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뉴시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뉴시스

■ 변방에서 중심으로 오다

나는 지난 2017년에 투데이신문 『신(新) 삼국지인물전』을 통해 변호사 최강욱을 두고 ‘벼슬을 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있는 검찰개혁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강욱은 자신의 저서 『권력과 검찰 – 괴물의 탄생과 진화』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로 일하며 ‘총리실 불법사찰 사건’을 통해 권력과 검찰의 결탁을 끊어 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검찰은 권력을 지닌 조직이고, 최강욱은 한 명의 변호사일 뿐이었다. 방송에 나가고 책을 냈으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종횡무진 활동을 하여 이를 바탕으로 인지도를 높였지만, 이것만으로는 자신의 확신을 실천으로 옮기기에 부족했다. 실천으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뚜렷하다. 열심히 좌충우돌 하더라도 권력을 지닌 조직을 혼자만의 힘으로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 당나라의 문인인 한유(韓愈)는 이렇게 말했다.

“앞에서 돕는 사람이 없으면 아름답더라도 이를 드러낼 수 없고, 뒤에서 돕는 사람이 없으면 성대하더라도 이를 전할 수 없으니 이들 두 부류는 서로 의존하지 않은 적이 없다.”(“莫爲之前, 雖美而不彰, 莫爲之後, 雖盛而不傳, 是二人者, 未始不相須也.”한유(韓愈), 『여우양양서(與于襄陽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권력과 검찰의 결탁을 끊어 내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능력을 펼칠 수 없다. 그 힘은 바로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고, 현재의 권력은 옛날의 왕처럼 백성의 위에 군림했던 개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준다. 최강욱은 2018년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는데, 현재의 대통령이 최강욱을 앞에서 돕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최강욱을 권력의 근처에 데려다준 사람은 국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현재의 대통령 역시 최강욱처럼 권력과 검찰의 결탁을 끊어 내는 일, 이른바 ‘검찰개혁’에 힘을 기울여 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직시절부터 현재까지 ‘검찰개혁’은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숙원과도 같았다. 이를 이루려면 역시 뒤에서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 2020년 12월 현재 유배객이 되어 있는 조국을 민정수석으로, 최강욱을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한 것은 검찰개혁이라는 숙원을 이루는데 이 두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리를 주는 사람, 자리를 얻어 소신을 펼치는 사람, 자리를 얻거나 주는 방식은 옛날과 지금이 다르고 같아서도 안 되겠지만, 어떤 일을 성공하는 데에는 능력자가 필요하고, 능력자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은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면 최강욱과 현재의 대통령은 한유의 말처럼 ‘서로 의존하는 관계’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관계의 바탕에는 국민의 염원과 신뢰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강욱은 현재 열린민주당 당대표로 있다. 청와대 비서관에 비하면 좀 더 큰 자리에 앉은 것이니 전보다 많은 일을 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일은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우므로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 사람이 자의로 정치인이 되었는지 타의에 의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검찰개혁’이라는 막중한 과업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2020년 11월, 최강욱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사보임했다. 최강욱은 어떤 모습의 정치인이 되며, 어떠했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 담대함과 강직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

앞서 밝힌 것처럼 최강욱은 오랜 기간 사회 활동을 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려왔지만, 전국적인 인지도를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비서관이 되고, 이후 2020년 4월에 실시된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민주당 간판을 걸고 나와 당선되면서 이전보다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아직 정치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만한 지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이력과 현재까지의 행보를 통해 정치인 최강욱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최강욱은 1986년 서울대 법과대학 사법학과에 입학했으며, 1990년 같은 학교 대학원 법학과에 입학해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4년 제11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10년 간 군 복무를 하고 소령으로 제대했다. 이후 법무법인 ‘청맥’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2018년 청와대 비서관이 되기 전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재개발 재건축위원회 위원’, ‘제18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 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경찰청 경찰개혁위원회 수사개혁분과위원’으로 활동했다.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경험을 쌓은 사람이라 하겠다.

