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전두환과 함께 ‘서울의 봄’을 짓밟은 ‘신군부 2인자’ 노태우 씨가 별세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떠난 날은 18년 철권통치가 무너진 박정희 전 대통령 42주기 추모일이다. 1987년 6월 항쟁에 떼밀려 6.29를 선언한 그는 ‘보통사람’ 구호를 내걸며 지역감정을 조장해 첫 직선 대통령이 됐다.

13대 대선을 18일 앞둔 1987년 11월 29일.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유세를 위해 광주역 광장을 찾았다. 당시 식전행사 때부터 “김대중(평화민주당 후보)”을 연호하던 청년과 대학생 300여 명은 노태우 후보가 탄 카퍼레이드 연단을 향해 돌과 막대기 등을 던졌다.

방탄유리를 든 경호원에 둘러싸여 무대에 오른 그는 “우리 모두 화합합시다”라고 외치더니 느닷없이 애국가를 불렀다. 영남의 ‘지역감정’을 자극한 이 장면은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를 두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 후보가 광주서 항의받고, 대구 가서 지역감정을 엄청 부추겼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역감정을 대선에 악용한 사례는 또 있다. 대표적인 게 14대 대선 직전에 터졌던 ‘초원복집’ 사건이다. 부산 남구 대연동의 복어요리 음식점 초원복국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현지의 정부 기관장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공모한 대형 관건선거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은 1990년 3당 합당에 따른 개헌 가능 의석(218)과 이듬해의 지방선거 압승 등으로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낙관했다. 그러나 대선 직전 치러진 총선 참패(149석)와 민정계 기반인 TK(대구 경북) 지역의 (反)YS 정서 등으로 ‘정권 재창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상황 반전이 절실해졌다. 

이에 당시 김기춘 법무장관과 김영환 부산시장, 안기부(국정원) 지부장 등 부산 지역 주요 기관장 9명이 초원복집에 모여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고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며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모의했다. 이때 나온 부산 지역 사투리 ‘우리가 남이가’는 지역감정 조장을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된 가장 대표적인 구호가 됐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관계자 도청(盜聽)에 의해 폭로된 이 모의 사건은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야당 쪽엔 도움이 안 됐다. 오히려 ‘도청 프레임’이 통하면서 역풍이 일어 영남 지지층 결집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주류 언론들은 관권선거보다 주거침입과 도청을 더 부각시켰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의도한 대로 지역감정 작당 모의가 먹혀든 셈이다.

‘전두환 옹호 발언’과 이어진 ‘개 사과’로 국민의힘 대선 최종후보 선출에 빨간불이 켜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광주방문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송기석 윤석열캠프 광주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8일 “11월 2일 윤 후보가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사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말(言)이 아닌 ‘지역민 가슴에 와 닿을 수 있게 사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두환발언의 취지와 배경을 다시 설명하겠다고도 했다. 윤 전 총장 본인은 TV 토론을 모두 마친 뒤 광주를 찾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광주방문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당장 지역에선 ‘계란을 맞으려고, 봉변당하려고 오는 것’이라 단정하며 거세게 반발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달 28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윤 전 총장이 광주에) 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광주에서 탄압받는 모습으로 보수 진영을 결집시키려는 것”이라 비난했다.

이 시장은 방문 시기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주 시민들이 (윤 전 총장이) 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오려면 전두환 옹호 발언) 바로 뒤에 오든지”라면서 “5·18 등의 역사관, 역사의식을 밝히고 반성하는 행보를 보이고 온다면 누가 반대하겠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주 시민들은 계란 맞으러 오고 봉변당하러 오는 사람에게 계란을 던지거나 물리적 충돌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데도 윤 전 총장이 광주행을 감행한다면, 이는 ‘지역감정을 경선에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정한 사죄가 됐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싶든 막판 경선 ‘투표’를 앞둔 지금의 방문은 이런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이 계란을 맞을지, 다른 봉변을 당할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광주시민이 ‘아프다’는 사실이다. 자그마치 40년이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영화 대사 한 구절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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