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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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성범죄, 살인 등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을 민간 차원에서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대학생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신상이 언급된 당사자는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자신은 범행 사실이 없다며 해명했지만, 디지털 교도소 측은 증거가 충분하다는 취지로 그의 신상공개를 유지했다.

그간 일각에서는 디지털도소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해왔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 공개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자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 출처 = 지난 7일 캡처한 디지털교소도 페이지 일부>

죽음 부른 ‘디지털 교도소’ 신상공개

지난 3일 서울 소재 명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A(20)씨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후 A씨의 사망 배경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 7월 12일 디지털 교도소에는 ‘OO대 OOOO과 지인능욕범’이라는 제목으로 A씨의 학교, 학과, 학번, 전화번호 등 신상이 공개됐다.

지인능욕은 지인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하는 행위로, A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같은 학과 소속 B씨의 사진과 음란물 합성을 의뢰해 성적으로 모욕하는 내용의 글귀를 적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공개된 정보는 본인이 맞으나 범죄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도착해 링크를 누른 적이 있고, 비슷한 시기에 모르는 사람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준 적 있다”며 “그 사이트 때문에 핸드폰 번호가 해킹 당한 거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디지털 교도소 측은 피해자로부터 범죄 사실을 확인했다며 신상공개를 유지했다.

또한 A씨가 사망한 이후에도 “고인이 정말로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면 스마트폰 디지털포렌식과 음성파일 성문 대조를 통해 진실을 밝혀달라”며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누명이라고만 주장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뿐이다”라고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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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심판” vs “마녀사냥 우려”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의견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매우 분분하다.

디지털 교도소는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다. 엄연히 구분하면 불법 개인정보 유포 사이트에 해당된다.

때문에 살인과 성범죄 등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한다는 취지에 공감을 사면서도, 공식적인 수사기관이 아닌데 범죄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직장인 윤모씨는 “디지털 교도소의 설립 배경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웰컴투비디오’ 손정우만 하더라도 죄질이 무거워 미국으로 송환만 됐어도 최소 수십년의 징역형을 받았을 텐데 한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낮은 양형을 받았다”며 “이 밖에 성범죄 관련 사건에서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솜방망이 처벌이 처벌이 이뤄져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범죄자가 형을 산다고 한들 죄질에 비해 짧을뿐더러, 그들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동일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그들을 피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신상공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모씨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처벌에 관대하다고 하니 디지털 교도소 운영에는 동의한다”며 “다만 정말로 범죄자인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상이 공개되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운영은 하되 증빙 등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반면 황모씨는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가 사람을 죽인 일은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악플이나 스캔들로도 사람이 죽는데, 개인의 범법 행위를 알리는 사이트를 민간이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무슨 권리를 가지고 이 같은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다만 “성범죄자 알림e처럼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사진 출처 = 지난 7일 캡처한 디지털교소도 페이지 일부>

정의와 보복의 경계

현행법 상에도 신상공개에 관한 규정이 존재한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혹은 죄를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 등 요건을 갖췄을 때 얼굴, 실명, 나이 등 신상이 공개 가능하다.

그럼에도 민간이 나서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나선 배경에는 죄질에 비해 미흡한 처벌, 이로 인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깔려 있다.

앞서 언급된 시민들의 의견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디지털 교도소를 찬성하는 이들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디지털 교도소의 운영자 역시 “대한민국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을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고 한다”며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다.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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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조계 전문가는 누구에 의해서도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실제 디지털 교도소에 게재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신상 가운데 해당 사건과는 전혀 관련 없는 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가 포함돼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교도소에 모 대학 교수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과 신상정보가 공개됐는데, 경찰 조사 결과 대화 내용이 거짓으로 드러나 문제가 됐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본보에 기고한 칼럼 <디지털 교도소, 누가 그들에게 칼을 쥐어 주었나>에서 “사이버교도소를 통해 특정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는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처벌받을 수 있다”며 “이런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해 사이버 교도소가 운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상공개제도는 재범 예방과 피해자들로 하여금 범죄 상황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예방 차원이 돼야 하지 죗값을 치르기 위한 보복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명분은 좋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은 언젠가 선의의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칼이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찰은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에 대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다만 서버를 해외에 두고 있고, 사건 연루자들이 다수로 추정돼 수사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법 테두리 밖에서 자칫 죄 없는 사람까지도 가해자로 몰아갈 수 있는 디지털 교도소의 위험성은 분명하다. 다만 이 같은 사이트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지지 받는 이유에 대한 사법 기관의 깊은 고민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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