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 배우 유역비, 홍콩 탄압 경찰 옹호
디즈니, “정치적인 입장 존중한다” 묵인
‘#BoycottMulan’ 보이콧 운동 확산돼
“민주화 롤 모델 한국, 외면해선 안 돼”

<사진 출처 = 세계시민선언 홈페이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니키 카로(Niki Caro) 감독의 영화 <뮬란>이 한국 극장가에도 상륙했다.

2020년 월트디즈니 라이브 액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서 주목받았던 만큼 흥행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러나 기대와는 고전이 예상되고 있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유역비의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 경찰에 대한 옹호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이후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는 <뮬란> 보이콧(Boycott)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해온 한국 시민단체도 국내 3대 멀티플렉스에 상영 중단 항의 서한문을 전달하고, 관련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보이콧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화에 대한 보이콧이 관련 사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번 보이콧이 지닌 의의는 과연 무엇일까.

경찰에게 연행되고 있는 홍콩 민주화 시위 참여자 ⓒAP/뉴시스
경찰에게 연행되고 있는 홍콩 민주화 운동 참여자 ⓒAP/뉴시스

피로 물든 홍콩, 그리고 탄압

지난해 3월,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은 중국으로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국과 홍콩은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일국양제[一國兩制] 관계로 얽혀있다. 홍콩은 정치·경제 등에 있어 독립적인 체제를 꾸려 자치국가라는 말이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며 중국은 일국양제를 근거로 독재를 강화했고, 이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만은 날로 커져갔다.

홍콩 시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송환법이 적용될 경우 중국 정부에서 자신들의 체제에 반하는 인사나 인권 운동가를 송환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그럼에도 람 행정장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홍콩 시민들은 반대 운동을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됐다.

홍콩 경찰은 곤봉과 최루탄, 고무총 등 폭력으로 맞섰다. 진압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 간 무력충돌까지 벌어졌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홍콩의 이 같은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는 중국·홍콩 정부의 부당함과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취지에 대해 매우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주요 국가 정상들도 공식 석상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에 지지 의사를 밝히는 등 세계 곳곳에서 지지와 연대가 이어졌다.

중국 정부 지지 사진 ⓒ소셜 미디어 캡처/뉴시스
중국 정부 지지 사진 ⓒ소셜 미디어 캡처/뉴시스

‘폭력 진압’ 지지한 주인공
제작사 “정치적 견해” 묵인

그런데 최근 홍콩 민주화 운동을 향한 지지와 연대가 영화 <뮬란>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뮬란>은 디즈니의 액션 블록버스터 작품으로, 중화권 톱스타로 알려진 배우 유역비가 주인공에 오르며 전 세계의 주목과 기대를 한몸에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변곡점을 맞았다. 유역비가 자신의 SNS 통해 공개한 한 장의 사진이 화근이었다.

유역비가 게재한 문제의 사진은 빨간 배경에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나를 쳐도 된다’,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의미의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이는 홍콩 민주와 운동 진압을 지지하는 취지로 사용되는 사진으로 알려졌다.

유역비뿐만 아니라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견자단도 ‘홍콩 중국 반환 23년을 축하한다’는 내용을 자신의 SNS에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배우의 행보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해온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게다가 디즈니 측이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정치적인 입장을 존중한다’며 발언을 옹호하는 의미의 입장을 내 비난은 더욱 확산됐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한 문구도 논란이 됐다.

디즈니의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처음 공개된 <뮬란>의 엔딩 크레딧에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공안국에 감사를 표한다’는 문장이 등장했다.

신장위구르는 수년동안 100만명의 위구르인들이 교화소에 강제 구금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으로 중국 내에서는 인권 탄압의 상징처럼 통한다. 때문에 디즈니에는 위구르족의 인권 탄압을 묵인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보이콧 뮬란 홈페이지 일부 캡처 ⓒ투데이신문
보이콧 뮬란 홈페이지 일부 캡처 ⓒ투데이신문

“탄압·폭력 소비돼선 안 돼”

이후 홍콩과 대만, 태국의 민주화 운동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BoycottMulan’, ‘#MilkTeaAlliance’ 등 해시태그를 통한 <뮬란> 보이콧이 점차 확대됐다. 이는 그간 홍콩 민주화 운동에 연대해온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뮬란> 보이콧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해온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이 그 중심이 됐다.

세계시민선언은 지난 7월 1일 월트디즈니코리아 컴퍼니 본사 앞에서 뮬란 보이콧 선포식을 열고 <뮬란>의 배급·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제작사와 국내 3대 멀티플렉스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측에 뮬란 상영 중단 항의 서한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세계시민선언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민주항쟁의 역사를 지닌 이 땅에서 탄압과 폭력이 소비될 자리는 없다’는 우리의 목소리를 디즈니가 못 들었을 리 없다”며 “그러나 디즈니와 국내 멀티플렉스 회사들은 끝끝내 한국에서 <뮬란>의 개봉을 강행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홍콩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여전히 부당하게 구금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기 때문에 참담한 폭력을 절대 소비할 수 없다”며 “유역비, 견자단에게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디즈니는 조직적으로 그들을 옹호하고, 폭력을 ‘정치적 입장’으로 치부했다. 삶을 걸고 맞서 싸우는 이들이 거대 자본에 지워지는 일을 지켜만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단체는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이다. 우리 모두 연결돼 있고, 반드시 함께 손잡고 서로를 마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며 “명백한 탄압을 내포한 <뮬란>부터라도 소비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디즈니와 국내 멀티플렉스들은 국내 개봉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규탄했다.

<사진 출처 = 보이콧 뮬란 홈페이지>

한국의 침묵은 ‘모순’

단체의 목소리에 디즈니와 CJ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모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뮬란>은 결국 국내 스크린에 걸리게 됐다.

다만 보이콧의 영향인지 흥행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개봉 첫날 <뮬란>은 예매율 약 30% 정도 기록했다. 이보다 앞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재확산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날 예매율 약 85%를 기록했던 영화 <테넷>과 비교하면 고전이 예상된다는 평가다.

세계시민선언은 이번 보이콧이 단순히 영화의 흥행 여부에 매진돼선 안 된다고 말한다.

세계시민선언 이설아 공동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보이콧은 폭력으로 소비하는 불건전한 콘텐츠임을 알리고, 이를 계기로 홍콩 시민들이 인권탄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계승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가 (현 상황에 대해) 묵인하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라며 “홍콩을 지지해야만 비로소 우리나라가 처한 문제들도 주장할 수 있다. 민주와 자유의 가치는 국가에 따라 나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대표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주역인 정치권에게도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촉구했다.

이 대표는 “미국은 하원 의원들이 디즈니사에 입장을 표명하라고 항의 서한문을 보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기반으로 성립된 국가가 침묵하는 것은 굉장히 의아한 일”이라며 “특히 현재 집권 인사들은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태도는 청년들 시각으로 볼 때 매우 모순적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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