그러나 역시 정치인 최강욱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강직함과 담대함이 아닐까 한다.

“2004년 1월부터 국방부 검찰단에서 근무한 그들은 몇 건의 군납비리, 공병비리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창군 이래 처음으로 현역 대장인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개인비리로 구속해 군 안팎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2005. 7. 『신동아』>

짧은 말이지만 이 안에 담긴 의미는 짧지 않다. 당시 최강욱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비리가 있으면 누구나 구속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소령이 현역 대장을 구속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할 수 있다고 말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걸 아무나 할 수 있지는 않다. 이 사건은 신일순이 벌금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비교적 가볍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불의에 대항해서 소신을 펼친 최강욱의 기개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최강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군의 장성 진급 비리도 수사하여 준장 한 명과 대령 한 명을 구속하려 했지만, 국방부의 장관과 차관이 나서서 최강욱의 요청을 묵살했고, 끝내 최강욱은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전역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핵심인물이라는 의혹이 있던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전혀 성과가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하겠다.

이런 면에서 나는 최강욱을 중국 삼국시대 손권 진영의 문관이었던 감택(闞澤, ? - 243)과 유사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208년, 조조는 유표가 다스리던 형주를 차지하고 내친 김에 손권의 강동지역까지 수중에 넣고자 했다. 손권 진영에서는 장군인 황개가 참모인 주유와 미리 짜고, 군중이 보는 앞에서 죽도록 얻어맞은 뒤에 조조에게 거짓 항복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때 황개가 쓴 거짓 항복 편지를 조조에게 전달한 사람이 감택이었다. 떠나기 전 감택은 황개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장부가 한 번 세상에 태어나서 공을 세우지 못하면 초목과 함께 썩어갈 뿐이지요. 장군께서 이처럼 몸을 돌보지 않으시는데 제 어찌 작은 목숨 하나를 아끼겠습니까!”

조조는 황개의 편지에 항복을 하러 오는 날짜가 쓰여 있지 않다고 하면서 감택을 다그쳤고, 끝내 이 사람을 죽이려 했다. 감택은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서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라! 만약 이대로 싸운다면 주유한테 사로잡히고 말 거다! 무슨 병법서를 읽었다고 자랑을 하느냐! 배운 것도 없는 놈이로구나. 너 같은 놈한테 죽는 내가 아까울 지경이다! 만약 약속을 했다 치다. 한 쪽에서 급히 손을 쓰지 못하는 일이 생겼는데 저 쪽에서 약속대로 나선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일은 형편을 봐 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나를 죽이려 하니, 참으로 배운 것도 없는 놈이로구나!”

조조는 감택의 강한 기백에 눌려서 의심을 풀었다. 이후 황개는 스무 척의 배에 기름을 먹인 섶을 가득 싣고 와서는 조조 진영으로 놓아버렸다. 유명한 적벽대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식 역사서가 아닌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일화일 뿐이지만, 감택의 담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후에도 감택은 221년, 나라의 명운이 걸린 유비와의 싸움을 앞두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큰 싸움의 경험이 부족했던 육손을 대장으로 추천했다. 육손은 그 기대에 부응해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싸움을‘이릉대전’이라고 부른다. 감택은 중요한 승부처에서 강적에 굴하지 않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감택은 담대하고 강직했다. 최강욱은 말한다.

“(열린민주당은)‘등대정당’으로 빛을 비추며, 개혁의 장애물을 앞장서서 깨뜨리는 ‘쇄빙선’의 역할을 하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신생 정당으로 아직 미숙하지만 상당히 체제를 정비했고, 반드시 큰 바다에서 민주당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드린 바 있습니다.”

