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과 헌신 강조 모친-장녀와 상대적으로 나이브한 장남 갈등
R&D 사령관 장녀 vs ‘절차 강조’ 원칙론자 장남 해석도 가능
감정 골 패면서 수면 아래 잠들었던 경영권 갈등 급부상 풀이도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OCI그룹과 한미약품 간 통합 과정이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 중 장남인 임종윤 사장과 통합을 주도한 어머니 송영숙 회장 및 장녀 임주현 사장 간 의견 차이가 대두된 것.

1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OCI의 지주사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의 지주회사)가 그룹간 통합을 발표한 이래, 임종윤 사장은 임주현 사장 등과 결을 달리하는 발언을 계속 언론을 상대로 쏟아내고 있다.

그는 “한미사이언스와 OCI의 발표와 관련해 한미 측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고지나 정보, 자료도 전달받은 적이 없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장녀 대 장남 실적 경쟁에 경영권 갈등? 설명 충분치 않다는 해석

이번 임종윤 사장의 불만 표출을 한때 잘 나가다 제동이 걸리면서 임주현 사장에 밀린 데 따른 감정의 골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임종윤 사장은 2000년대 초반 유력 후계자로 점쳐졌다.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 등을 역임한 것.

북경한미약품의 연 매출은 600억원대로 성장하는 등 그의 경영 능력이 크게 부각됐다. 하지만 2008년 홍콩에 세운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오브맘컴퍼니가 흔들리면서 경영 능력에 의구심이 본격화됐다. 

이런 가운데 한미약품 임주현 사장은 그룹 내 연구개발(R&D) 핵심 고삐를 죄고 있는 인사로 성장해 왔다. 임 사장은 한미약품에서 Globla사업본부·R&D센터 ·경영관리본부 등의 업무를 책임지며 능력을 과시해 왔고 지난해 여름 한미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전략기획실장으로 부임한 바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 인사 전후로 송영숙 회장의 경영 승계 작업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는 풀이도 나왔는 바, 이번 OCI와의 통합 논의를 통해 완전히 추가 기울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를 모친 송영숙 여사가 딸 쪽으로 힘을 실어줬다는 평으로 표현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R&D 성과를 보면 임주현 사장의 어깨가 으쓱할 대목이 적지 않다. 한미약품의 의약품 20종이 지난해 처방 매출 1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는 집계도 최근 나온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지난해 원외처방 매출(유비스트 기준)이 전년 대비 10% 성장한 9295억원으로, 이 중 20종이 1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소위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100억원 이상의 처방액을 낸 20개 중 19개가 독자 개발한 제품이며 이는 R&D 역량을 강조해 온 지휘자 임주현 사장의 부각 배경으로 작용하기 충분하다.

개인 회사 경영, 절차 문제점 지적 등 미국식 마인드에 예술혼까지  

한편 임종윤 사장은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 출신이다. 이후 버클리에서 음악을 전공하기도 했다(재즈작곡으로 석사 수료). 

단순히 예술적 영혼이라 경영에서 스스로 내지 타의에 의해 멀어졌다고 볼 것만은 아닌 부분이 적지 않다. 대학 생활 등을 거치면서 미국식 마인드의 세례를 강하게 받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회사와 개인 사업에 일정 부분 선을 긋는 마인드도 유별나다. 공교롭게도 임종윤 사장은 개인 회사인 코리그룹 계열사 코리포항의 실패를 기록하는 등, 한미 경영에만 헌신하는 대신 일정 부분은 속칭 워라밸 내지 개인 대 소속집단의 분리를 긍정, 실천하는 마인드를 몸소 부각해 왔다.

이번 OCI-한미 통합에서 절차적 문제를 짚는 것도 미국식 마인드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윤 사장은 특히 “개인 간 거래가 아닌 경영권 관련 거래이기 때문에 주주와 임직원도 모르고 진행이 됐다면 문제”라고 짚는다. 자신이 한미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2대 주주임에도(한미사이언스 12.12% 보유) 이 통합 계약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 전체 문제를 방증한다고도 비판한다. 즉, 주주총회에서 특별 결의를 거치지 않았고,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안건 통과가 불법이라는 게 그가 펼치는 절차론 주장의 골자다. 

