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역대 가장 치열하고 격렬했던 대선이 끝났다. 0.73%의 피말리는 접전 끝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3250만여 명이 투표했지만, 표 차이는 24만여 표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초초박빙’ 승부였다.

결국, 승패를 가른 24만여 표의 절반가량인 12만표를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셈이다. 한 마디로, ‘10만명이 5000만 국민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다. ‘10만명’은 특정 종교가 이번 대선에 개입했다는 풍문을 연상시키는 수치다.

투표는 가장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모든 권력을 다 가져가는 ‘승자독식’은 폐해가 너무 크다. 직접민주제 실행이 가능할 정도의 시대에 과연 적합한 방식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미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 등과 같은 디지털기술혁명은 물리적, 공간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처럼 4차 산업 시대는 직접민주제 실현 가능성을 높이며 대의제 필요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특히, 대의제 폐해 중 하나인 사표(死票) 문제는 제도적 맹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하면 지지했던 표는 즉시 휴지조각이 된다. 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 10만명이 1600만명의 의사(意思)를 사장(死藏)시킨 셈이다.

민의 왜곡도 문제지만, 당장 초박빙 승부로 인한 ‘레임덕’이 차기정부 임기와 함께 시작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시사평론가 이종우 상지대교수는 “박빙 당선은 분열과 레임덕의 시작”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건 국민 분열이다. 이번 선거는 민심을 정확하게 둘로 쪼갰다. 이를 두고 혹자는 ‘신 삼국시대’가 열린 것이라 규정한다. 반으로 갈라진 민심을 북한과 묶어 빗댄 풍자이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제3당의 입지는 뿌리째 흔들렸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37%(80만여 표)라는 비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는 정치를 희화화 한다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0.83%, 28만여 표)와 비교되며 치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국민을 편 가르며 선거 때마다 ‘패자(지지자)’에게 분노와 허탈감, 복수심을 안기는 정치구조는 이제 바꿔야 한다. 국민감정을 피폐하게 만드는 선거제도를 손보지 않고 통합을 외친다는 건 한낱 구호일 뿐이다.

사회는 초단위로 진화하는데, 우리 정치는 ‘87 체제’에서 단 한발자국도 못나가고 있다. ‘군정 종식’이 시대정신이었던 당시 상황에 떼밀려 도입된 제도이지만, 한 세대를 한참 넘긴 지금 그 수명은 한계에 다다랐다.

다음 대선까지 이대로 간다면 87체제는 40년을 넘기게 된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활보하고 드론 택시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는데, 우리의 정치시스템은 반세기 전 모습 그대로다.

민심을 희생양 삼는 방식의 권력게임은 국민통합에 장애물일 뿐이다.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을 분열시키는 ‘민심 장사’를 멈춰야 한다. 때마다 반복되는 국민감정을 생각한다면 시한을 특정해서라도 통합정치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후보들은 한결같이 국민통합을 공약했다. 통합을 위해선 제도를 손봐야하고 그러려면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다. 개헌은 혁명보다 어렵다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시기를 못 박고 추진해야 한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공약한 국민통합 실천의지가 분명하다면, 어떤 식이든 올해 안에 ‘최소한의 개헌안’이라도 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국민이 직접 발의할 수 있도록 ‘개헌 국민발안권’이라도 회복시켜야 한다.

유신헌법 개정 당시 폐지됐던 개헌 국민발안권은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인 이상도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에도 국민통합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은 분노로 이어질 것이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분노한 민심은 언제나 제도개혁의 결과로 이어졌다. 위정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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