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노동의 역사

민주화 속에 못다 핀 노동

진정한 인간노동이란

“진정한 인간노동이란 무엇인가?” 사회적불평등과의 끝없는 마찰, 팬데믹이라는 가혹한 감염병의 현실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는 불투명한 미래의 사회. 불안한 사회를 외쳤던 찰스 테일러의 말도 옛말이 된 것인지, 개인주의로서의 인간의 문제를 넘어서, 기계 속의 바퀴에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통제된 사회의 구조는 어떤 판옵티콘(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형태)보다 안타까운 우리 노동현실의 고통과 불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디지털플랫폼 노동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의 비중은 높아지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인권(운동)은 아직까지도 불평등과 실업에 맞서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개인의 생계와 권리는 나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프리케리아트(precariat)”, precarious(불안정한)와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인 이 용어가 현대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임금은 갈수록 형편없이 낮아질뿐더러,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긴장의 연속이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고 있다. 기계로부터, 기술로부터,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되지 않기 위한 노동의 현장을 말이다. 우리 개인의 실존을 지켜내기 위한 행위와 작업으로 활동을 가치 있게 만들어가기 위해서 실천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로. 진실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상품의 상업가치가 노동시간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결정되고, 하루의 작업량과 맞물려 상품가치보다 큰 가치를 생산한다”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자본론』을 상기시키며 인간노동의 가치가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이 맥락은 지금의 현실과 비교하게 한다. 특히 디지털환경이 만들어낸 구조, 비물질노동과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은 디지털유목민의 활동은 더욱 확장되면서, 기술소비자본주의시스템은 노동소외의 역사를 더욱 급전진시키는 ‘매개’가 되었다.

“방식과 시대만이 다를 뿐, 그 구조와 틀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노동소외, 흔히들 노동생산물로부터 개인의 생산활동은 분리되며, 노동으로부터 얻은 자본수익은 사실상 이익창출을 위한 지배층이 수가를 해간다. 수익을 챙겨가는 사람과, 끊임없이 노동력을 통해서 노동을 판매하는 사람. 이 두 가지로 사회의 시스템은 굴러간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외침, 스스로가 노동소외를 당하지 않기 위한 당당한 요구와 부당한 것들에 대한 자신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활동이 우리들의 역사 속에 있었다. 바로 노동운동가라는 이름으로 외쳐진 노동의 역사.

“노동을 하기에 오늘도 우리는 움직인다”

진정한 노동의 의미를 향해 나아간 노동운동가들의 활동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노동의 현장은 자기발언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되기 위한 노력을 다하며 변화를 꿈꾼다.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댓가와 공정성을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는 노동을 향한 뜨거운 열망과 집념으로 일궈낸 1980년대 민주화속에 못다 핀 노동의 권력과 항쟁이 존재한다. 민주화시대 노동운동 방향을 모색하게 한 계기의 시작, 1980년대. 당시 기록과 흔적이 만들어낸 인간노동의 현장은, 어떤 열정보다도 뜨거웠다.

#실천을 하다

살아 움직이다

진실함, 진짜 노동자

1980년대는 살아 움직이는 진실함과 진짜 노동자의 본질을 향한 고군분투가 기운생동(氣韻生動)한 시대였다. 당시 한국사회는 군부권력, 노동환경, 임금투쟁 등의 현실과 맞닿으면서, 개인의 불안과 고통을 증폭시켰다. 왜곡, 은폐, 탄압으로 얼룩진 사회. 당시의 각박한 노동현실과 ‘잠재울 수 없는 민주화의 열풍’2)에 눈을 뜬 시대의 ‘살아있는 리얼리즘’. 1980년대의 노동과 민주화 항쟁은 삶의 현장이자, 인간노동을 향한 목소리를 낸 시기였다. 민주화를 외친 이한열, 전태일과 함께 전환기의 한국문화의 격변을 보여준 문화적 움직임이 시작됐다. 미술계에서도 이 움직임은 “70년대 중반 경부터 몇몇의 화가들이 당시 현실을 경험하고 우리미술에 대한 투철한 자기인식을 하면서 80년대 들어 하나의 물결을 이뤄내기 시작했다.”3) 이 중심에 있었던 신학철, 임옥상, 이종구, 민정기, 박불똥, 황재형 등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활동가이다. 1979년 「현실과 발언」, 「두렁」, 「임술년」과 같은 소그룹운동의 발발, 1980년~1984년 민족미술협의회, 민중문화운동과 그 주역들이 전국조직이 결성됐다. 이들이 향한 곳은 ‘인간’과 ‘삶’의 미술로 가는 방향성을 찾아가는 방법. 바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왔고,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실천한다. 진실함을 찾아가기 위한 진짜 노동자의 모습을. 현실과 미술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감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황재형(1952~)이라는 화가에 나는 주목했다. 어둠 속의 노동현장에 깔린 암흑과 불안의 한국사회에 리얼리즘이 무엇인가를 알려준 그. 황재형은 보여줬다. 붓을 들고 거친 표현의 질감을 캔버스 위에 살리며, 살아있다는 감정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절박함과 고통, 인간의 희노애락의 감정을 담아낸다는 것, 실존을 향한 인간의 경험이 노동의 힘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게 하는 순간을 만나게 한다. 황재형의 발걸음에서 우리는 인간노동의 가치를 주목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오늘도 실천한다

