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SK케미칼 가습기살균제 피해 공식 인정했지만
SK케미칼 “정부에서 조사 중, 자세한 설명 못해” 침묵
유해성 관련 연구결과 속속 공개, 정부 추가 조사 주목

지난 2016년 8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김철 SK케미칼 대표 모습.
지난 2016년 8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김철 SK케미칼 대표 모습.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원료물질 제조사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환경부가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공식 인정했지만 가해업체로 지목된 SK케미칼은 여전히 ‘책임 없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어 정부와 줄다리기가 예고된다.

환경부, SK케미칼 ‘가습기 메이트’ 피해 인정

앞서 지난달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환경부는 CMIT(메칠크롤로이소치아졸리논)/MIT(메칠이소이치아졸리논) 함유제품 단독사용자에게서도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로 인한 피해자와 동일한 특이적 질환이 나타났기 때문에 해당 기업 가해자의 폐손상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며 “정부가 피해를 인정한 만큼 SK와 애경도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 제조사 SK케미칼과 제품을 판매한 애경산업이 정부 역학조사를 근거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특히 앞으로 피해자들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SK케미칼 등 가해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역학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정부도 피해를 인정한 ‘가습기 메이트’는 지난 1994년 SK케미칼(당시 선경그룹)이 만든 세계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다. SK케미칼은 ‘가습기 메이트’가 안전하다고 홍보했고, 2백만 병이란 판매 실적을 올렸다. 지금까지 옥시 제품의 주원료인 PHMG와 PMG만 폐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인정되면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 측에는 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

SK케미칼은 지난 2013년 불법으로 PHMG 3만여㎏을 거래처에 판매한 혐의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을 뿐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법적 처벌을 받은 바 없다.

이는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012~2013년 동물을 대상으로 실행한 독성실험에서 CMIT/MIT와 피해의 인과관계를 확정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16년 인체유해조사에 착수한 이후 아직까지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덕분에 제조사인 SK케미칼과 이를 판매한 애경 등은 수사에서 제외됐다.

동물 실험 근거로 책임 벗어난 SK케미칼

SK케미칼과 해당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한 애경 등도 동물실험에서 독성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후 정부도 가습기 살균제 폐 이외 영향 검토위원회에서 CMIT, MIT도 폐 섬유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로 규정하고 이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의 유통을 막아 왔지만 피해 보상 등 법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금까지 SK케미칼이 부담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에 따른 분담금을 내놓은 것이 유일하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18개 회사로부터 징수된 분담금은 총 1250억원으로 이중 SK케미칼은 같은 그룹에 소속돼 있는 SK이노베이션을 통해 128억 5026억원을 냈다. 하지만 이 또한 가습기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과는 무관한 조치라는 것이 지금까지 SK케미칼의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했으나 고지한 91억 4600만 원 중 42억 2600만 원(46.2%) 징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구상권 행사 대상인 SK케미칼이 납부한 금액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환경부가 추가 역학조사에 나설 뜻을 내비치면서 법적 책임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환경부 박천규 차관ⓒ뉴시스
환경부 박천규 차관ⓒ뉴시스

유해 입증 관련 연구 속속 발표…법적 책임 가능성↑

게다가 최근 ‘가습기 메이트’ 유해성과 관련한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SK케미칼 등 가해업체들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는 최근 옥시 제품 원료 뿐 아니라 가습기 메이트의 CMIT와 MIT도 폐손상 원인일 수 있다는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는 환경부로부터 지난 2015년 가습기 살균제 등 유해화학물질 노출 분야 전담 병원으로 지정, 가습기 살균제가 건강에 미치는 인과관계를 조사연구하는 한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을 상대로 장기적인 건강 모니터링과 정신건강 상담, 치료 등을 담당해왔다.

