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지난 문재인 정부 2년의 평가
대체로 방향 맞지만 지지자들의 기대·희망 비해 부족한 정책
대북정책, ‘주권부족 한계’ 느껴져…적극적 대북협력 나서야
속도 더딘 적폐청산…심층적 적폐구조는 전혀 혁파 안 돼
남은 임기 동안 북한과 퇴보 불가능한 신뢰 구축해야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헬조선 문제’ 풀지 못해
재벌에 의존해 정치활동 할 수밖에 없는 한계 드러나
지금 같으면 지지자들도 정권 재창출에 투표할 이유 없어

본지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는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 ⓒ투데이신문
본지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는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지난 5월 10일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 3년차로 접어들었다. 장미대선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2년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등 경제정책과 한반도 운전자론 등 대북유화정책, 재벌개혁, 적폐청산 기조 등을 이어왔다.

<투데이신문>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와 당부에 대해 묻고자 러시아 출신의 귀화 한국인인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를 찾았다. 현재 노르웨이에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0일 오후 스카이프를 통한 화상인터뷰로 진행됐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한국을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에 대한 총평으로 “바른 방향으로 가긴 하지만 너무 소폭이고 거북이걸음”이라며 “지지자들의 기대와 희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정책이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증진이나 대북화해, 내수강화, 수출의존모델 탈피 등의 방향성은 대체로 맞지만, 진도를 거의 나가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노동 정책, 재벌개혁, 대북정책, 적폐청산기조와 관련해 이 같은 아쉬움과 함께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 ⓒ박노자 교수 제공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 ⓒ박노자 교수 제공

소득주도성장 위해선 비정규직 줄여야…평가할만한 관련 정책 많지 않아

Q. 지난해 중순부터 시작된 경기 악화로 정부의 핵심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야권의 비판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대체로 방향성 자체에 대해선 이의가 없다. 여태까지 한국의 큰 문제는 지나치게 무역수출위주로 경제모델이 짜여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제조업 대국인 일본, 독일에 비해서도 한국은 지나치게 수출지향적이었다. 그것을 벗어나야 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선 일단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대상에서 탈피해 소비의 주체가 돼야 한다. 말하자면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뉴딜정책하고 비슷하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보다 많은 소비주체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의 소비를 계획적으로 높여나갔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방향성은 대체로 맞았지만,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유일하게 강력히 추진한 것이 그나마 최저임금상승이었는데, 후속조치가 없었다는 문제가 있다. 이건 영세업자를 강타할 수도 있는 정책이다. 때문에 이와 병행해 영세업자를 위한 임대차보호강화나 건물주들의 임대소득제한 등 영세사업자들을 수탈하는 건물주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결국 많은 영세사업자들이 타격을 받았다. 사실 이 조치 이외에는 소득주도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으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비정규직은 일단 소비를 많이 할 수 없다.

Q. 비정규직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비정규직에게는 소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직장안정성이 중요하다. 한국은 기본적으로는 직장 자체가 복지다. 직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지 않나. 예컨대 한국은 북유럽과 달리 국가가 무제한적으로 생활보호자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만성화된 불안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또 안심하고 비싼 물건을 살 수 없고, 모기지론을 받기도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그들의 소비를 늘릴 수 있고, 내수를 강화시킬 수 있는데, 그쪽으로는 거의 가지 못했다. 비정규직들한테 뭔가 확실한 미래를 약속해주고, 그들이 안심하고 비싼 물건을 사고, 휴가 때 여행도 갈 수 있도록 한다면 내수가 강화돼 수출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임금근로자의 33%, 660만명 정도로,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말과 거의 똑같다.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정규직화하더라도 좋지 않은 조건으로 반발만 샀다. 방향은 맞는데 평가할만한 정책이 별로 많지 않다.

Q. 혁신성장 역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정책 방향이다. 그러나 규제완화 정책에 대한 비판여론도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우선 안전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규제완화 이전에 100번 더 생각해야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참사를 겪은 바 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아주 잘못된 규제완화가 있었다. 특히 선박수입규제를 완화해 수입이 가능한 노후선박의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했다. 그 결과 세월호가 수입된 거다. 이잘못하다가는 큰일 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산재사망사건 통계가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그래서 규제완화에 대해 여론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은산분리 완화 측면과 관련해서는 한국은 지금도 사실상 재벌들의 놀이터다. 거의 재벌들이 소유하고 있는 국가 같다. 한국의 GNP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3%다. 한 회사가 한 나라 경제에서 이 정도 비율을 차지하는 경우는 없다. 가장 근접한 사례라면 영국의 BP(British Petroleum)가 GNP의 7% 정도를 차지한다. 은산분리 정책을 완화시킬 경우에는 정말 명실상부한 재벌왕국, 이제는 재벌이 여태까지 그나마 건드리지 못한 마지막 부분까지 삼켜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당연히 있는 거다.