1952년생 황재형은 민중미술 2세대로 사회를 향한 솔직한 붓질로 삶의 노동자이자, 삶을 재생시키는 역할을 실천했다. 20~30대에 80년대 사회를 경험한 청년세대, 황재형은 모순과 갈등이 가득 찬 환경을 몸소 경험했다. 생각한 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황재형의 세상에는 회귀본능이, 지나온 과거가 그 시대를 잊지 말아야 하는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황재형은 인간의 조건과 자연을 향한 그를 둘러싼, 우리들을 둘러싼 현실사회에 무감각하지 않았다. 외면할 수도 있는 현실을 담대하고도 묵직하게 표현하고자 한 황재형은 인간의 삶과 불안한 사회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근래에 황재형은 ≪황재형:회천≫이란 회고전으로 노동기록과 흔적들, 당시 삶의 체험의 현장을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를 통해서 ‘광부와 화가’, ‘태백에서 동해로’, ‘실재의 얼굴’이라는 테마로 삶의 터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묻는다.

“나의 캔버스가 곧 현실이었고, 현실개조의 희망, 그 자체였다”고 황재형은 말했다.4) 무엇보다도 경험을 통한 표현으로 ‘살아’ ‘움직이는’ ‘실천하는 노동자’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화가다. 현재와 분명 다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 ‘주름’, ‘땀’, ‘무게’, ‘쥘 흙’, ‘뉠 땅’. 한국의 ‘살아있는 리얼리즘’이 무엇인가를 알린 경적소리가 아닌가?

황재형, <징후>, 캔버스에 유채, 112.1x162.2cm, 1980, 작가소장

황재형은 자신이 경험한 현실과 긴장관계에 놓여있으면서도, 저항을 하는 지점을 찾았다. 바로 직접 경험한 장소에서, 그리고 그 대상을 통해서 사유한다. 황재형의 붓은 날카로운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징후Symptom>(1980)는 한 개인의 고독과 슬픔을 사무치게 느낄 수 있는 자연의 포효다. 숭고함보다는 거대한 폭풍우를 몰고 오는 어둠 속에서 빛이라는 것이 과연있을까, 하는 숨막히는 절제와 파괴가 있다. 폐허속에서 낭만을 찾았다기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캔버스라는 광활한 대지에서 황재형은 외로운 사투를 벌였다. 황재형의 붓 끝에서 나온 생생한 기억들이, 혹은 현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아준다. 황재형이 본 세상의 현실은 고독과 불안의 현장이었다.5)

#블루칼라의 디스토피아

일하는 사람 따로

이익을 챙기는 집단 따로

황재형, <철암역>, 캔버스에 유채, 130x193.8cm, 1984~2006, 개인소장

한국사회의 산업화는 전후복구사업, 서울재건사업추진으로 새마을운동과 신시가지 건설, 도시정비가 이뤄지고 1979년 석유파동이후로는 서울은 국제적 도시로 1인당 GDP수준과 연간성장률이 상승했다. 현재와 다르지 않은 과거의 현장. 빈부격차와 소득불평등의 악화, 블루칼라 노동의 디스토피아다. 부익부빈익빈현상, 노동소득분배율의 감소와 함께 사회 속의 노동은 달콤하지 않은 실연의 연속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79년 황재형은 도시가 아닌 자발적으로 탄광의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광부로서 노동의 현장, 강원도 강릉 정동, 구절리, 함백 지역 등지에서 황재형은 감추어졌던 진실과 마주했다.

현실의 풍경. 광부로서의 생활에서 황재형은 철암역의 풍경을 포착하며, 당시의 산업화가 만들어 낸, 불안한 사회의 표면을 꺼내 들었다.

