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시간의 무게, 용산전자상가] 장병군 회장 “내 일생 다 바친 곳, 다시 살리고 싶다”
[빛바랜 시간의 무게, 용산전자상가] 장병군 회장 “내 일생 다 바친 곳, 다시 살리고 싶다”
  • 이경은 기자
  • 승인 2018.03.22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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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건물·오래된 간판…전성기 땐 횡단보도에 수백 명 몰려
발길 끊긴 상가…자리 지킨 상인들, 부활 위한 재생사업 추진
“용산전자상가 전성기부터 쇠퇴,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용산전자상가 연합회 장병군 회장ⓒ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용산전자상가 연합회 장병군 회장ⓒ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추억의 가수인 HOT가 다시 합쳐 무대에 서 큰 화제가 됐다. 어느 덧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가 된 그 시절의 소녀 팬들은 다시 90년대로 소환당하며 환호했다. 이전에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사람들을 그 때 그 시절 추억에 젖어들게 만들며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없는 그 아래 세대들에게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공감이가는 유대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나이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모든 배경은 1980~1990년대였다.

그 시절 ‘전자제품의 메카’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던 곳도 있다. 누구는 추억의 고전게임으로 일컬어지는 슈퍼마리오 게임기를 사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엄마를 졸라 삐삐(무선호출기)를 사러 용산전자상가를 찾았을 것이다. 한창 잘 나갈 때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한 번에 200~300명씩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언저리 너머에서나 자리하고 있는 그곳은 바로 용산전자상가다. 서울 도심 속 고층 건물이 가득 찬 풍경과 달리 같은 서울 하늘 아래이지만 용산역 서쪽에 위치한 용산전자상가에는 노후한 건물들이 즐비해있다. 오래된 간판, 벗겨진 페인트칠, 낮은 상가, 좁은 통로를 간직한 용산전자상가는 1980년대에 그대로 멈춰있다.

추억의 인물, 추억의 물건들이 다시금 회자되며 사랑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유통 발달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용산전자상가는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직도 ‘젊은 날을 다 여기서 보냈다’라며 떠나지 못하는 상인들이 남아있다. 이들은 용산전자상가가 잃어버린 옛 명성을 되찾길 바라며 연합회를 꾸리고 서울시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다. <투데이신문>에서는 용산전자상가 연합회 장병군 회장을 만나 용산전자상가의 과거와 현재, 꿈꾸는 미래에 대해 직접 얘기를 나눠봤다.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Q. 과거 용산전자상가의 인기가 많았던 반면 요즘은 힘든 상황이라던데.

: 1980~1990년대가 가장 장사가 잘 됐던 시기였다. 그 때는 테크노마트나 다른 큰 전자상가가 없던 때여서 전국 각지에서 전자제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상가들 사이 큰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있는데 그 당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한 번에 200~300명 정도 됐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치이고 밀려서 걸어 다녔다고 해야 맞을 거다. 그 때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장사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사람들 발길이 싹 끊겼다. 지금 용산전자상가를 찾는 사람 수가 장사가 한 참 잘 될 당시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매출은 과거에 비해 반 정도로 준 것 같다. 매출하고 사람 수가 줄어든 데 차이나는 이유는 1980~1990년대 당시에는 물건을 사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많았지만 게임기가 유행이라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 학생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구매력 없는 사람들도 구경하기 위해 많이 찾아왔었기에 매출과 방문자수가 줄어든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Q. 언제부터 용산전자상가의 상황이 어려워졌나.

: 2000년대부터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해 유통채널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서서히 오프라인 매장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현재는 인터넷 유통채널과 차별화 되게 인터넷에서 판매하지 않는 물건을 팔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용산전자상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서울시 도시정책과에서 파악하기로는 현재 전체 상가의 공실률이 20% 정도 된다고 들었다. 실제로 돌아다니다 보면 빈 곳도 많이 있고 매장이 사무실이나 창고로 바뀐 것도 많다. 공실률을 좀 줄여보고자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Q. 고객들과 얘길 나눠보니 건물을 찾아오기가 어렵다는 얘길 많이 하더라.

