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노동자들 ⓒ뉴시스
건설현장 노동자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10여년간 건설노동계의 숙원사업이던 건설업 최저임금제, 이른바 ‘정적임금제’ 도입이 확실시됐다. 노동계에서는 환영하고 있는 반면 업계에서는 재검토 건의문을 전달하는 등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노사간 극명하게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18일 일자리위원회와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공사 적정임금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오는 2023년 1월부터 도입되는 적정임금제는 다단계 건설생산 구조로 인한 건설근로자 임금삭감을 방지하고 건설산업 일자리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원도급사>하도급사>팀·반장 등 순으로 구성된 다단계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임금삭감을 통한 가격경쟁 및 저가수주, 팀·반장의 중간 수수료 수수 등으로 인해 노동자의 임금수준 하락 등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건설업 취업기피로까지 이어졌다.

또 건설근로자의 실질임금이 줄어들며 국내 숙련인력이 부족해져 불법 외국인력이 이를 대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주처가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 바로 적정임금제다.

정부는 건설업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고자 2017년부터 적정임금제 도입 방향을 발표하고 20건의 시범사업과 제도화 관련 연구를 시행했다. 또 노동계, 업계, 전문가, 관계부처 등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일자리위원회 건설산업 TF를 꾸려 최종 도입안을 마련했다.

이날 공개된 도입방안에 따르면 공사비 가운데 직접노무비를 받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다. 다만 직접노무비 지급 대상은 아니지만 측량조사, 설치조건부 물품구매 등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할 예정이다.

국가 재정부담과 타 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구가 및 지자체 300억 이상 공사를 우선으로 하되, 추후 도입 효과 등을 분석해 시행범위를 순차적으로 넓혀갈 방침이다.

적정임금은 임금직접지급제, 전자카드제 등을 기반으로 수집한 건설근로자 임금정보를 기초자료로 활용해 산정된다. 수집된 실제 임금 정보를 기반으로 다수가 지급받는 임금 수준인 ‘최빈값’을 직종에 따라 산출해 적용한다.

이 밖에도 적정임금이 제대로 지급됐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자카드시스템과 임금직접지급제 시스템 개선, 문자나 메신저 등을 통해 근로자가 적정임금 이상을 지급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피드백 시스템 도입 등도 이뤄진다.

아울러 적정임금제 시행을 앞두고 공공기관 사전준비 등을 고려한 15건 내외의 추가 시범사업도 실시한다.

정부는 적정임금제 도입을 통해 그간 건설업계에 만연해 온 불공정 거래를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국토부 건설정책과 김근오 과장은 “적정임금제 도입으로 다단계 건설생산 구조로 인해 발생한 근로자 임금삭감 문제 등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건설현장에 청년들이 돌아오고, 중장기적으로는 건설산업 일자리 환경이 개선돼 산업 경쟁력 및 공사 품질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길동의 한 건설현장 ⓒ뉴시스
신길동의 한 건설현장 ⓒ뉴시스

업계 “도입 전면 재검토 필요”

건설업계는 적정임금제는 시장경제 질서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자리 감소와 산업간 불평등 부작용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적정임금제 도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 등 6개 단체는 “그동안 적정임금제가 지닌 근본적 문제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건설노조 의견을 중점적으로 세부 시행방안을 논의했다”며 “충분한 제도적 보완 없이 건설산업에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제도로 건설업계의 우려와 불만이 극대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작업조건이나 경력, 숙련도 등을 근거로 결정돼야 하는 임금을 법적으로 규제한다”며 “건설근로자의 임금이 다른 산업을 크게 상회하는 상황인데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 다른 산업에서도 산업별 최저임금제 도입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주자에게 제한된 노무비를 받아 모든 근로자에게 중간임금 수준 이상으로 지급하게 되면 생산성 등을 고려해 미숙련·신규 노동자 고용은 기피할 수밖에 없다”며 “청년유입은커녕 고령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1년 6월 국회 앞에서 열린 ‘건설 노동자 적정 임금제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2011년 6월 국회 앞에서 열린 ‘건설 노동자 적정 임금제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노동계 “효과 이미 증명돼”

반면 노동계는 시범사업을 통해 적정임금제의 긍정적 효과가 이미 증명된 만큼 정부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한 ‘적정임금제 시범사업 성과’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적정임금제를 도입한 현장이 도입하지 않은 현장보다 4~16%의 임금상승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내국인 고용비율도 증가했다. 대체로 건설현장 인력의 30%가량은 외국인이지만 적정임금제가 도입된 현장은 내국인이 90% 내외였으며, 100% 내국인으로 채워진 현장도 2곳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재희 교선실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적정임금제는 저희가 2010년 이전부터 주장해왔던 터라 늦음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확정돼 환영하는 입장”이라며 “다만 업계에서 반대 의견이 거센 상황이다. 적정임금제의 도입 취지, 이를테면 건설근로자 처우개선과 고용안정, 청년 진입유도 등을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업계 입장이 거세기 때문에 정부가 이에 휘둘릴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시범사업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 적정임금제가 도입되면 근로자의 임금이 인상되는 건 물론이고 내국인 노동자의 진입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충분히 평가하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것들의 정점은 적정임금이 돼야 한다. 적정임금이 현실화되고 나머지 제도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을 대 건설현장이 좋은 일자리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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