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청와대를 옮기긴 옮길 모양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20일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집무실을 옮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문학적 이전 비용은 물론, 안보 시스템까지 다시 짜야할지도 모를 중차대한 국가 대사(大事)를 가정집 이사하듯 졸속으로 강행처리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청와대 이전 논란은 그동안 ‘터가 좋지 않아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불행한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정권교체기 때마다 불거졌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 논란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도 19대 대선 당시, 당선되면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었다.

이런저런 이유 등으로 청와대 이전에 관한 국민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용산기지’도 과거 이전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거론되던 장소이긴 하다. 용산은 넉넉한 부지와 기존의 지하벙커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불필요하다는 것 등이 장점으로 꼽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적어도 국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원활한 소통’ 목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또 전시상황을 관리하고 전 군(軍)을 지휘 통제할 수 있는 국방자산 집결지에 대통령까지 들어간다는 건 국가안보 위협을 오히려 가중시킬 수도 있다.

청와대 이전 문제는 ‘사무실 이사’ 수준이 아니다. 서울의 대공 방어망을 다시 짜야 하고, 지하벙커의 위기관리시스템도 재구축해야 한다. 군 수뇌부의 전시 지휘 능력 역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당선 후 1년 이상 협의체까지 만들며 검토했지만, 득보다 실이 커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정권 출범 전까지 이전을 마무리 짓는다는 건 난센스(nonsense)다. 이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는 적어도 수년에 걸친 계획과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국가 중대사를 번갯불에 콩 볶듯 처리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일반 가정집 이사도 이런 식으론 하지 않는다.

청와대는 오랜 시간 동안 안보 등의 국가 위기관리시스템이 정교하게 구축된 곳이다. 국방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단순히 대통령집무실을 옮기는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비용도 문제지만, 한 달여 만에 이전을 끝내겠다는 발상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정치권 등 각계에서 우려와 반발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일 처리방식이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만을 고려한다 해도 ‘이삿날’을 먼저 못 박는다는 건 상식 밖이다. 기업에서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거나 신사업 진출을 추진할 때도 몇 년간 수많은 모의실험 과정을 거친다.

하물며, 국가의 심장부를 옮기는 문제다. 임기 후 시간을 두고 추진해도 문제가 없지 않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두르며 밀어붙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니, 무속 얘기가 또 나오는 것이다. 지금 세간에선 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무산도 속칭 ‘손 없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풍문까지 떠돈다.

청와대 이전 당위성이 아무리 크다 해도 당선자를 둘러싸고 있는 무속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는 한 이 같은 억측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원활한 정부 출범을 위해서라도 청와대 이전과 관련한 로드맵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타당성을 충분히 설명한 후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사실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집무실이 어디에 있든 직접적 관계도, 관심도 없다. 다만, 국민들의 팍팍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길 바랄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 국민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데, 당선자와 인수위는 이들의 생존과는 무관한 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정권 교체기엔 기본적으로 새정부에 대한 국민 기대가 크다. 그러나 향후 5년간의 국정운영 밑그림을 국민 앞에 선보여야 할 당선자와 인수위가 지금처럼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문제만을 붙잡고 시간을 허비한다면, 아마도 정권 출범 전에 레임덕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여기에 ‘무속·역술’까지 더해지면 레임덕에서 끝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번 대선의 1~2위 격차는 0.73%에 불과하다. 이는 권력 기반의 불안전성을 상징한다. 국민들은 새정부가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아무리 작은 현안일지라도 국민과 직접 소통하며 의견을 구하겠다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5년 전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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