: 보다 쉽게 전자상가를 찾을 수 있도록 그 부분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금은 지하철 용산역에 3번 출구가 생겨서 오는 게 옛날보단 좀 쉬워졌는데 그마저도 없던 시절에는 2번 출구로 나와 뺑 돌아서 이곳을 찾아와야 했다. 그래서 용산역에서 용산전자상가까지 오는데 30분씩 걸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사람들이 길이 너무 복잡하다며 미로라고도 불렀다. 용산역에서부터 전자상가로 진입하는 교량을 새로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올 10월 안에는 착공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교량 내 무빙워크를 설치하고 양 벽과 천장에 광고를 내거나 용산전자상가의 과거·현재·미래를 만화로 그려 넣는 등 소비자들이 무빙워크를 타고 오면서 심심하지 않게 꾸밀 계획을 두고 있다.

Q. 상인들은 용산전자상가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하던데.

: 용산전자상가가 지하철역에서 멀기도 하지만 현재 지나다니는 버스가 너무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용산전자상가에는 다른 정류장에 다 있는 버스 시간표 전광판도 없다. 옛날부터 우리 상인들이 서울시에 ‘버스를 증설해 달라, 전광판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돌아온 답이 ‘전자상가에 사람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였다. 그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버스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아예 관심을 갖지 않고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버스가 많고 노선이 다양하게 있으면 지나가면서 전자상가를 보고 내려서 물건을 구경하고 사가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버스를 증설하는 것도 전광판을 설치하는 것도 사람이 많은 곳에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답답한 소리다.

Q. 그 외에 용산전자상가를 힘들게 만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 일부에서는 과거에 우리 상인들이 고객들에게 물건을 너무 비싸게 팔아서 사람들이 안 찾아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상인들을 ‘용팔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양심적으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까지 욕을 많이 먹었다. 일부 그런 상인들도 있었지만 언론이 불씨를 더 키웠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기에 고객이 와서 물건을 사다보면 상인이랑 언쟁이 있을 수도 있고 싸움이 날 수도 있는데 언론에서 너무 상인들이 잘못한 부분만 보도한 것 같아 안타깝다.

나진상가 11동 1층에 위치한 장병군 회장 매장 전경ⓒ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나진상가 11동 1층에 위치한 장병군 회장 매장 전경ⓒ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Q. 똑같은 물건인데 가게마다 가격이 너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 그건 손님들이 모르고 하는 말이다. 겉모양이 똑같아도 안에 내용물이 다르다. 내용물에 따라서 가격이 다른 거다. 내용물로 삼성전자나 LG전자 제품을 쓸 수도 있고 중국산을 쓸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가격차이가 나는 건데 소비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겉만 보고 ‘똑같은 제품인데 왜 가격이 다르냐’고 한다. 그렇게 평가하면 안 되고 제품마다 기능 차이를 봐야한다. 어디 부품을 쓰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천지차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는 ‘가격 덤터기 씌운다’고 생각하는 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Q. 용산전자상가를 직접 찾아와 구매했을 때 좋은 점이 있다면.

: 1980~1990년대에 젊었던 분들 중에 지금은 나이를 먹고 추억으로 찾아오시는 분이 많다. 그런 분들은 와서 구매하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용산전자상가가 살아남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또 AS 때문에 직접 찾아와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인터넷에서 사면 AS가 상당히 어려운 반면 용산전자상가에서 사는 경우에는 AS를 확실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에게 물어보니 인터넷에서 제품을 샀는데 고장이 나서 1년 안에 다시 전화해보니 전화번호 바꾸고 잠적하는 데도 많다더라. 그렇게 당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안사고 직접 구매하러 많이 온다.

Q. 서울시에서 용산전자상가를 살리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 서울시에서 용산전자상가의 상권을 살리고자 도시재생사업을 계획 중에 있다. 현재 전자상가에 휴식공간이 하나도 없고 전부 상가만 밀집돼있는데 서울시에서 이 부분을 주목해서 문화 공원 같은 걸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먹을거리도 좀 들어오고 쉬면서 구경할 수 있는 곳도 생기면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이와 더불어 나는 서울시에 용산전자상가 하면 딱 생각나는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훗날 에펠탑처럼 될 수 있는, 전자상가에 맞는 스토리가 있는 기발한 건축물을 만들자고 제안한 상태다. 그러면 사람들이 에펠탑을 보러 관광을 가듯이 랜드마크를 보고자 용산전자상가에도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Q. 도시재생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

: 서울시에서 도시재생이라는 프로젝트를 광고하는 걸 보고 지원하게 됐다. 경합을 벌여서 4등 안에 들면 200억원을 지원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도시재생을 원하는 곳 약 100군데가 도전을 했다. 용산구에서는 우리 전자상가가 좋겠다고 해서 넣었는데 뽑히게 됐다. 다만 서울시에서 지원해주겠다고 한 200억이 이것저것 하다보면 부족한 금액이다. 그래서 서울시 말고 다른 곳에서도 지원해 줄 수 있다면 추가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추가지원을 받게 된다면 문화 공원이나 랜드마크와 같은 건축물을 만드는 데 더 투자를 하고 관리도 잘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고 싶다.

