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신화(神話)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라고 나온다. 

신화에는 고대인이 가진 우주 전체에 대한 관념과 이 세상이 형성된 과정의 원리가 들어있다.  

예를 들어 단군신화 속에는 하늘에 있는 절대적 주재자(主宰者)의 존재,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산업적 바탕, 한민족이 하늘의 후손이라는 자긍심 등이 나타난다. 

오래된 신화일수록 나라와 민족이 형성된 과정과 의미가 나타난다.

신화는 역사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신화는 기록이나 과학으로 실증할 수 없기에 역사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의미다. 

이것이 과연 맞는 주장일까? 

신화 자체도 역사책에 기록된 것이다. 옛 사람들이 ‘실증된 것’만 기록으로 남겨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신화 자체가 기록으로 남겨야 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신화를 발견하고 읽고 즐기는 것이라는 의미다.

결국 역사와 신화는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 신화가 존재하고 살아 숨쉰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역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신화가 살아 숨쉬기 때문에 우리는 신화라는 말을 다른 의미로 자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전적 의미로 신화에는 “절대적이고 획기적인 업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또 다른 뜻도 있다.

실제 우리는 “고도성장의 신화”, “한강의 기적”, “모래밭에서 조선소를 지은 신화” 등 신화라는 말 자체나 신화에 존재하는 개념인 “기적”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말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거의 신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과 유사한 정도의 업적을 남겼고, 이로 인해 그 누군가가 신적 위치에 필적할 위치에 올랐다고 인정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신화가 역사 안에 공존하는 것이라는 점, 절대적이고 획기적인 업적을 비유한다는 점, 그리고 누군가의 업적을 신의 그것과 동일시한다는 점과 신화가 역사의 일부라는 점을 함께 고려해보자. 역사는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진보의 방향으로 흐른다. 

이 말을 ‘역사는 계속 “발전”의 방향으로 향한다’고 바꾼다면, 역사에서 발전은 필연적인 흐름일 것이다.

발전은 단순히 양적인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질적인 향상도 중요하다. 

또한 역사가 진보의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일정한 속도 일정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때로는 잠시 뒤로 후퇴하거나 오랜 시간 정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우상향(右上向) 한다.

그리고 잠시 뒤로 후퇴하거나 오랜 시간 정체하는 동안 기성의 질서와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현상도 일어난다. 이것은 다른 말로 “신화의 붕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이 신화로 인정됐고, 이로 인해 그 이면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고통, 민주주의의 파괴 등을 언급하면서 경제 성장을 비판하는 것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신화에 대한 모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빠른 경제 성장의 신화”가 붕괴되면서, 한국에서는 인권과 복지, 민주주의를 성장과 발전의 일부로 포함시켜서 고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더뎌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양적 경제 성장과 질적 발전이 모두 추진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또 다른 신화가 붕괴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선진국에 대한 동경”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한국은 안 돼”, “우리 민족은 안 돼”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러한 “우리 스스로에 대한 비하”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 독립에 대한 열망과 열망의 실천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기획된 고도의 식민지배 전략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비하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지속되는 서양과 일본에 대한 신성시와 동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신화가 한참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상황에서 정치, 스포츠, 음악, 과학, 경제 등에서 보여준 눈부신 성과로, 서양과 일본에 대한 동경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보여준 놀라운 위기 대처와 정부 당국의 방역과 통제력은 서구와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남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도 선진국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어쩌면 이전에 언급했던 교육의 변화, 개별 종교의 변화도 이전부터 유지하면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던 신화적 무엇인가를 과감하게 붕괴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수차례 얘기한 명제,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아마 우리가 신화로 여겼던 많은 고정관념을 바꿔야 됨을 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신화의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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