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무속논란이 대선정국의 핵으로 부상했다. 특히, ‘무속정치’와 ‘비선권력’을 연상시키는 김씨의 녹취록이 잇따르며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김씨가 ‘제2의 최순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는 김씨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7시간 통화 녹취를 보도했다. 녹취에는 “이 바닥에서 누구 굿하고(하는지) 나한테 다 보고 들어와. 누가 점 보러 가고 이런 거”라는 김씨의 무속 관련 발언이 나온다. 녹취엔 ‘홍준표 유승민도 굿을 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또 김씨는 “내가 누구한테 점을 봐. 난 점쟁이를 봐도, 내가 점쟁이 점을 쳐준다니까.···신(내림)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난 그런 게 통찰력이 있어요. 동생(이명수 기자)하고도 연이 있으니까 통화도 하고 그러는 거지”라며 스스로 ‘점술인’보다 뛰어나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 “남편도 약간 영적인 끼가 있거든. 그래서 나랑 연결된 것”이라며 일상적 무속 의식을 드러낸다. 과거 사법고시에 연이어 실패한 윤 후보가 구직하려고 했을 때 “무정스님이 (고시공부를) 3년은 더 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그분(무정스님) 때문에 검사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또 윤 후보와의 결혼과 관련된 사연을 언급하며 ‘무정스님’과 얽힌 ‘비화’도 털어놨다.

“그분(무정스님)이 처음 소개할 때도 ‘너희들은 완전 반대다. 김건희가 완전 남자고 석열이는 완전 여자다’(라고 했다), 근데 누가 그걸 그렇게 보겠어. 근데, 정말 결혼을 해보니까 그게 진짜인 거야. 내가 남자고 우리 남편이 여자인 거야. 아 그래도 진짜 도사는 도사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최근엔 윤 후보가 검찰총장 당시 코로나19 확산 근원으로 지목됐던 신천지 압수수색을 ‘건진법사’라 불리는 무속인 전씨 조언을 듣고 결정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전씨는 윤 후보 캠프 ‘네트워크 본부’에서도 최근까지 활동했다. 논란이 일자 윤 후보는 네트워크본부를 해체하기도 했다.

서울의소리는 MBC 보도 후인 지난 23일 녹취록 10여건과 녹음파일을 추가로 공개했다. 공개된 녹취록에서 김씨는 이 기자가 ‘내가 아는 도사 중 총장님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 사람이 청와대 들어가자마자 영빈관으로(을) 옮겨야 된다고 하더라’고 언급하자 “응. 옮길 거야”라고 즉답했다.

김씨의 무속 관련 녹취가 지속되면서 급기야는 ‘신딸(神女)’ 주장까지 나왔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건진법사의 건자와 건희의 건자가 일치한다는 보도를 봤다”며 김씨가 명신에서 건희로 이름을 바꾼 게 건진법사의 ‘신딸’이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 전 의원은 일부 유튜브에서 그렇게 주장한다고 덧붙였다. 신딸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란 말이다. 민속백과사전엔 ‘무속신앙에서 신어머니로부터 신의 계통을 이어받는 여자 무당’이라 정의하고 있다. 최 전 의원이 주장한 의혹이 사실일 경우, 김씨는 무당이란 얘기가 된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샤머니스트 레이디가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걸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김씨의 자의식(自意識)은 단순한 무속의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무속인”이라며 “샤머니스트가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는 지난 26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인용한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대학생들과 종교단체 등이 규탄에 나섰다. 지난 28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대선실천단’은 서울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김건희는 제2의 최순실’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여는 등 설 연휴 귀향객들을 대상으로 김씨를 규탄하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들은 부산의 사상버스터미널 역에서 현수막과 피켓시위를 진행했고, 경기도 수원역과 대구에서 ‘김건희는 제2의 최순실’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또 광주 광천터미널과 대전역 등에서도 규탄대회를 가졌다.

서울역 집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김건희씨가 통화 녹취록에서) 일반 국민이 바보라고 했다. 하루하루 살기 힘든 세상, 어떻게든 살려고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을 바보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속정치·비선정치를 염려하는 그리스도인 선언자 800여 명’도 규탄성명을 냈다.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인 강경민 목사와 교회개혁실천연대 고문인 방인성 목사 등은 지난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를 ‘접신한 여성’, 윤 후보에겐 ‘손에 왕자를 새긴 후보’라고 비판하며 ‘무속정치를 규탄한다’고 했다.

이들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을 언급하며 “최순실 사태 이후 무속으로 인한 국정농락이 10년도 채 안 돼 반복, 재현되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옳다. 이것이야말로 영적 싸움인 까닭이다.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무속인들까지 집단행동을 예고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무속인 단체인 ‘경천신명회’ 관계자는 지난 27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설 연휴 이후 전국의 무당들이 여의도에 모여 정치권에 항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전국에서 모이면 20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힘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무속인 프레임’이라는 막장 카드까지 꺼내들며 대선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며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도사’나, ‘영빈관 이전’ 등에 대해 “그냥 건성으로 대답한 것들을 가지고 무속을 신봉한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라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40년지기 최순실의 국정 개입(농단)’을 막지 못한 이유 때문에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대통령이 됐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무속신앙 그 자체가 아니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부인 김씨와 주변 무속인들이 국정에 개입해 ‘제2의 탄핵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제 대선까지는 4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국민의힘은 이런(‘걸 크러시’ 등으로 일부에서 김씨를 두둔하는) 반응을 내세워 윤 후보 자신이 그 일부인 샤머니즘 문제를 뭉개고 넘어가려 한다”며 “샤머니스트가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보수언론(인)조차 사안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분노하면 ‘배’를 뒤집기도 한다. 유권자들은 무속 논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일,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주변에 짙게 드리워진 ‘최순실의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정권교체는 다음기회로 넘겨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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