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영부인(the first lady)’은 대통령이나 수상(총리) 등 국가수반(國家首班)의 부인을 칭하는 단어다. 사전적 의미는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권위주의 시대 때 주로 쓰이던 이 표현도 이젠 ‘대통령 부인’으로 굳어지는 추세다.

현대사회는 주권자인 국민이 민주적 방법으로 선출한 사람을 국가의 대표자 등으로 내세우는 공화정체제로 변모해왔다. 이런 변화는 국민들로 하여금 영부인도 국가의 위상과 ‘국격’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40명 넘게 나온 미국에선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엘리너는 여러 사회활동과 인권운동을 펼친 퍼스트레이디로 기억되며 남편 사후에도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역시 미국의 37대 영부인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남편이었던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과 당선 이후의 높은 지지에 큰 역할을 하며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이 임기 말 암살되면서 비운의 퍼스트레이디로 남았다.

사회주의국가에서도 ‘영부인’의 대외활동은 종종 포착된다. 그러나 과거는 물론, 현대의 사회주의국가 대부분이 독재와 공포정치를 통해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에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일부 국가에선 오히려 존재 자체가 ‘골칫덩어리’로 치부되며 지탄의 대상이 된다.

필리핀 최악의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는 전설적인 사치행각과 향락생활로 국가재정을 파탄 지경으로 몰고 간 여인이다. 한때 보건복지장관과 마닐라시장 직을 겸하며 필리핀 경제를 말아먹는데 일조했지만, 구순을 넘긴 지금까지 천수를 누리고 있다. 필리핀 국민들은 마르코스 대통령은 용서할 수 있어도 이멜다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할 정도다.

현대판 측천무후로 불리며 잔혹하기로 악명 높았던 마오쩌둥(모택동)의 부인 장칭(강청)은 ‘모택동을 뒤에서 조종한 악녀’로 평가받는다. ‘분서갱유’를 능가한다는 ‘문화혁명’을 주도하며 강청은 수천만 명의 목숨과 중국의 문화·문명을 파괴한 전례 없는 퍼스트레이디로 기록돼 있다.

이후 중국에선 공식석상에서 국가수반인 ‘주석’의 부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현 주석인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만이 그나마 활동 폭을 넓히며 선례를 깨고 있다. 최근엔 북한 ‘지도자’ 부인(리설주)의 대외활동도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었었다.

대한민국의 영부인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프란체스카’부터 현재의 김정숙 여사에 이르기까지 열 명이 넘지만, 해외 사례처럼 이렇다 할 ‘별난 퍼스트레이디'는 없었다. 30년 군정통치를 겪었음에도 이멜다나 강청 같은 골칫덩어리는 나오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저격으로 쓰러진 이후 큰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경우가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비록 ‘부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두 사람의 끝은 불행하게 마무리 됐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임기 5년 동안 적어도 수십 회에 달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까지 33개국을 46회 방문하며 왕성한 외교활동을 폈다. 이 중 90% 이상의 순방길을 영부인이 동행했다.

지구촌이 하나로 묶이는 글로벌 공동체가 되면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예전과 달리 외교적 성과와도 직결된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 부인은 음식이나 패션 등의 문화한류를 해외각국에 전파하며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제 100일 남짓 후면 ‘국정을 분담하게 될’ 청와대 ‘안주인’이 새로 정해진다. 그런데, 지금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두 후보의 ‘예비 영부인’들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사람은 현재 ‘술집 접대부 출신’이라 의심받는 이른바 ‘쥴리 의혹’과 ‘주가조작 사기사건’ 연루 의혹 등으로, 또 다른 사람은 과거 선거 출마자 비방 및 세월호 희생자 명예훼손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혜경궁김씨’ 트위터 계정 소유주 의혹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바 있다.

쥴리 의혹 당사자인 예비 영부인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쥴리 할 시간이 없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오히려 패러디 벽화가 서울거리 한복판에 등장하는 등 용어조차 생소했던 국민들에게 쥴리라는 단어를 각인시키는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또 주가조작 사기사건 관련자들이 전부 구속되며 검찰수사까지 옥죄고 있다.

‘혜경궁김씨’ 사건 역시 지난 2018년 무혐의로 종결됐지만, 대선후보 토론이 본격화되면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다. 당시 무혐의에 대해 기소를 청구했던 경기남부경찰청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다소 의외라는 점을 알려드린다”는 공식 입장문을 내기도 했었다. 사정기관 간 충돌은 수사결과가 미진했음을 반증한다. 건드리면 터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비호감 대선’으로 규정한다. 누가 당선되든 적지 않은 국민들은 임기 내내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더군다나 ‘제1 외교관’이 돼야 할 예비 영부인들마저 여러 사건과 의혹에 휘말려 있으니, 임기 동안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사람에게 인격(人格)이 있듯 국가에도 품격(國格)이 있다. “영부인께서 교도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거나, “청와대 관저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부인” 등과 같은 뉴스를 듣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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