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된 PE 컵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재활용’이란 꿈은 달지만, 현실은 몹시 쓰다.”

누군가에게 휴식이나 잠깐의 행복을 줄 생각 하나로 긴 여행을 거쳐 우리의 손에 쥐어진 플라스틱 컵 차니와 종이컵 여리. 그러나 우리는 차니와 여리가 품고 있던 음료가 동나자마자 그들을 매몰차게 버렸다.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보자. 혹시 당신의 눈앞에도 일회용 컵 형제가 버려져 있진 않은가.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차니 혹은 여리는 재활용이 될까, 되지 않을까?

기자는 처참하게 버려진 일회용 컵 형제의 뒤를 좇아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업체 중 한 곳인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를 확인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전 점포가 매장 내에서 수거된 일회용 컵 모두를 깨끗이 씻어 종류별로 모아두고 있었다.

더러운 몸을 씻고 산뜻해진 일회용 컵 형제들은 재활용 업체 (주)대원리사이클링 측이 수거한다. (주)대원리사이클링은 매일 서울, 경기, 인천, 충청 지역의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2300여 곳을 돌며 컵을 수거한다. 한 매장당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방문한다고.

▲ 컵을 수거하고 하남 작업장으로 옮기는 모습 ⓒ투데이신문

컵을 잔뜩 수거한 트럭은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본사로 옮겨진다. 이곳에서는 컵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종이컵은 우유팩(종이팩)과 같은 재질이고, 플라스틱은 PET와 PE, PS, PP 등으로 분류한다. 2화에서 설명한 것처럼 플라스틱 컵들의 80~90%는 PET이고, 리드(뚜껑)는 주로 PS, 빨대와 몇몇 컵들은 PP다.

(주)대원리사이클링은 이런 식으로 한 달에 160~170톤가량의 쓰레기를 들여온다고 한다. 이중 무려 85%는 ‘일회용 컵’. 그 외에는 미처 분리하지 못한 기타 쓰레기나 리드, 빨대 등이다. 일회용 컵 하나의 무게가 12~13g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대략 한 달에 1307만여 개의 컵이 이곳을 거쳐 간다고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차가운 음료를 찾기 때문에 차니가 전체의 70~80%를, 겨울에는 따뜻한 음료를 주로 담는 여리가 전체의 70~80%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이는 전국에서 사용되는 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라고 한다.

▲ 종이, PP(아래) 등 컵을 원재료별로 분류하는 과정 ⓒ투데이신문

“재활용되는 일회용 컵 형제는 단 1%”

이렇게 분류된 컵은 재질별로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재활용된다. 기자는 이 중에서 여리의 뒤를 쫓아봤다. 여리는 이레자원으로 옮겨진다. 이곳은 종이컵 및 종이팩을 압축해 커다란 종이 덩이를 만든다. 한 덩이당 무게는 약 1톤이다.

모아진 덩이는 다시 다른 공장으로 옮겨져 해리 작업을 거친다. 종이컵 여리가 물을 비롯한 액체를 담을 수 있도록 종이 원단에 플라스틱을 라미네이팅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 반대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장은 여리와 종이팩이 뭉쳐진 이 덩이를 잘게 분쇄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펄프로 제작한다.

종이컵은 최고급 천연펄프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해리 작업을 잘 거치면 훌륭한 펄프로 재탄생할 수 있다. 해리 작업이 끝난 펄프는 다른 천연펄프와 섞여 다시 큰 두루마리 원단이 된다. 종이컵 여리가 될 것이란 부푼 꿈을 안고 공장 한편에 있던 종이 원단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위쪽부터) 압축하기 전 컵들이 쌓여있는 모습, 압축된 컵들이 쌓인 모습, 찌그러진 컵들 ⓒ투데이신문

이 원단은 동방제지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이 원단으로 휴지를 제작한다. 공중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두루마리 휴지와 식당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올록볼록한 엠보싱이 들어간 냅킨은 이곳에서 탄생한다.

다음은 차니가 재활용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차니도 여리처럼 다양한 모습을 한 채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다. 각 업체는 차니를 비롯한 여러 플라스틱을 수거한 뒤 그들로부터 머리카락 1/10 정도의 굵기만 한 가는 원사(原絲)를 뽑아냅니다. 그리고 공장에서는 석유에서 갓 뽑아낸 새 플라스틱과 재활용 플라스틱을 섞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방수 효과가 뛰어난 PET와 PE는 수영복 옷감이나 자동차 부품으로 탄생한다. PS는 컴퓨터의 키보드나 모니터 프레임, 카메라 바디 등의 상품으로 둔갑하고 PP는 문구류, 의류, 보온병이나 공업용 부품에 사용된다.

