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펜대2: 너라는 세상’ 참여작가 박현경

28년 동안 아이와 함께한 이야기 담아
그저 손이 많이 가는 아이 키운다 생각
장애, 극복의 대상 아닌 이해의 대상
내가 속한 세상의 이야기로 봐주길

구립동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난 2017년 장애인 권익옹호 사업의 일환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주제로 한 <펜대: 나를 찾다>라는 에세이 출판 사업을 기획해 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에서 풀어낸 <행복추구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장애 가족 입장에서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 출판 프로젝트 <펜대2: 너라는 세상>를 기획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장애 가족은 여러 종류의 가족 형태 중 하나이지만, 그들은 세상의 편견 속에서 고립돼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장애 가족의 다양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내 장애 인식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투데이신문은 도서 <펜대2: 너라는 세상>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 장애와 가족,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애 인식개선을 위한 프로젝트, <팬대2: 너라는 세상>은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다룬 1편에 이어 가족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기획됐다. 

<팬대2: 너라는 세상>의 공저 박현경 작가는 집필 과정 자체를 두고 성찰과 힐링의 시간이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무심결에라도 내뱉는 날에는 덜컥 겁부터 났던 그다. 누군가의 동정 어린 시선이나 배려의 뜻으로 건넨 격려조차도 견디기 부담스런 상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글쓰기 시간은 스스로에게 대화를 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박 작가는 단 한 순간도 수동적인 적은 없었다. 20대에는 간호사를, 30대에는 아이를 위한 음악치료 공부해 음악치료사로 활동해왔고, 이제는 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히 전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였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고, 가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제부터 본질적인 ‘나’로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박현경 작가의 남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20대에는 대학병원 간호사였고, 30대 중반에 장애가 있는 큰 아이를 위해 음악치료에 입문하여 18년째 음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뇌병변장애, 지적장애가 있는 28살 큰 아이를 포함해 세 명의 남자아이들, 남편과 살고 있다.

Q. 이번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28년 동안 아이와 내가 살아간 이야기, 함께 성장한 이야기를 한번쯤 써 보고 싶었다. 아이가 좋아져서인지, 나의 욕심을 내려놓아서인지, 어찌되었건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편안해졌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었다.

Q. 참여를 결심하기 전에는 걱정이나 희망적 기대가 있으셨을 것 같다. 어땠나.

책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글쓰기 수업을 받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장애 아이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과거 아팠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이제 겨우 딱지 생긴 상처를 다시 피나게 하는 일은 아닌지 싶었다. 감정에 복받쳐서 글쓰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에 누가 책을 사서 읽어 줄까? 이런저런 걱정이 있었다.

Q. 아직도 한국사회는 장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가. 어쩌면 지난 세월은 장애 가족에 대한 편견과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애 아이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의 아이와 짝이 되는 걸 싫어하는 엄마들 틈에서 편견과 싸웠다기보다는 조용히 버텼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일기나 글로 풀었다.

Q. 자녀들끼리의 사이는 어떤가. 장애 유무가 아이들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장애가 있는 형과 두 살 터울인 둘째, 12살 터울의 셋째가 있다. 커가면서 관심거리와 삶의 공간이 달라져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형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한다

Q. 방송이나 영화에서는 장애 자녀는 마치 짐이나 업보처럼 여기며 그려내지 않는가. 이에 대한 생각은.

처음에는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나에게 이런 일이..” 였는데 지금은 짐이나 업보로 생각하지 않고 손이 좀 많이 가는 애를 키운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신의 섭리나 축복으로 생각할 만큼 종교적이지도 않고.

Q. 앞서 인터뷰한 분들도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장애와 장애가정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이 세상에는 개인의 계획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질병이나 장애가 그렇다.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장애는 가까이 봐야 이해가 되고 잘 보면 예쁘다. 장애아를 키우는 것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가족이 하나 되면 심각한 일도 사소한 일로 웃어넘길 수 있다. 장애가 있으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편이 불행을 가져올 거라는 건 편견이다.

Q. 평소에 글쓰기에 익숙했나. 아니면 이번 과정을 통해 도전하게 됐는지.

일기는 자주 쓰고, 가끔 친구에게 손편지도 쓴다. 소소한 즐거움으로 간단한 이벤트 행사에 몇 번 글을 올려 본 적이 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글을 많이 써 본 적은 처음이다.

Q. 책쓰기 과정 중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면.

합평시간에 “요즘 여자 아이들이 팀을 이뤄 축구를 해요?” 라고 해서 다른 젊은 예비작가들로부터 살짝 나이든 사람 취급 받았다. 여선생님이라는 내가 사용한 단어도 매의 눈을 가진 분이 조심스럽게 지적해 주었다. 남선생님이라고 안 쓰는데 여선생님은 구시대적 단어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과 다른 사람들이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이 달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Q. 글이 완성돼 가는 모습을 보며 본인 스스로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

과거 힘든 기억,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겼다. 글은 쓰면 쓸수록 빠르게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Q. 같이 참여하는 작가님들과의 소통을 통해 느낀 점이 있으신지요.

‘내 경험과도 일치하는 내용을 어쩜 저리도 디테일하고 야무지며 기발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조금 쓰는 사람으로서 글 잘 쓰는 사람이 참 부러웠다. 내 글에 공감해 줄 때는 동기간처럼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Q. 사실 이 모든 과정이 치유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면서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고, 현재를 고마워하며, 아이와 함께 하는 밝은 미래를 꿈꾸는 모든 과정이 치유의 과정이다.

Q. 자신의 경험적 고백을 글로 풀어낸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부담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땠나.

잊었다고 생각하는 아픔을 다시 끄집어내야하는 것이 고통이었지만 글이 되고 보니 아픔은 희석된 느낌이고 감정정리도 됐다. 이런 게 힐링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일단 쓰는 행위가 힐링이지만, 글을 읽게 될 가족이나 지인이 뭐라고 할지 벌써부터 부담이다. 누군가에게 동정을 받거나 지나친 칭찬 또한 받고 싶지 않다.

Q. 구체적으로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장애가 있다는 것은 엄마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다. 그리고 남의 얘기도 아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대할 때 불편하고 다르다고 느끼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장애마다 특성이 있기에 보여지는 단점보다 강점을 봐 주는 노력은 꾸준히 해야 한다.

Q.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가지게 된 관점이나 생각이 있었는지.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했다. 그러자 이전에 보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아이에게 문제라고 느꼈던 것들도 자세히 보니 아이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 내가 무심했구나, 성급했구나, 속마음을 보지 못했구나하며 반성했다.

Q. 출간 이후에 다른 계획은.

몇 편의 글을 쓰면서 글 쓰는 게 훈련이라는 걸 느꼈다. 꾸준히 책을 읽고 매일 일기를 쓸 계획이다. 출간 이후 반응이 좋아 다른 일들로 확장되길 바란다.

Q.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 엄마들이 쓴 글’ 이라는 방점을 찍진 않았으면 한다. 재미와 감동, 의미가 골고루 배어 있는, 내가 속한 세상의 이야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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