“조국 장관 사건을 보며 국민들이 이제는 검찰정치의 실체를 체감하게 되었고, 무소불위의 검찰이 언제든 평온한 삶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측근을 감싸느라 보인 여러 불법적인 행태는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너무도 확실히 웅변하고 있습니다.”<이상 파이낸셜뉴스, 2020. 7. 12>

이처럼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적벽대전, 이릉대전보다 더 치열하게 이루어질 검찰개혁을 반드시 성공시켜 주기를 바란다.

■ 정치인 최강욱에게 바라는 것

최강욱은 2020년에 ‘초선’의원이 되었다. 이제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모르긴 하되 현재 최강욱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마련해 가는 과정에 있을 것이고,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쉽게 말해 적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당대표까지 되어 버렸다. 속된 말로 ‘인생은 실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간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담대함과 강직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훌륭한 정치인이 될 줄로 믿지만, 최강욱도 사람인 이상 심력을 꽤 많이 소모하고 있을 것 같다.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 되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군주가 된다. 이런 까닭에 성인(聖人)은 종일토록 길을 다녀도 치중(輜重, 군수물자를 실은 수레)을 떠나지 않고, 비록 영화롭게 호사를 누리며 살더라도 한가로이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 전차 만대를 부리는 주인이면서 어찌 그 몸을 천하에 가볍게 처신하겠는가. 가볍게 처신하면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히 굴면 군주의 지위를 잃게 된다.”(“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 聖人, 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老子』 26장. 전통문화연구회 번역 그대로 옮김)

어떤 상황에서든 여유를 가지고 언행을 신중히 하라는 말이다. 사실 최강욱은 지금껏 불의와 싸우면서도 늘 침착했고, 불의한 사람을 엄중히 꾸짖었지만 기품을 잃은 적이 없다. 이 글처럼 살아왔다고 할 것이다. 최강욱의 글을 보면 다소 강할 때도 있고, 누군가를 꾸짖거나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 상대를 급박하게 다그칠 때도 있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그런 가운데서도 들뜨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어 보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늘 의연히 대처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저 옛날 사람이 점잖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자신을 보전할 수 있고,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검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고려대 문과대학 한문학과 강사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한마디>
<왜곡된 기억> 외 7권

“그리고 법은 국가의 저울이고, 시대의 준승(準繩, 수준기와 먹줄)입니다. 저울은 경중을 정하는 것이고, 준승은 굽고 곧은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지금에 법률을 제정할 때, 관대하고 공평함을 중시해야 하는데, 죄인을 엄하고 가혹하게 다루려 하고,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을 멋대로 드러내고 마음속에 높낮이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으니, 이것은 준승을 버리고 굽고 곧은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며, 저울을 버리고 무게를 정하려는 것이니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니겠습니까?”(“且法, 國之權衡也, 時之準繩也. 權衡, 所以定輕重, 準繩, 所以正曲直. 今作法, 貴其寬平, 罪人, 欲其嚴酷, 喜怒肆志, 高下在心, 是則舍準繩以正曲直, 棄權衡而定輕重者也, 不亦惑哉.”『정관정요(貞觀政要)』「논공평(論公平)」 전통문화연구회 번역 그대로 옮김)

중국 당태종의 신하였던 위징(魏徵)이 한 말이다. “지금에 법률을 제정할 때, 관대하고 공평함을 중시해야 하는데, 죄인을 엄하고 가혹하게 다루려 하고,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을 멋대로 드러내고 마음속에 높낮이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다.”고 한 대목에 주목해 본다. 아마 최강욱이 국민에게 호소하고, 검찰에게는 질책하는 말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강욱이 공직에 몸담고,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 영역에까지 들어서게 된 것은 만인에게 공평한 저울이 되어야 할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최강욱 혼자서 검찰개혁을 이루어 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강욱은 나라의 저울인 법을 바로잡는 데 큰 역할을 할 사람이다. 검찰을 개혁하기로 마음먹고 정치에 뛰어들었으니 지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검찰 개혁도 매우 어렵고 갈 길이 멀지만, 이 일을 끝낸다고 해도 어찌 보면 이 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사법 개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