휴 교수의 논문 <근로자의 자살과 산재인정>에 따르면 과로사는 일본에서 최초로 사회의학적·노동위생학문적 용어로 사회적으로 사용됐다. 그러다 의학적 사회용어로 정착된 것은 1970년대의 오일쇼크 이후다.

또 과로사는 병명이 아니고 과로에 의해 인간의 체내리듬이 붕괴해 생명유지기능에 치명적 파괴를 가지고 온 상태를 말하며 사망에 한하지 않는다. 과로사에는 과도한 노동에 의한 사망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의식돼 있다고 설명한다.

실무노동용어사전에서도 과로사라는 용어 자체는 병명이나 의학적 정식 용어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통상 과로사라는 명목으로 산재보험청구가 이뤄지는 지주막하출혈·뇌출혈 등 뇌혈관 질환, 심근경색·협심증 등 심장질환 등을 통칭하는 용어다.

과로사는 업무수행 중뿐만 아니라 출퇴근 중이나 수면 중에도 발생해 발병장소나 발병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과로사, 하는 것인가 당하는 것인가

노동자의 하루, 24시간은 간략하게 노동과 여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노동자 한 개인의 삶, 또는 하루의 효용은 이 노동과 여가의 상충관계(trade-off, 한쪽이 증가하면 다른 한쪽은 감소하는 관계)에 따라 정해진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과로사는 이 노동과 여가의 극심한 불균형에 축적된 시간이 더해져 생겨난 결과물이다.

노동과 여가의 상충관계는 노동으로 얻는 수입과 여가로 얻는 휴식으로 정해진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회사의 형편, 고용의 안정성 등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정해진 노동시간을 산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시초인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여타 재화나 서비스와는 다른 특수성으로 △노동력과 노동자는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에 판매한 것은 노동력이지만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 생산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 사실상 노사관계는 지배·복종관계가 되기 쉽다는 점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자동적으로 소모되는 상품이어서 궁박적(몹시 곤궁한 상태) 판매를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점 △노동력의 공급(인구변동)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가격(임금)의 변동에 대한 공급 탄력성이 매우 작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 같은 노동력의 특수성으로 인해 노동자는 여타 판매할 수 있는 상품에 비해 불합리한 조건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동자는 경직되고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재충전을 통한 삶의 질을 결정하는 여가는 줄어든다. 그렇게 노동자는 과로로 빠져들게 된다.

산업안전공단 이은영 교수는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산업피로의 고찰>에서 “산업피로는 그 정도에 따라 ‘보통피로’, ‘과로’, ‘곤비’ 상태의 3단계로 나뉜다”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들 피로 상태는 뚜렷하게 구분할 수는 없으나 보통피로는 하룻밤을 잘 자고 나면 완전히 회복될 정도의 것을 말하며 이 정도는 생리적 범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과로는 다음 날까지도 피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말하며, 이 같은 과로상태가 축적된 상태가 곤비다. 이렇게 되면 단기간의 휴식으로 회복될 수 없는 병적 상태라고 볼 수 있으며 더욱 심해지면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고용 안정성, 사측의 형편 등 외부적 요인에 따른 노동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노동자는 이로 인한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과로가 쌓이고, 이렇게 쌓인 과로가 곤비에 이르러 과로사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과로사를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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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자살, 산재인가?

이렇게 과로사 위험에 지속 노출된 노동자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과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업무상 자살의 산재보험 신청과 승인 건수는 △2013년 신청 53건에 승인 20건 △2014년 신청 47건에 승인 14건 △2015년 신청 59건에 승인 22건 △2016년 신청 49건에 승인 19건으로 집계됐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발생한 경우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본다.

산재보상법 시행령 제36조에서는 앞서 말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산재로 인정된다.

이희자 노무사는 <과로성 정신질환·자살과 업무상 재해>에서 “산재보험법은 근로자가 업무상 과중한 심리적 부하로 자살한 경우에는 ‘고의’로 보아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 업무상 자살의 도식화 <출처=’근로자의 자살과 산재인정’(이달휴, 2009) p.9, 재구성=투데이신문>

이달휴 교수는 업무상 자살의 종류를 위의 표와 같이 구분했다. 상기 유형 중 법령상의 규정에 따라 정신장해로 인한 자살인 3, 5, 6, 7유형은 명확하게 업무상 자살로 인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노무사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정신상태 하에서는 자해행위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지만,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서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다닌 근거가 있으면 조금 더 유리하게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며 “설령 (정신과 진료 근거가) 없더라도 여러 정황상 우울증이 있었다던가 정신 상태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있으면 산재로 인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과로 자살이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무상 스트레스, 장시간 노동 등으로 정신질환을 얻어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정황 등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자료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산업피로의 고찰②>(이은영, 안전보건, 1993)
<근로자의 자살과 산재인정>(이달휴, 2009)
<과로사, 자살과 업무상 재해>(실무노동용어사전)
<과로성 정신질환·자살과 업무상 재해>(이희자, 산업관계연구, 2011)
<과로재해에 관한 법적 연구>(방준식, 강원법학, 2011)
<노동>(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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