지난 2016년 7월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울무용센터에서 열린 ‘2회 동네국제포럼’에서 오슬로대학교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6년 7월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울무용센터에서 열린 ‘2회 동네국제포럼’에서 오슬로대학교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재벌개혁, 포기나 마찬가지

Q.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정부의 의지가 후퇴했다는 비판여론이 일고 있다. 어떻게 진단하나

재벌개혁은 그다지 하지 않은 거 같다. 지금도 특정 가문이 순환출자 등의 수법으로 계열사들을 줄줄이 지배할 수 있는 구조는 그대로 남아있는 등 개혁된 게 그다지 없다. 주요재벌기업들이 오너 가문들의 소유물로 사실상 남아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합리적으로 극도로 편중된 소유구조는 경영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큰 문제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한진그룹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재벌 소유주의 무능력한 자녀들이 경영 일선에 진출해 민폐만 끼친다든가 하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거다. 이것을 이번 정부는 사실상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크게 봐서는 재벌과 타협한 거나 마찬가지이며, 백기투항에 가깝다고 본다. 전체 GNP에서 재벌들이 차지하는 비중 등에서도 큰 변함이 없고, 재벌 사내유보금 문제 등에 대해서도 거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수사 중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문 대통령이 직접 만난다든가 하는 걸 봐도 계속해서 재벌소유주들한테는 힘을 실어주는 제스처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 같은 경우에는 지난 정부의 적폐문제와도 깊이 관련 있고, 특히 노동자들의 백혈병 사망 문제 등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초과이윤을 뽑아내 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재벌이다. 현 정권이 이 부분에 대해 무시하면서 삼성과 다시 한번 손잡은 듯한 모습을 보여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Q. 재벌개혁이 미진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그들이 정권을 재창출해야 하는데, 보수투표층 중 일부라도 포섭해야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 노동계나 진보성향의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당연시하면서 보수층에게 계속해서 호소력 있는 제스처를 취하는 부분도 있다. 왜냐면 한국은 여전히 극우분자들이 많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지난번 박근혜 정권에 대한 촛불저항이 있었을 때, 군대의 쿠데타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지 않았나. 그런데 사실상 여태까지 책임자들에 대한 처분이 거의 안됐다. 군대나 보안기관에서는 극우분자들이 지금도 그대로 도사리고 있는 거다. 그들은 정권이 지나치게 나간다면 이 정권에 대해 잠재적으로 어떤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정권이 다소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또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극우든 문재인 정권 같은 중도자유주의자들이든 기본적으로는 재벌에게 의존해서 정치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볼 때, 재벌들의 이해관계 같은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Q.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노동정책 역시 일단 방향은 맞았지만, 진도는 사실상 나가지 않았다. 일단 공공부문부터 정규직화 시키겠다고 문 대통령이 공약했는데, 한국은 공공부문이 굉장히 작다. 보통 산업화된 나라에 비해 훨씬 작다. 전체 근로인구 중에 9%밖에 안 된다. 비교하자면 노르웨이는 33% 정도 된다. 그 안에서 일단 정규직화 시키겠다고 한 건데, 정규직화 대상이 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직원들은 조건이 안 좋다 보니 반발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몰렸다. 또 기타 공공부문에서는 정규직화 자체가 진행이 잘 안됐다. 예를 들어 기간제 교사들의 경우에도, 민주노총도 이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입장 취하고 있어 정규직화가 거의 진척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고등교육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정부는 시간강사법을 강력히 추진해 입법은 시켜놨다. 강사법이 시행되니까 시간강사도 노동자로 인정되고, 나름의 약간의 기득권이 생기는 거다. 대학들은 그마저도 못 마땅히 여겨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를 벌였다. 그래서 지금 대략 1만5000여명의 시간강사들이 밥줄을 잃었다. 시간강사 대학살이 일어난 거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식으로 시간강사법에 저항하는 대학자본에 사실상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개혁 의지가 너무 약하고, 힘도 약하다. 정책의 방향은 맞지만, 실제로 공공부문, 교육부문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그다지 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민간부문에서는 그냥 그대로다. 여전히 중소기업, 하청기업들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대기업들의 이윤이 만들어지고 있다. 

