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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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영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소식이 연이어 이어졌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영아가 베이비박스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모 가정집 냉장고에서는 생후 2개원 된 영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지난 10월에는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영아를 거래하는 취지의 글이 올라와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유기가 아닌 입양이라는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입양을 위해서는 친모의 친생자 출생신고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입양 완료 전까지는 친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자녀가 남는다.

아이 유기는 원치 않은 출산이거나 부모가 양육할 능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입양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호적에 아이의 이름을 선뜻 올리기 쉽지 않으며, 결국은 아이를 유기하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안타까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비밀출산제’가 주목받고 있다. 실명 출산이 어려운 산모가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비밀출산제 도입을 골자로 한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하는 등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영유아 유기의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위기임신 출산 지원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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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유기 반복에 ‘비밀출산제’ 주목

지난달 3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실치한 베이비박스 주변 드럼통에서 영아 시신이 발견됐다. 발견된 시신에는 탯줄과 태반이 붙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의 CCTV를 조사한 결과 아이의 생모가 유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같은 달 30일에는 전남 여수에서는 두 살배기 아이가 사망한 채 냉장고에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아이의 생모는 2년 전 자택에서 홀로 이란성 쌍둥이를 낳았고, 출생신고 전 아이가 사망하자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보다 앞선 10월에는 중고거래 사이트 ‘당근마켓’에 36주된 영아를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게재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처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이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경기 수원을)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2019년까지 10년간 발생한 영아유기는 1272건으로 집계됐다. 한 해 평균 127건의 영아유기가 발생한 꼴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아살해도 110건에 달했다.

영아유기 지속적 발생의 대표적 원인으로 입양특례법 개정이 꼽히고 있다.

2012년부터 개정 시행 중인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에서는 입양 전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이 부모 밑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이처럼 출생신고가 의무화되다 보니 호적상 출생기록이 남는 것을 꺼리는 부모의 유기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 베이비박스를 최초로 도입한 주사랑공통체 이종락 목사도 2018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베이비박스 설치 초기에는 한 달에 2~3명이었는데, 입양특례법 개정 시행 이후 한 달에 많게는 28~30명 정도 들어온다. 9배 정도 증가했다”며 “출생신고가 돼있어야만 보육원이나 입양기관에 맡길 수 있게 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는 낙태 아니면 유기, 인신매매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출생신고 의무화가 유기아동 발생 원인으로 지목되자 ‘비밀출산제’ 필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비밀출산제는 실명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부모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제도다. 위기에 놓인 영아와 미혼부모의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취지다.

실제 몇몇 국가에서는 이 같은 제도를 시행 중에 있다.

예컨대 프랑스는 베이비박스는 금지돼 있지만 비밀출산을 가능하도록 해 생모의 의사에 따라 친자관계 단절성을 인정하도록 정했다.

독일은 베이비박스와 비밀출산을 모두 허용하면서도, 16세 이후 자녀가 원할 경우 친생모의 신원 조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체코는 비밀출산을 허용하되, 생모의 대체 주민번호와 가명을 제공하고 실제 인적 사항은 밀봉해 향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서만 개봉 가능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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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보호출산제 적극지지 기자회견 <사진 제공 = 주사랑공동체>

최근 국내에서도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비밀출산제 도입을 골자로 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보호출산 특별법)을 발의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제정안의 핵심은 임산부가 일정한 상담 절차를 밟은 후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비밀출산·익명출산)’ 보장이다. 다만 보호출산을 원할 경우 보건소 또는 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상담기관에서 원가정 양육 및 보호출산 등에 관한 상담을 이행해야 한다고 정했다.

상담기관 측에는 상담을 끝낸 임산부의 신원 및 개인정보 등을 비식별화 조치를 취하도록 정했다. 또 부모의 성명·본·등록기준지·출생연원일 및 주민등록번호, 부모의 유전적 질환 및 기타 건강상태, 자녀의 출생 연월일시 및 출생장소 등이 포함된 아동의 출생증서를 작성하도록 하되, 이는 밀봉상태로 아동권리보장원에 이관돼 영구보관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는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친생부모의 동의가 있을 때만 열람 가능하도록 정했다.

아울러 친부모는 입양특례법에 근거해 가정법원의 허가 또는 민법에 따른 친권상실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보호출산 철회가 가능하도록 하고, 출산 후에도 보호출산 신청이 가능토록 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주사랑공동체와 전국입양가족연대, 한국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등 단체는 ‘지켜진 아동의 가정보호 최우선 조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해 보호출산 특별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공대위는 보호출산 특별법이 곤경에 처해있는 임산부의 개인정보를 익명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며, 태아의 건강과 생명을 공적 의료체계 내에서 지켜주고, 출산 후 생모의 사회 복귀 및 아이의 새가정 안착을 공적 체계 속에서 안전하게 보장하는 법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김지환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 혹은 도저히 양육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낙태와 유기 뿐”이라며 “보호출산 특별법은 두 가지 외 하나의 선택지를 더 주자는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생명권을 우선해 이를 보호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임신부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며 “보호출산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모든 아동의 출생 등록을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와 함께 시행되게 되면 아동 출생신고관련 법제도 개선에 상호보완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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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린 출생통보제 도입 및 출생신고절차 개선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위기임신출산 지원 우선돼야

하지만 일부 미혼모단체나 아동인권 단체 등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아닌 위기임신출산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들은 보호출산제는 자녀를 출산한 여성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기보다는 출생기록 을 은폐함으로써 부모와 자녀의 확실하게 분리하는 제도라고 지적한다. 자녀를 은폐하고 분리하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임신초기부터 숱한 고민을 했을 여성을 위한 위기임신 출산지원체계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혼모협회 ‘아임맘’,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등은 지난달 25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혼모에 대한 인식개선으로 자녀를 책임지고 키우는 미혼모가 증가하고 있다. 또 일시적으로 자녀를 양육하지 못할지라도 여건이 개선되면 아동을 양육하길 원하기도 한다”며 “영아유기를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은 출생기록 은폐가 아니고 위기임신출산여성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출생신고제는 부모의 법적 지위 및 아동과의 관계가 확정돼야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해 이로 인해 출생신고가 늦어져 아동의 인권이 침해되기도 하고 특히 미혼부의 출생신고, 자택출산한 여성의 출생신고가 지연돼 자녀 양육을 원하는 부모들이 개선을 원하고 있다”며 “보호출산제가 아닌 출생통보제 도입 및 출생신고 절차 간소화를 통해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위기임신출산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아동이 부모에 의해 양육되고, 부모와 관계에서 자존감과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산 및 인력 확보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 같은 노력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보호출산제의 도입만을 이야기한다면 원가정보호의 원칙을 실현해야 할 국가가 출생기록 은폐 및 부모와의 단절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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