일도양단으로 자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절차적 정의를 강조하고 이 문제만으로도 결론이 뒤집히기도 하는 걸 당연시하는 법정 공방 마인드는 다분히 영미식이다. 대륙법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실체적 진실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임종윤 사장의 논리가 최종적으로 3월 주주총회나 가처분, 본안재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교한 논리인지는 둘째치고 이런 절차상 하자를 적극 공략하는 자체가 특징적인 것은 분명하다. 임종윤 사장의 미국적 프로필과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그의 특징을 잘 드러내 준다는 것.

반대로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헌신적 노력이라는 관념에 상대적으로 경도된 모습이다.

우선 송 회장은 고 임성기 회장 생시에는 경영에 크게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경영을 맡게 된 2020년부터는 안팎에서 ‘대장부 스타일의 경영자’라는 평판이 나올 정도로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번 OCI 측과의 전격적인 통합 역시 송 회장의 과단성 있는 결정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을 하는 이들도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임주현 사장도 일에 대한 열성으로는 모친에 뒤처지지 않는다. 

임주현 사장은 이번 통합과 관련, 입장 자료를 통해 “한미의 DNA는 이번 통합 과정에도 그대로 이식될 것”이라며 “OCI가 구축한 글로벌 밸류 체인 네트워킹은 향후 한미의 신약 개발과 상용화 이후의 성공을 담보하는 자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과학 용어인 DNA를 빌려 왔지만, 맥락은 적극적인 한미 정신을 관철해 나가겠다는 태도를 역설했다는 것으로 바꿔 읽을 수 있다. 상속세 납입 재원 마련에 시달리는 형편에서 적극적을 일에 매달리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장남 대신 유력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며, 아예 그룹 미래를 두고 건곤일척을 시도할 수 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한미 정신으로 이번 위기도 돌파? 모친도 여장부 경영 전엔 사진가 이력

회사와 자신을 일치시켜 생각하는 마인드로, 남매간 간격이 부각될 수 있다는 해석은 그래서 의미가 없지 않다. 

다만 어디까지나 혈육간 갈등인 만큼 경영권 분쟁, 남매간 전쟁 혹은 모자간 대결로 다양한 단면을 가진 이번 분란이 잘 수습될 가능성을 전망하거나 그러기를 기대하는 관점도 없지는 않다.

자유로운 영혼의 절차적 원칙론자 대 일과 가업에 헌신적이길 바라는 이들간의 갈등이라는 문제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바로 송영숙 여사 자신도 사진에 푹 빠져 한때 일가를 이뤘던 인물이기 때문. 

송영숙 회장 자신이 슈발리에 훈장(프랑스의 문화예술훈장)에 빛나는 예술가 출신이라는 점은 여장부 경영 성과 덕으로 이제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대학 시절(숙명여대)에서 사진반 활동을 했다. 사진에 대한 애정을 쌓은 데 그치지 않고 사진전을 수차(친정 오빠와 공동 전시회, 단독 개인전 등) 가지기도 했다. 해외 그룹전에도 초청될 정도로 수준급인 실력과 미적 감각이 있기에, 이후에 그가 가현문화재단 활동 등으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바꿔 말하면 임종윤 사장의 자유로운 영혼의 상당 부분은 모친에게서 기인한 것이고, 그러기에 그와 각을 세우는 듯한 현 상황도 반대로 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도 모친이라는 이면을 갖고 있다. 비슷하기에 미워한다는 격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결국 양자의 봉합 가능성이 한동안 우리나라 제약 분야는 물론 기업 경영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애써 이룬 OCI와의 협력 그물짜기를 무위로 돌리지 않도록 오너 일가 내부에서 어떤 두뇌 대결과 포용이 교차할지 주목된다.

한미그룹 측은 임종윤 사장의 절차적 비판에 대해 “이번 통합 절차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으로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속해있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종윤 사장이 대주주로서 이번 통합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속해서(임종윤 사장과) 만나 이번 통합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 설명해 이번 통합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여, 설명 및 설득의 힘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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