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후 2년
총파업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 “약속은 어디로”
자회사 통한 정규직화 ‘미봉책’…직접고용 해야
8할은 성공한 정책, 일부 문제 사회적 합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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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열린 ‘7·3 총파업 비정규직 철폐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곪을 대로 곪아버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갈등이 결국 터져버렸다.

지난 3일 10만명에 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운집했다. 역사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초 연대다. 이들이 열일 제쳐두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이유는 단 하나, 비정규직 차별 해소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약속했다. 공공부문에서 우선적으로 비정규직을 없애고 민간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급물살을 탔고, 이번에야말로 그동안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설움을 자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문 대통령 임기 3년 차인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를 상대로 열띤 투쟁 중이다. 이들은 자회사 전환이라는 미봉책이 난무하고 있다고 규탄하며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더불어 차별 해소와 처우개선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 전문가는 자회사 전환을 유지하되 전문성을 갖추고 책임경영을 하도록 하는 한편 이후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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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연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을 찾았다. 이날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시작으로 향후 차차 민간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촛불이 만든 대통령’이란 꼬리표를 단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기대만큼이나 정부의 추진력도 상당히 빠르게 속도가 붙었다. 문 정부는 같은 달 16일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립하고, 다음 달 23일 일자리 100일 플랜 발표, 7월 20일에는 ‘공공부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구체화했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정규직 전환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충분한 노사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추진한다. 단 판단기준 완화를 병행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또 고용안정, 차별개선, 일자리 질 개선 순으로 단계적으로 진행하며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지속 가능한 방향이 되도록 한다.

전환 기관은 우선 1단계로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국공립교육기관 등 852개 기관을 대상으로 하며, 2단계는 자치단체출연 출자기관·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자회사, 3단계는 민간위탁기관으로 정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집계된 공공부문 노동자는 217만명이며 이중 비정규직은 약 41만6000명으로, 전체의 19.2%로 확인됐다. 가이드라인에 기초해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기간제 7만2000명, 파견용역 10만3000명 등 17만5000명과, 전환제외자로 잠정 분류된 60세 이하 중 별도 정년 설정 등을 통해 전환 가능성을 보이는 청소 경비업종 종사자 등 3만명까지 총 20만5000명으로 예상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공부문 853개 기관 중 총 17만4868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이는 문 정부가 2020년까지 목표로 삼은 20만5000명의 약 85.4%에 달하는 수치다.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인원 중 전환이 완료된 인원은 13만3000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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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8월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소공원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 ⓒ뉴시스

자회사 전환 채용에 노동계 ‘냉랭’

수치상으론 최종 목표치의 80%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자회사 전환을 통한 정규직 채용인 탓이다.

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인천공항을 예로 살펴보자. 문 대통령의 선언 이후 인천공항공사는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위해 그해 9월 공항시설·시스템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를 설립했다.

또 올해 4월 1일 인천공항시설관리로부터 공항운영서비스사업을 인수해 여객터미널운영, 교통, 환경미화 등 공항의 서비스 업무를 담당할 자회사 ‘인천공항운영서비스’를 출범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해 기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70%인 6845명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다.

다른 공공기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1단계 전환 대상이 되는 중앙행정기관, 교육기관,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등 637개 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진행 또는 추진 중인 기관이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37개소로 조사됐다.

이 중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334개소를 분석한 결과 33개소에서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진행 또는 추진했으며, 그 규모는 3만2514명으로 확인됐다.

공공부분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한 기간제 노동자를 제외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중앙부처 산하 전체 공공기관의 파견·용역 노동자가 5만947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54.7%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이 의원은 “정규직 전환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 기본 취지인데 자회사로의 전환이 남발되고 있다”며 “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기본철학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일부 부적절한 사례일 뿐 자회사 전환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는 획일적 시각은 잘못됐다고 봤다.

노 소장은 “기존에 시험이라는 절차를 통해 입사한 노동자들이 있어 임금 등 이들과의 처우조건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에 이 갈등을 피하고자 정부가 자회사를 설립한 게 사실”이라며 “자회사 전환이 많은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 할 수 있지만 사업체의 내부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회사를 통한 전환이 문제가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자회사가 책임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부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자회사들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자회사 전환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실현한 전체 사업장 중 문제가 있는 사업장의 비율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자회사 전환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는 획일적인 시간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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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열린 ‘7·3 총파업 비정규직 철폐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 ⓒ뉴시스

거리로 나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최근 몇달 동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연이어 발발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본부 서울대병원분회(이하 서울대병원노조)는 지난 5월 21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과 병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지난해 8월부터 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전문가협의체’를 운영해왔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관련해 병원 측이 형평성을 이유로 자회사 전환 방식을 추진하며 병원의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노조 측과 갈등을 빚으며 결국 이 같은 파국을 맞았다.

또 지난달 4일에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사측의 일방적인 자회사 통보에 반발하며 투쟁을 선언했다. 도로공사는 이달 1일을 기준으로 31개 톨게이트영업소를 자회사로 전환했다. 그리고 16일자로 13개 톨게이트영업소를 추가로 전환했으며, 지난 1일자로 전국의 톨게이트영업소를 자회사로 전환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50%를 차지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투쟁을 선언했다. 지난달 17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하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삭발식까지 거행하며 자신들을 학교 비정규직을 당당한 교육의 주체로 인정해 달라는 취지의 ‘학교 비정규직(교육공무직)에 법제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지난 3일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10만명이 총파업에 돌입한 이른바 ‘7·3 총파업 비정규직 철폐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상 최초 연대파업이자 최대 규모 파업으로 기록됐다.

노광표 소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그들의 열악한 임금이나 고용조건이 사회적으로 논란되기도 했다”며 “과거 정부에서는 고용불안이 컸는데 이제는 고용의 안정성이 확보됐고 더 나아가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잠재돼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욕구가 폭발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진전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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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성공, 남은 과제는 사회적 합의”

노동계가 이처럼 대대적인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문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들었고,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레임덕이 우려되기 때문에 비정규직 차별 해소 실현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노 소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고 정부에 따라 노동정책이 후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조급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노 소장은 “ 공공부문은 정부에 성격에 따라 노동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조급함이 있는 것 같다”며 “지난 수십 년간 쌓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다 보니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 갈등을 관리해나가는 게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80% 성공했다고 본다. 다만 20%의 문제들 때문에 꼬리가 몸통을 잡아먹는 격이 됐다”며 “이 정책을 통해 고용안정성 확보 등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사례만 전부인 것처럼 보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노 소장은 “교원자격증이 있는 교수와 시간제 강사의 임금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이처럼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후 임금 등 처우에 대한 합의가 없다 보니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장의 노동자들이 동일가치, 동일노동을 원하고 있고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임금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는 전환분기점에 들어섰다. 공정성과 합리성에 대해 그동안 감춰져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사회적 토론 등을 통해 이를 수용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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