그렇지만 차니는 다소 어려운 국면에 처한 상황이다. 차니를 비롯한 플라스틱의 단가가 몇 년 새 곤두박질치면서 플라스틱 재활용이 잘 안 되고 있다고. 이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국가가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맹공세를 펼친 탓에 플라스틱 제품의 국내 생산이 크게 줄었기 때문. 이것이 바로 폐지를 줍는 이는 있어도 플라스틱을 줍는 이가 없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차니의 두께. 차니는 조금만 힘을 줘도 금방 찌그러질 만큼 얇으므로 아무리 많이 모은다 해도 부피보다 실질적인 양은 적다.

그래도 휴지나 냅킨 그리고 수영복, 자동차 부품 등으로 변신한 일회용 컵 형제의 결말은 몹시 행복한 축에 속한다. 재활용 전문업체를 거치지 않은 컵들의 결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처참하다.

▲ 두루마리 휴지와 냅킨이 생산되는 모습 ⓒ투데이신문

“버려진 일회용 컵 형제 99%는 소각 혹은 매립 당한다”

길거리나 일반가정에서 버려져 재활용선별장으로 옮겨진 일회용 컵들은 재활용될 확률이 굉장히 낮다.

차니가 제대로 재활용되려면 PE, PS, PP 등 단일재질로 일일이 구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환경부는 소비자들이 이를 분류하기 쉽게 마크 안에 재질별로 번호를 매기고 있으나 ‘플라스틱’으로 뭉뚱그려진 쓰레기통이나 재활용수거함이 다수이기에 소비자가 번호별로 컵을 분리수거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많다.

이렇게 차니들은 제대로 분류되지 못한 채 재활용선별장에 도착했다. 선별장에선 차니가 제대로 분류될 수 있을까. 결말부터 말하자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선별장마다 근무하는 인력은 고작 30~40명이 전부다. 야간근무와 특별근무 등을 모두 동원해도 일일이 분류하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차니는 뜨거운 불에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되거나 매립된 차니는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매립된 차니 한 개가 썩는 데는 100년 이상이 소요되며, 차니를 소각할 경우에는 염화수소,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여리도 상황은 비슷하다. 여리와 우유팩 등은 일반 지류와는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그러나 일일이 분류하지 않는 곳이 많아 여리 역시 선별장의 분류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여리를 재활용하려면 라미네이팅 돼 컵 안에 찰싹 붙어있는 플라스틱을 떼어내는 해리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서 또 비용이 들기 때문에 차니처럼 소각 혹은 매립을 택한다. 여리 한 개가 썩어 생분해되는 데는 2~5개월이 걸린다.

▲ 수거 전 깨끗이 씻어놓은 컵들 ⓒ투데이신문

“재활용의 행방불명”

재활용이라는 빛을 보지 못하고 쓰레기로 전락한 일회용 컵 형제 차니와 여리. 이들이 제대로 재활용된다면 연간 120억원에 달하는 쓰레기 처리비용이 조금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일회용 컵 형제가 제대로 재활용되기 위해서는 ‘회수율’이 중요하다. 카페들이 다시 컵을 수거해 환경부가 지정한 재활용 전문 업체에 맡겨야 비로소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 그렇지만 지난해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업체들의 일회용 컵 사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일회용 컵 사용량은 증가했으나 컵 회수율은 감소하는 추세다. 2011년에는 78.4%였던 컵 회수율은 2015년 68.9%로 감소했다. 불과 4년 만에 10%가량 감소한 셈.

게다가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업체들을 제외한 개인 카페나 다른 커피전문점의 컵까지 합하면 회수율을 정확히 따질 수 없는 상황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사용한 230억개의 종이컵 중 재활용되는 컵은 3억2000만개 뿐. 컵의 1.39%만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컵은 음료를 마시기 위한 단 한 순간을 위해 탄생한 뒤 처참하게 버려졌다. 그리고 차니와 여리의 시체들은, 특히 매립된 차니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남은 수명보다 더 오랜 기간 이 세상에 존재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이름은 남기는 사람은 동시대 사람들의 1%에 불과하다. 그리고 재활용되는 여리와 차니는 버려진 수많은 일회용 컵 중 단 1%뿐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겠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차니나 여리는 재활용이 될까, 되지 않을까?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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