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용균 막자더니’ 반복되는 청년노동자 산재 사망…“산안법 이대론 안 돼”
‘제2의 김용균 막자더니’ 반복되는 청년노동자 산재 사망…“산안법 이대론 안 돼”
  • 전소영 기자
  • 승인 2019.06.19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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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건설노동자 김태규씨 추락사
유족 “산재” vs 시공사 “단순 실족사”
현 김용균법, 청년노동자 산재 못 막아
기업 책임 강화한 ‘기업살인법’ 필요
ⓒ뉴시스
지난 1월에 열린 김용균씨 4차 범국민 추모제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올해도 청년노동자 산업재해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중 사망한 故 김용균(사고 당시 24세)씨 사고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청년노동자들을 계속해서 잃어가고 있다.

김용균씨의 사망 이후 우리 사회는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등의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이를 발판삼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이 어렵게 국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제2, 제3의 김용균을 막진 못했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971명,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산재사고 사망률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정부의 약속대로 획기적인 산재사고 감축은 어렵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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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故 김태규 산재사망 진상규명 요구 청년 건설노동자 기자회견 ⓒ뉴시스

제2의 김용균, 20대 청년노동자의 죽음

지난 4월 10일 경기도 수원 소재의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5층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올해 나이 26살의 청년노동자 故 김태규씨였다.

김씨는 화물엘리베이터 안으로 건설 폐기물을 옮기던 중 열려 있던 반대쪽 문밖으로 추락했다. 문과 벽 사이는 43.5cm가량의 틈이 있었고 김씨가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고 발생 35분여 만에 끝내 사망했다.

김씨는 사고 발생 3일 전에 해당 현장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일용직 노동자였다. 김씨는 고층작업 노동자였지만 가장 기본적인 안전모와 안전화 등의 장비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때문에 김씨는 현장에서 사용하다 남은 안전모와 자신의 운동화를 착용한 채 작업을 해야 했다.

또 김씨는 돌이나 벽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 작업자로 계약해 이 현장에 투입됐지만 정작 주어진 일은 건설 폐기물을 옮기는 것이었다. 김씨에게는 생소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씨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화물엘리베이터 역시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화물 엘리베이터(적재용량 300㎏ 이상)에는 1명만 탑승이 가능하지만, 사고 당시 화물 엘리베이터에는 또 다른 노동자가 함께 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건물 외부를 향하고 문이 열린 채 작동했다. 김씨는 열려있던 반대쪽 문밖으로 떨어졌다.

기본적인 안전규정조차 지켜지지 않은 근무환경에 노출됐던 김씨는 끝내 출근 3일 만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김씨 사망 이후 건설사 측의 안전관리 부실로 인한 ‘예견된 사고’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유가족과 노동계에서는 김씨의 사망을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데 따른 명백한 산재사고로 봤다.

그러나 시공사와 경찰은 ‘단순 실족사’를 주장했다. 사고의 책임을 김씨 개인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족과 노동계는 김씨의 죽음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청년 건설노동자 故 김태규님 산재사망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는 지난 13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락의 직접 원인을 실족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검찰은 경찰과 고용노동부를 지휘해 유족들이 주장하는 정황에 대한 의문점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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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열린 산업안전법 전면개정 및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 ⓒ뉴시스

김용균법, 이대로는 안 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은 청년노동자 故 김용균씨의 사망 이후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 다른 청년노동자가 산재사고로 희생됐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는 971명으로, 전년(964명)보다 소폭 증가했다. 이중 김태규씨와 같은 건설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이상이다.

또 노동부가 올해 4월 한 달 동안 공공기관 및 대형 사업장 등 사내하청 업체 사업장 400개소를 대상으로 안전보건 실태 점검을 실시한 결과 지난해 산재 사망자 중 김태규씨와 같은 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40%를 차지했다.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는 지금의 산업구조에서는 김용균·김태규씨와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에 사회적으로 산업재해 사망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실제 사망률이 줄어들진 않았다. 청년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고가 ‘재수가 없어서’ 혹은 ‘운이 없어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안전사고라는 게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고, 안전예방에 돈을 들이지 않아도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는다. 때문에 기업은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 이 같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안법 개정이 추진됐다. 그리고 2018년 12월 27일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8년 만에 이뤄진 전면개정으로 김용균법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는 컸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다. 특수고용 직종에서 영화·드라마 스태프, 화물·운수 노동자 등이 빠진 데다 도급 금지 대상 사업도 당초 기대보다 크게 축소됐다. 

또 건설공사 발주자가 산재 예방을 위해 계획과 설계, 시공단계에서 산재예방 조치를 하도록 하는데 시행령에는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공사로 규정했다. 건설현장 사망 사고 중 20% 이상이 건설기계 장비에서 발생하는데, 그중 65% 이상은 굴삭기, 덤프, 이동식 크레인 등이 원인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 산안법에서는 원청 책임 적용 대상을 타워크레인, 건설용 리프트와 항타기, 항발기 등 4개로 한정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이 같은 개정 산안법과 하위법령은 하청노동자 산재사고를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도급금지 대상 확대와 안전·보건 조치 대상 금액 및 기계기구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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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원들의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 ⓒ뉴시스

산재사고 근절, 해답은 ‘기업살인법’에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원청 기업 총수 등 경영 총책임자에게 산재 발생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른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국회에서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산업재해 사고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보다 강화해야한다는 취지는 동일한 여러 기업살인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조치의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보건조치의무 ▲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재해에 대한 기업 처벌 ▲재해에 대한 정부 책임자 처벌 등을 강화하는 게 기업살인법의 공통된 골자다.

안타깝게도 다수의 법안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김종민 대표는 “개정 산안법에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의 문구가 추가됐고 이전보단 진일보했지만 허점이 많아 실제 당사자들이 체감했을 때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김태규씨 사고도 개정 산안법의 허를 보여주는 예다. 김씨가 근무했던 현장 규모는 50억 이하이기 때문에 개정 산안법의 산재예방 조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기업가나 사업주가 안전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깨우쳐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용균법은 처벌의 상한선은 있지만 하한선이 없다. 처벌에 있어 중요한 지점은 상한선이 아니라 하한선이다. 실형 이상의 하한선을 두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법원이 기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을 때 유죄는 인정되지만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진 않게 된다. 기업살인법은 이 같은 부분을 보완했다”며 “기업의 처벌을 강화해 돈을 쓰게끔 만들고 더불어 정부의 관리·감독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산업재해 사고 이후 처벌뿐만 아니라 사고 이전 예방과 노동자를 대하는 기업과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산업현장에서 사람이 죽는 일은 엄청난 큰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가 노동력을 파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기업에서 심각하게 처벌받고 책임져야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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