본지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는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 ⓒ투데이신문
본지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는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 ⓒ투데이신문

대북정책, UN 제재 않는 분야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Q. 정부는 그간 대북정책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별다른 타개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정부의 대북정책 전면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 한계를 노출한 게 아닌가 싶다. ‘주권부족의 한계’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사실상 미국의 눈치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미국의 대북정책, 예컨대 하노이 회담 결렬여부 등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치명적이다. 일단 자기 정책을 수립하기 힘들다. 물론 여기에는 UN 제재라는 부분이 있다. 국제법의 일부다 보니 어느 정부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UN 제재와 무관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가족상봉, 남북 간 왕래, 인도주의적 교류, 교육·연구 교류 등 영리활동과 무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 교류의 양을 늘릴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 부분에 대해 너무 조심스럽게 임하고 있다. 일단 미국의 눈치를 강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주권 부족이 느껴진다. 물론 군부가 쿠데타를 아직까지 꿈꿀 수 있는 나라에서는 어느 정부도 그걸 무시하고 진행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도 있다. 때문에 결국 정부는 양쪽의 타협을 종용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고, 긍정적인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그런 역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Q. 그렇다면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정부도 독자적으로 대북정책에 나서야 한다. 일단 북한과 더 많은 교류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앞으로 남아 있는 제일 큰 과제 중에는 남북한 상호군축이 있다. 현재 양측 상비군을 합치면 200만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을 필요가 없다. 같이 줄이려면 양측 군대끼리 어느 정도 상호 신뢰를 가져야 한다. 아직 양국 군 간의 신뢰구축과정에 착수도 못했다. 너무나 느리게 가는 거다. 물론 UN제재를 위반하라고 할 순 없지만, UN이 제재하지 않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는 우리가 보다 적극적인 대북협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친구가 될 수 있고, 나름대로 신뢰가 쌓이고, 그래야 나중에 전쟁위협이니 뭐니 하는 정신병적 사태들을 면할 수 있다.

Q. 정부는 적폐청산 기조를 꾸준히 이어왔다. 보수층에서는 사회통합을 이유로 적폐청산 기조에 반발하고 있는 반면, 진보층에서는 더욱 강력한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해온 적폐청산의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상 청산이 너무나 더딘 건 사실이다. 최순실, 박근혜, 이명박 등 최악의 적폐 원흉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적폐구조가 훨씬 문제다. 예를 들어 사법부에서 판결거래가 가능했다는 것은 사법부다운 제대로 된 기능 자체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판결을 거래할 수 있는 판사는 이미 판사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최근 검찰에서 고 장자연, 김학의 사건에 대해 사실상 더 이상 재수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걸 보면 과연 제대로 된 수사의지를 갖고 있었는가라는 의심도 해본다. 그만큼 사법부나 검찰기구는 사실상 심층적으로 개혁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현재의 적폐청산은 가장 가시적인 원흉 몇 사람이 책임지고 있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적폐의 심층적 구조는 전혀 혁파되지 않았다. 이건 아주 큰 문제다. 지금이야 사법부나 검찰이 일단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어 그렇게까지 큰 위협을 주진 않지만, 극우정권이 다시 들어서면 어떠한 마녀사냥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이명박 적폐정권의 여러 가지 흉악한 유산 중 하나가 바로 양심수를 만든 거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석기 전 의원은 분명히 양심수다. 국제앰네스티도 그렇게 인정했지 않나. 그 사람은 어떤 폭력적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9년형을 받아 지금 감옥에 갇혀있다. 그런 양심수들의 석방도 없었다. 이 전 의원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대체로 다 읽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소신에 대한 형사처벌이라 봐야 된다. 또 표현의 자유 침해이기도 하다. 그가 내란선동을 했다는 것은 결국 무죄로 나왔다.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인데, 그건 명백히 정치적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국보법 자체가 있을 수 없고, 있지 말아야할 법이다. 이런 양심수 석방도 없는 적폐청산이 과연 진짜 적폐청산인가.