한 여성이 뒷짐을 지며, 정면을 응시하며 서 있다. 주변에는 낡고 오래된 건물들과 간판들이 보인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길을 지나가는 여성, 멀리에는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한쪽 모퉁이에서는 두툼한 점퍼를 입은 남성들이 모여 서로 대화를 오가고 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고된 하루를 살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날씨 탓인지 날이 컴컴하고, 눈이 휘몰아치는 듯한, 추운 날씨가 느껴진다. 어쩌면 붓자국의 거침없는 휘감김의 표현 탓인지 붓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바람에 따라가는 듯한 거친 날씨를 더욱 고조시킨다. 바로 이 <철암역Cheolam Station>(1984~2006)에서 느껴지는 어둠 속의 풍경은 고독하고 불안한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어떤 추위보다도 혹독하다. 황재형에게 다가온 산업화의 한국은 ‘풍요속의 빈곤’, 고통과 불안이 정제된 환경이었다.

“캔버스에 묻어난 황재형의 붓자국은 그의 태도였고, 행동이었다. 거침없이 돌진하는 듯하지만, 무언의 외침이랄까. 황재형에게 캔버스는 행동의 장이다”

#본다는 것의 의미

멀리보면 희극,

가까이보면 비극

황재형, <우리는 늘 소가 넘어갑니다.>, 캔버스에 머리카락, 181.8x227.3cm, 2012~2018, 작가소장

탄광촌에서의 노동현장은 산업화의 또 다른 모순을 발견한 장소였다. 지금과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현실은 양면성을 띠었다. “이익을 챙기는 집단 따로, 노동하는 사람 따로” 누구를 위한 노동인가? 2012년 황재형의 작품의 제목처럼, <우리는 늘 소가 넘어갑니다(속아 넘어갑니다)>(2012~2018). 넘어진 소의 얼굴이 캔버스에 가득 메운, 이 작품은 커다란 소의 눈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인간을 위해서 끊임없이 온종일 일을 하는 소. 소의 코걸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는데, 소처럼 일하는 우리 인간노동과 무엇이 다른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감각이 깨어지는 순간. 일하는 사람 따로, 이익을 챙기는 집단 따로. 모든 것이 약자와 강자로 분리돼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황재형은 <황지330>, <산업전사>, <도끼를 들다>를 통해 우리에게 알린다. 탄광에서는 이익을 챙기는 집단과 그곳에서 기계적으로 노동을 하는 이들의 습관적인 행위와 작업 그리고 생산물을 통해서 소외된 노동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애환과 고통을 말이다.6) 물가가 상승해도 오르지 않은 급여를 받으며, 지금과도 다르지 않은 그 당시의 현실의 혹독함이 지금 나는 낯설지 않다. 어떻게 보면. 나아질 수 없는 열악한 급여와 조건으로 삶은 나아질 수 없는 지독한 현실이였다는.

황재형, <탄광으로가는길>, 캔버스유채, 97x130, 1996

 

#노동자로서의 나, 행동화가

실존적 해방으로부터 행동!상황!실천!

탄광의 현실과 마주하다

황재형의 노동은 어떤 감정이입보다도, 적극적이다. 추상적인 것을 표현할 때 흔히 감정을 이입하여 주관적인 생각을 표출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황재형의 감정이입은 생각을 넘어서 실존적 행동을 먼저 앞세웠다. “사회를 향한 제스처와 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해있었는가. 이방인으로서 탄광을 들어가 이방인으로 머물지 않은 황재형의 발길. 황재형은 노동자의 일터에 들어가, 노동의 현장에서 몸소 체험과 생계를 이어갔다. 도시가 아닌 탄광과의 대면. 과감한 변화보다는, 망각하고 있는 혹은 상흔이 난무했던 지난 과거의 현실을 연결시켜 준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해준 황재형. 때로는 피하고 싶은 순간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감각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돌진했다.

