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
[칼럼]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9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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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心)을 일으키고,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척도를 가지고 헤아리는 도가 있는 것이다.<『대학(大學)』>

교수님, 시끄러워서 설명이 안 들려요

딸아이들이 어디에서 듣고 왔는지, 전기 모기채의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미세하게 징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가청주파수에 따라 그 소리가 들리는 사람도 있고, 들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내가 말했다.

“그럼 지금 실험을 해 보자.”

여섯 식구가 전기 모기채 주변에 둘러앉았다. 전원을 켜고 버튼을 눌렀다. 딸아이들이 말했다.

“어우, 시끄러워. 진짜 징징하는 소리가 들리네?”

반면, 나와 아내는 동시에 반박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아니, 이게 왜 안 들려? 엄마, 아빠 거짓말 하는 거 아냐? 너무 잘 들리는데?”

“안 들린다니까? 니들이 장난치는 거 아냐?”

아내와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간 뒤에 혼자서 전기 모기채의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까이 대니 아주 얇은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이들이 말한 만큼 들리진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청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

며칠 뒤, 학교 수업시간. 모두들 조용히 내 설명을 듣고 있다.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학생 한 명이 손을 든다.

“교수님, 죄송한데 스피커 전원 좀 꺼주시면 안 돼요? 시끄러워서 설명이 잘 안 들려요.”

“네? 우리 강의실에 스피커가 있었어요?”

뒤를 보니 칠판 양 쪽에 스피커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지금 마이크를 쓰고 있지도 않은데 뭐가 들린다는 거지?

“여러분도 지금 스피커 소리 들려요?”

“네.”

“어? 왜 나만 안 들리지? 혹시 여러분들 저한테 장난치는 거 아녜요?”

“아뇨. 하하하하.”

반신반의하면서 저쪽에 있는 컨트롤 박스에 갔더니 전원이 들어와 있다. 우선 이걸 껐다.

“이제 됐어요?”

“네.”

“이상하네. 왜 나한테만 안 들리지? 하하하. 뭔가 속는 기분이 드네?”

“푸하하하.”

“아니, 그럼 여러분들 지금 몇 주가 지나도록 계속 이런 잡음을 들었어요?”

“네.”

“그럼 아까 저 학생처럼 이야기를 해 주셨어야죠. 시끄러운 걸 참으면서 들었다는 거네?”

“아, 앞자리 쪽이 좀 시끄럽고, 뒤에는 잘 안 들려서 괜찮고요. 교수님도 아무 말씀을 안 하셔서…….”

“아이고, 진작 말을 해 주시지. 진짜 아무 것도 안 들렸어요.”

척도를 가지고 헤아린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 이야기를 해줬다.

“글쎄. 그랬다니까? 저번에 애들이 전기 모기채 갖고 나한테 장난 친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였다니…….”

아내가 박장대소를 한다.

“하하하, 당신 혼자 바보 됐겠네.”

거실에 혼자 남았다. 윙윙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명증(耳鳴症)을 달고 산 지 무척 오래됐다.

‘그래. 늘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무슨 소리가 들리겠어?’

한숨을 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나는 늘 주변 사람들한테 이명이 있다고 말을 했는데, 이명이 없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 내 이명은 나만 들을 수 있는 거니까. 그나마 나는 그렇다고 말은 했잖아. 그런데 학생들은 나한테 말을 안 했어. 이명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고 참은 거잖아. 서로 웃고 넘어갔지만, 나는 애들이나 학생들이 나한테 장난을 치는 줄 알았지. 왜 처음부터 믿지 못했을까?’

나이가 들어서 듣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과 학생들의 ‘들린다’는 말을 내가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믿지 않은 건 잘못이다. 학생들이 몇 주 동안 참고 있었던 것은, 참을 만해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지금껏 살아온 일상에서 어른한테 무언가를 말했을 때 묵살 당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는 것도 공부고,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며, 괜스레 무언가 말을 해서 튀는 사람으로 찍히는 것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기에 그런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아까 수업 시간에 나한테 말했던 학생은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을 하면서도 무척 조심스러워 했지. 나는 그간 학생과 가깝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마음을 다른 어른들보다 잘 알며,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오십보백보로구나.’

“이른바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心)을 일으키고,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척도를 가지고 헤아리는 도가 있는 것이다.”<『대학(大學)』>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대학』의 유명한 장구가 떠올랐다. 윗사람, 다시 말해 옛날의 임금이 노인, 어른, 고아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다분히 유가의 교훈을 강조하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상대의 처지를 처지대로 인정하라’는 뜻으로 읽었다. 아닌 게 아니라 ‘척도를 가지고 헤아린다’는 말속에는 입장을 바꿔 서로 배려하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 ‘척도’는 상대를 헤아리는 최소한의 기준을 뜻한다. 참 당연해 보이고 쉬운 말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왜곡된 기억 >외 6권

헤아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  

“입장을 바꿔 생각해라.”, “내 생각만 고집하지 마라.”,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라.”는 말을 끊임없이 나와 남에게 던지며, 나름 그러했다고, 그러하려고 노력했다고 은근히 자부해왔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간 나는 남이 듣지도 못하는 나의 이명을 알아달라고 하면서, 남의 이명은 외면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한다.

이후엔 더 이상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러기까지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이렇게 보면 학생들은 나를 배려해 준 것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선생 노릇하기 어렵고, 어른이 되기도 쉽지 않다.

남의 처지를 헤아려 보는 일,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하려면 쉽지 않은 일, 그러나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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