Q.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길 바라나.

: 상인을 위한, 상인이 원하는 도시재생을 해주길 원한다. 사람들은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성공케이스라고 하는데 나는 실패라고 생각한다. 세운상가 도시재생은 상인이 아니라 건물주하고 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을 통해 세운상가 건물은 번쩍번쩍해졌는데 건물주 입장만 좋지, 오히려 월세만 비싸지고 상인들의 형편은 나아진 게 없다.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돈은 상인들이 잘 살 수 있게 만드는데 쓰여야 한다. 예를 들어 요즘 4차 산업이 각광받고 있는데 현재 장사가 안 되는 상인들이 직업을 변경할 수 있도록 4차 산업과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해준다던지 그런데 투자를 해야 한다. 상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하고 기존 상인들의 창업을 도와주고 그런 게 돼야 상가가 살아날 수 있다. 세운상가처럼 건물을 깨끗하게 한다고 상가가 살아나는 게 아니다.

Q. 상인들끼리도 용산전자상가를 살리기 위해 따로 활동하는 게 있다면.

: 용산전자상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회장단을 꾸렸다. 상가마다 선거를 통해 뽑은 회장들이 있는데 나를 비롯한 회장단이 어떻게 하면 전자상가를 살릴 수 있을 지에 대해 많이 연구한다. 회장단은 전자상가에 대해 정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우리는 본업인 장사까지 제쳐두고 서울시에서 도시재생과 관련한 회의가 있다고 하면 가서 다 참석하고 열정적으로 일한다. 그 외에 일반 상인들은 장사하는 게 우선이다 보니 따로 활동하는 건 없고 회장들이 이끌면 따라가겠다는 입장이다.

Q. 도시재생과 관련해 회장단이 구상한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 회장 중에 상가마다 보도블록 색깔을 다르게 해서 사람들이 상가를 찾아올 때 색깔을 보고 찾아올 수 있도록 하자는 등 의견은 많다. 나는 상가 사거리에 4면으로 된 전광판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전자상가 약도, 취급품목, AS센터 위치 등을 알려주도록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 전자상가에서 세일하는 품목이 굉장히 많은데 알려지지가 않아서 소비자들은 전혀 모른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안 오고 오히려 상인들이 와서 싼 값에 물건을 사간다. 소비자들이 와서 사가야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서 전광판을 만들어서 전자상가의 이야기나 세일 품목 등을 광고를 하면 상가를 알리는데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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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용산전자상가에서 일한지 오래됐다고 들었다. 장사가 옛날 같지 않음에도 용산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 1988년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올해로 31년째가 됐다. 자리를 옮기지도 않고 쭉 나진상가 11동 1층 이 자리를 지켜왔다. 한 자리에서 용산전자상가의 전성기부터 쇠퇴까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처음 일을 하게 된 건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다른 일을 하다가 전자상가 조명 사업을 소개 받아서 시작하게 됐다. 용산전자상가는 젊었을 때 와서 지금껏 내 인생을 불사른 곳이다. 장사가 잘되든 안 되든 이 자리에서 계속 있었기에 애착이 남다르다. 다른 상인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지 않을 때까지 이곳에 나와서 일 할 생각을 하고 있다.

Q, 용산전자상가의 10년 뒤 모습은 어떻길 바라나.

: 사실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10년 뒤 모습에 대해서는 대답을 못하겠다. 다만 우리 전자상가를 열심히 더 발전시켜서 사람들이 꼭 가보고 싶은 상가로 만들고자 하는 게 내 꿈이다. 용산전자상가는 한 마디로 내 인생을 다 바친 곳, 내 젊음을 다 보낸 곳이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집에 있는 시간보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렇기에 일터에 있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해야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상인들도 전자상가에 있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장사가 잘되던 옛날처럼 상가를 다시 살리고 싶다.

Q. 용산전자상가를 찾아달라고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 우리 전자상가를 찾아오시는 분들을 언제나 웃음으로 따뜻하게 맞이하고 최선을 다해서 모실 거다. 지금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변해갈 거니까 믿고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