지난달 10일 KBS보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호소한 쌍둥이 자매의 병증을 관찰한 결과 기존 옥시 제품의 가습기살균제 폐질환과 같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 대구가톨릭대 GLP(Good Laboratory Practice:비임상시험기관)센터 박영철 교수 등 연구진은 국환경보건학회지 10월호 CMIT·MIT가 임신한 쥐의 뱃속 새끼의 사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SK케미칼 등에게 면죄부를 줬던 정부 조사 과정도 문제가 있어 재조사에 나서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독성실험을 엉뚱한 물질로 진행해왔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4번의 동물실험 모두 가습기메이트의 원료물질인 SKYBIO FG로 독성시험을 하지 않고 SKYBIO FG에 들어 있는 CMIT/MIT로만 시험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부는 외면했다는 것이 이 의원의 주장있다.

이와 함께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처음 실행한 가습기메이트 족성실험도 CMIT와 MIT로 이뤄졌고 독성을 확인할 수 없는 실험조건(한 가지 농도로만 실험)으로 실험했다는 점도 문제삼았다. 지난 2015년 환경부 독성시험을 MIT로 진행했고 2017년에도 CMIT/MIT로 독성시험을 진행한 것이다.

또 SK케미칼이 2005년 11월, 2007년 12월 두 차례 “이소티아졸론 화합물이 함유된 조성물의 유전독성 억제방법”으로 특허를 낸 것을 근거로 SK케미칼이 CMIT, MIT가 유전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SK케미칼은 SKYBIO FG를 생산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을 하고 있지만, SKYBIO FG 생산매뉴얼을 가지고 있다”며 “검찰은 이를 압수해 SKYBIO FG로 흡입독성 시험 등을 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도 “환경부의 피해 인정 의견을 법무부에 공문으로 통보해 동물 실험 결과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지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검찰수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등 관계자들이 지난 2월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공정위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피해자와 가습기넷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솜방망이 처벌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등 관계자들이 지난 2월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공정위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피해자와 가습기넷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솜방망이 처벌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SK, 수년째 대답은 “정부에서 조사 중”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SK케미칼 등 가해기업을 규탄하고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1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입,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SK케미칼과 애경 등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다시 재개했다.

이들은 “살인 기업들은 쥐죽은 듯 입을 다물고 피해자들이 지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국회는 국정감사를 통해 SK와 애경의 범죄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즉각적인 구속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료물질을 제조공급한 SK케미칼과 이를 판매한 애경산업, 이마트 등 살인 가해기업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그 진상과 피해를 제대로 밝힐 수 있다”며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SK와 애경이 국민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할 수 있도록 원조 살인기업의 범죄 사실과 책임을 명백히 밝혀달라”고 덧붙였다.

국정감사에서 가습기 피해 구제 문제가 다뤄졌던 지난달 29일 당일에도 가습기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정부와 가해기업의 책임을 묻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3,4 단계 폐섬유화와 폐렴 사망자의 유족과 피해자 모임과 환경단체 글로벌에코넷, 한국환경시민단체협의회은 기자회견을 갖고 환경부가 사망자와 피해자 모두 차별없이 통합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SK 케미칼, 애경, 이마트 등 가해 대기업의 특검수사와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또 시민단체 글로벌에코넷 김선홍 상임회장은 “정부와 가해기업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책임지고 적극적으로 전대미문의 환경 대재앙 참사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이 같은 일련의 연구 결과와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에도 SK케미칼은 지금까지의 입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SK케미칼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피해 책임과 관련해)환경부와 따로 입장을 교류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입장은 (기존)그대로”라며 “정부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못드리는 점 양해 바란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올해 10월까지 정부가 공식 집계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사망자 1233명 등 모두 5253명에 달한다. 환경부가 인정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대상은 폐질환 468명, 태아피해 26명, 천식 피해 195명 등 679명(폐질환·태아 중복인정자 2명+폐질환·천식 중복인정자 8명 제외)이다.

환경부가 인정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대상은 폐질환 468명, 태아피해 26명, 천식 피해 195명 등 679명(폐질환·태아 중복인정자 2명+폐질환·천식 중복인정자 8명 제외)이다. 환경부는 폐질환(128명), 태아(1명), 천식질환(1636명) 등 1771명의 피해구제 신청자에 대해서도 올해 안으로 조사·판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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