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기자의 젠더프리즘] ‘낙태죄’ 제정부터 헌법불합치까지…66년만에 되찾은 권리
[김태규 기자의 젠더프리즘] ‘낙태죄’ 제정부터 헌법불합치까지…66년만에 되찾은 권리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9.04.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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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일 형법 제269조 제1항과 동법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4, 단순위헌 3, 합헌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습니다. 사실상 위헌 판결이 난 셈이죠.

형법 제269조 제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자기낙태죄 처벌을 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법 제270조 제1항에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동의낙태죄 처벌이 규정돼 있죠.

헌재는 자기낙태죄에 대해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삶에 근본적·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임신 유지 여부는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과 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를 반영한 전인적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며 “산부인과 학계에서 태아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동의낙태죄에 대해서는 자기낙태죄가 위헌이므로 임신한 여성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판시했습니다.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로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합니다. 법이 개정될 때까지는 현행 법의 효력이 유지됩니다. 만일 시한까지 개정되지 않는다면 2021년 1월 1일부터 해당 조항은 효력이 상실돼 전면 폐지됩니다.

국가주의가 만들어낸 낙태죄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는 지난 1953년 형법이 처음 제정된 이래 66년간 유지돼 온 법률입니다. 1953년 9월 18일 제정된 형법 제269조 제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만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했습니다. 제2항은 임신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케 한 자도 같은 벌에 처하도록 했으며 제3항은 제2항의 죄를 범해 임신부를 치상케 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치사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또 제270조는 ‘의사, 한의사, 조산원,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임신부의 촉탁 또는 승낙으로 낙태케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했으며 제1항의 죄로 임신부를 치상케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치사케 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고 규정했습니다.

1953년 7월 16일 열린 제16회 국회임시회의 속기록을 보면 당시 무소속 변집갑 의원 외 국회의원 20명은 낙태죄 전면 삭제를 포함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변 의원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 낙태죄 처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소속 김준태 의원은 가정의 경제적 여건, 임신부의 건강권 등을 들며 낙태죄를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한 인구의 소모를 보충하고 독립국의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적어도 인구가 4000만 이상은 돼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주장이 낙태죄 삭제 주장을 압도하며 결국 낙태죄 처벌 조항이 통과됐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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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적 허용…모자보건법의 탄생

이후 1973년 5월 10일,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제한적으로 낙태가 허용됩니다. 이 법은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본떠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모자보건법 제8조(현행 14조)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정했습니다.

일본은 1973년 제정된 한국의 모자보건법과 동일한 내용의 국민우생법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1949년, 일본은 ‘임신의 지속과 분만이 ’경제적 이유‘로 인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포함해 그나마 발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모자보건법은 일본의 우생보호법보다 24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제정됐음에도 경제적 이유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우생학적’이라는 표현을 넣는 등 전근대적인 인식을 보였습니다. 모자보건법은 제한적으로나마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한 법이라는데 의미를 둘 순 있지만, 허용 사유가 매우 협소해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법이었습니다.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한 이 조항은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문화된 낙태죄 재점화

모자보건법의 시행으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라도 허용된 인공임신중절은 1985년 대법원의 판결로 위축됩니다. 대법원은 1985년 ‘임산부의 촉탁에 의한 의사의 낙태시술이 정상적인 행위로서 사회상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전까지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정한 형법 제20조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행한 의사는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로 사법(死法)이나 마찬가지였던 ‘동의낙태죄’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여기에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2009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행한 의사와 병원 등을 고발하기 시작하면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의사와 병원이 급감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임신중단을 선택해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해 2월, 조산사 송모씨는 인산부의 부탁으로 낙태케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듬해 10월 17일, 송씨는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합니다. 2011년 11월 10일 헌재는 낙태죄를 두고 공개변론을 개최합니다.

당시 쟁점이 됐던 것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었습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출동하는 상황에서 어느 시점부터 태아의 기본권을 인정할 것인지도 쟁점이었습니다.

2012년 8월 23일, 헌재는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한다고 본 것이죠.

지난 2016년 10월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6년 10월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여성들, 낙태죄 폐지에 뛰어들다

그 후 정부는 동의낙태죄 처벌 강화를 시도합니다. 2016년 9월 23일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료인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시행령·규칙 입법예고를 내놓은 거죠. 같은 해 10월 9일, 대한산부인과협회는 이에 반대하며 모든 낙태시술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같은 달 15일 여성계는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며 ‘검은시위’를 열었습니다. 사문화된 낙태죄 처벌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낙태죄 폐지 움직임이 본격화 된 시기입니다. 이 같은 의료계·여성계의 반발에 보건복지부는 입법예고를 철회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2월 8일, 인공임신중절 수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산부인과 의사가 자기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 제1항,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합니다.

그해 9월 30일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의 합벼화를 촉구하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이 청원은 같은 해 10월 30일 20만명의 청원자 수를 넘어 청와대의 답변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하나마나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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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없이 논의돼 온 낙태죄…당사자 목소리 반영 필요

헌재는 2018년 5월 24일 공개변론을 열어 청구인 측과 법무부 측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법무부 측은 “생명의 특징인 연속성을 고려할 때 특정 시점을 택해 보호법익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행법상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등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잉 제한하지 않는다”며 합헌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청구인 측은 “낙태죄는 이미 사문화돼 있다”며 “해당 조항들은 태아생명을 위한 수단이 아닌 선언으로만 남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여성가족부는 정부부처로는 처음으로 낙태죄 폐지 입장의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올해 3월 1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건강권,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습니다.

인권위는 “2018년 제 49차 유엔 여성차별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문에서 안전하지 않은 여성의 인공임신중절이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낙태를 합법화, 비범죄화, 처벌조항을 삭제할 것을 주문했고다”면서 “세계보건기구 역시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절차적·제도적 장벽들은 철폐돼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도 “모든 개인이 자신들의 자녀 수, 출산 간격과 시기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얻을 수 있는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며 재생산권을 침해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또 낙태죄의 작동여부가 국가의 인구정책적 필요에 따라 변화해왔고, 낙태죄를 통한 낙태의 예방 및 억제의 효과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며 낙태죄 폐지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국 지난 11일 헌재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국회는 내년 말까지 인공임신중절수술 가능 기간, 결정의 절차적 요건 등을 정해야 합니다.

헌법재판관들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관들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뉴시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한편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온라인에서는 ‘낙태 허용됐으니 콘돔 안 써도 되겠다’는 등의 일부 남성들의 발언이 나오기도 합니다.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를 주장해 온 맥락을 무시한 채 ‘드립’이랍시고 이 같은 말을 내뱉는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인공임신중절이 불법임에도 여성들이 낙태를 해온 데에는 남성들의 이 같은 인식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회의 개정 논의와 함께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인공임신중절이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제대로 된 성교육과 여성을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한 대상으로 여겨온 남성들의 인식변화로 막을 수 있는 일입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있기까지 낙태죄 논의는 실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여성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양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입니다. 앞으로 이뤄질 국회의 낙태죄 처벌 조항 개정 논의에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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