황재형, <산업전사>, 캔버스에 유채와 혼합재료, 1451x112cm, 개인소장

탄광에서 황재형은 행동했다. 캔버스는 하나의 무대가 돼,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실존적인 해방, 행동화가로서의 활동을 펼친다. 많은 시간을 적지 않게 탄광에서 보내며 그 시간을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다면, 그의 작품을 쉽게 논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이다. 탄광에서 만난 사람들부터 그곳에서의 노동의 현장, 그리고 그곳의 광활한 풍경까지 어느 하나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 사실 우리는 탄광의 역할과 그 존재의 이유를 알고는 있지만, 실제 경험을 해본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황재형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당시의 한국사회와 그 현실의 발전 속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노동자의 인생을 말이다. <산업전사>(1982)에서 보여 지는 이 순간의 장면은 한 개인의 실존에 묻어나는 고통과 슬픔의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황재형의 작품 중에 하나로, 익명성을 띠는 한 사람의 얼굴은 가려져 있다. 누군가의 모습, 누군가의 거울이다. 화폭 속에 담겨진 어둠 속에 빛을 밝히는 불빛은 더욱 애처로워 보인다.

황재형, <도시락>, 알루미늄, 스펀지, 스프레이, 220x160x43cm, 작가소장

황재형의 도시락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도시락은 어머니의 손길과 따듯한 밥 한 그릇에 행복을 느끼는 감정이 연결된다. 하지만 황재형의 <도시락>(1981)은 알루미늄, 스펀지, 스프레이로 제작된 보통의 도시락이 아니었다. 도시락에 담겨진 따듯함이 이미 오랜시간 사라져버리고 차디찬 밥을, 허기를 채우는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빠르게 먹고 있다. 도시락이라는 정겨움의 상징이 살기 위해서, 배고품을 가시기 위해서 먹는. 다른 풍요로움과는 다른 여유가 없는 시대의 광부의 삶의 현실을 보여준다. <외눈박이의 식사>(1984~1996)는 그 단적인 예시의 작품이 아닐까? 홀로 힘들게 식사하는 광부의 삶의 고단함을 알린다. 과연 인간의 삶은 무엇을 향해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황재형, <톱을 간다>, 캔버스에 머리카락과 채색안료, 162.2x112.1cm, 작가소장

<톱을 간다>(1998~2018)에서도 황재형은 노동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황재형은 빠르게 움직이는 노동자의 손동작을 포착했다. 도끼를 들고, 톱을 가는 노동의 하루. 캔버스에 머리카락과 채색안료를 혼합한 작업으로, 익명성으로 우리는 누구의 양손인지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고, 반복되는 패턴으로 작업을 하고있는 행위를 감지할 수 있다. 양손을 더욱 동적으로 보여주는 붓자국들은 하루의 고된 노동의 양을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할까?

황재형은 그런 화가였다. 황재형의 노동으로부터 우리는 탄광촌의 현실을 알게 됐다. 그가 탄광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현실을 알 수 있었을까? 현재는 폐광도시로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재생되어가는 문화공간의 장소가 된 이 곳. 우리가 하지 않았던, 소외된 것들에 대해서, 소외된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알려준다.

황재형의 행동이, 또 하나의 기록과 흔적, 노동의 산 역사를 증명한다는 것을. 오늘도 우리는 노동을 한다. 어떤 노동도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둠 속에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지속되는 노동의 현장은 낮과 밤이 없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을 하며, 노동을 통해서, 진짜 노동자가 무엇인지. 노동의 가치를 주목하는 방법을 황재형은 실천했고,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중이다.

“스스로, 누구보다 능동적인 주체성을 가진 자로, 자신 본연의 의지와 힘을 길러야 하는 이 시기에,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나부터 시작하자.”

인간의 노동에 대해 어떤 것도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실천하는 노동자들의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는 NFT아트의 디지털 르네상스의 혁신의 가속도에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찾아가는 통로에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당신의 오늘의 노동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듯이, 디지털-기술자본주의 사회의 소모품으로 안착되지 않기를 바라며, 더 이상은 소외된 노동이 아닌, 인간노동의 힘을 기술유토피아로 가려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다.

※본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1년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 공모 지원을 받았습니다.


1) 대니얼 서스킨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와이즈베리, 김정아 옮김, 2020.

2) 김태홍, “잠재울 수 없는 민주화 열풍”, 《한겨례》, 1988년 9월 3일.

3) 김영철, “전환기의 한국문화 분단, 민중삶반영-민족문화 뿌리내려”, 《한겨례》, 1988년 5월 15일.

4) 《황재형: 회천回天》,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록.

5) 인간의 삶은 환경 속에서 영위되며, 상호작용을 한다. 이때 말하는 상호작용은 그저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분리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술가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사고한 내용이 원래 주어진 대상들 속으로 통합되는 경험의 순간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 , 나남, 박철홍 옮김, 2016.

6) “탄광촌 내연하는 현장을 짚어본다-지부장 3년이면 팔자고쳐”, 《경향신문》, 1980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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