Q. 검찰 개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역시 방향은 대체로 맞더라도, 진도는 거의 나간 거 같지 않다. 요즘도 검찰은 계속해서 과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을 계속 보이는 것 같다. 치명적으로 실망스러운 것은 장자연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결국에는 국가기관이 한 신문재벌 앞에 손을 든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가면 재벌이 통치하는 국가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다. 그걸 보면 정권이 나아갈 수 있는 한계 등을 실감한 듯한 느낌이다.

지난 2013년 10월 22일 서울 배재정동빌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누리에서 열린 ‘국정원 민주주의 침해 규탄 기자회견’에서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3년 10월 22일 서울 배재정동빌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누리에서 열린 ‘국정원 민주주의 침해 규탄 기자회견’에서 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文 정부, 노무현 정권 실패 이유 제대로 생각해봐야

Q.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협치를 강조해왔지만, 그 핵심인 여야정상설협의체는 1번의 회의 끝에 재가동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그간 정부의 협치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되도록이면 보수층을 포섭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도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안고서야 가능해진 부분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때는 여야 대연정을 구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본인들의 지지기반 공고화, 확충차원에서는 이와 같은 화해 제스처들을 거절해온 역사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의 극우정치를 보면 본격적 혐오정치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대북혐오가 있는데다가, 난민에 대한 혐오, 이슬람 혐오 등 한국 극우들의 상당 부분이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에 의존하고, 각종 혐오정치에 기반하고 있다. 이 같은 혐오정치는 협치와는 공조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의 독재를 타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비상식적이다. 이런 사람들과는 아마 협치가 어려울 것 같다. 한국 극우정치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혐오정치다.

Q. 문재인 정부로서는 집권 3년차를 맞는 올해와 내년 초가 개혁 입법에 나설 수 있는 마지막 시간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우선 과제는 무엇이라 보나

핵심은 북한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다. 어차피 보다 심층적인 개혁을 할 시간도, 힘도 없을 텐데, 중요한 것 하나는 북한과 돌이킬 수 없는, 말 그대로 퇴보가 불가능한 화해의 고지를 점하는 거다. 이를 위해선 UN이 금지하지 않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최대한 나아가야한다. 예컨대 UN 차원에서는 남북한 사이의 자유 왕래를 금하지 않는 이상, 서로 간의 왕래를 자유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야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인 부분이니까 UN이 간섭할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을 정기화한다거나, 서신 왕래를 복구하는 데에는 UN도 반대할 수 없다. 그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거다. 아울러 특히 군사부문에 있어서는 남북 간에 부단히 서로 만나서 신뢰를 쌓는 등 남은 시간동안 북한과 친해질 수 있는 데까지 친해지고, 퇴보가 불가능한 고지를 점했으면 좋겠다.

Q.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된 과제는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 해당된다. 노동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 불안 속에서 그들을 착취해 초과이윤을 뽑는 것이 한국자본주의 근본모델이자 근본문제다. 민간부문 비정규직들의 고용사유 제한과 같은 것을 문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노동은 사실 비정상이고, 애당초부터 제한돼야한다. 계절노동, 대체노동, 과업 자체가 제한된 노동이 아니라면 모든 고용은 정규직이어야 한다. 그런 대원칙을 노동법에 세우고, 비정규직 사용 자체를 제한시켰으면 좋겠다. 대대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없으면 한국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의 근본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산재사망사고를 보라. 주요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90%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은 그나마 자기 권리 주장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위험천만한 노동을 강요당해도 말 못한다. 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헬조선 문제를 풀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남은 시간동안 이 두 가지만 이뤄도 업적이 될 테다. 지금까지는 방향은 맞았지만, 한 게 별로 없어 아쉽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듣기 불편한 얘기겠지만, 시민사회는 이런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시간도 부족하다.

Q.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에 당부하고픈 말은

늘 바라고 있고 지금도 바라는 것이 ‘제발 대담해져라’다. 여태까지는 너무나 소심한 걸음이었다. 이제는 대담해질 때가 왔다. 그리고 대담해져야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제대로 확보하고, 강력한 우군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대로 가면 이 정권의 잠재적인 지지자들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투표할만한 이유가 별로 없다. 이 정권이 그들에게 해준 것이 거의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지지자들한테 투표함까지 가서 한 표를 던질만한 이유라도 제공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울러 노무현 정권이 끝에 가서 실패한 이유를 제대로 생각해봤으면 한다. 노무현 정권이 잘한 것도 많지만, 못한 것은 미국으로부터의 주권확보에 실패했고, 비정규직 정책에 완전 실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잘못한 부분을 잘 봤으면 한다. 되도록이면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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