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단계적 개헌을 비롯한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우려와 동일 지역구 4선 금지 등 정치권에서 논의 중이거나 추진되고 있는 정치개혁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몇몇 내용은 아쉬움이 남는다.

박 의장은 먼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단계적 개헌’을 제안했다. 박 의장은 지금의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승자 독식제도’로 규정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거대 양당 대선후보의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박 의장은 지난해 신년 기자간담회 때도 개헌을 언급했었다.

개헌은 입법기관 수장이 할 수 있는 당연한 발언일 수 있다. ‘개헌은 집권초기에 해야 한다’는 ‘시의성’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헌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모를 리 없는 국회의장이, 아무나 할 수 있는 ‘하나마나’한 원론적인 얘길 연례행사처럼 던지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개헌은 역대 대선의 단골 공약이 될 만큼 쉽지 않은 문제다. 새로운 권력자는 자신의 임기만큼은 개헌에 영향 받지 않길 원한다. 때문에 유력 대선주자들은 개헌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박 의장 요구가 아니어도 후보들은 개헌을 공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 그러면 표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개헌 공약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개헌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개헌은 언제나 ‘위기상황’과 함께 했다. 4·19혁명이나 6·10항쟁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촛불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현 정부는 국민들의 개헌욕구를 실현해내지 못했다.

문재인정부가 초기 개헌에 실패한 건 ‘과욕’ 때문이다. ‘부분 개헌’만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처리하려고 했다. 한 법학자는 “개헌은 다수당이라고 야당과 대화(협의) 없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현 정부 초기 당청이 학자들을 앞세워 권리장전 만들 듯 개헌을 하려고 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누가 찬성해주겠나”고 말한바 있다.

박 의장은 또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유는 국회의원들의 ‘소신 발언’이 제약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박 의장은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라는 게 아니라 국민과 국익 관점에서 소신껏 발언한 것에 대해 권력과 외부기관의 법적 제재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양심과 법률, 국민의 뜻에 따라 소신껏 의정활동 하는 것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국민정서에 반하는 발언이다. 면책특권은 왕정시대에 국왕에게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군부독재도 아니고, 면책특권 때문에 ‘탄압’받을 정도로 정치시스템이 미숙하지 않다. 역대에 걸쳐 제대로 쓰인 면책특권 사례가 있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오히려 면책특권 뒤에 숨어 무책임한 정쟁을 일삼는 의원들이 더 많았지 않았나 싶다.

어떤 국회의원이 소신 있게 발언하지 못하고, 소신 발언 때문에 권력과 외부기관으로부터 법적 제재를 당했는지 궁금하다. 만일, 국민 뜻에 따라 소신껏 의정활동 하는 국회의원이 핍박을 받는다면 이는 면책특권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나서 지켜줄 것이다. 불체포특권을 악용한 ‘방탄국회’에 대한 불편한 장면들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신뢰는 검사보다도 낮다.

‘동일지역 4선 금지 제한’ 역시 시대적으로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합리적이지 않다”는 박 의장 발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오죽하면 이런 제한조치까지 거론될까’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대통령도 5년 단임이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이미 3선연임 제한을 적용받고 있다. 국회의원이라고 특별할 이유는 없다.

박 의장은 “세계적으로 지역구 연임을 금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지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국회의원 지역구를 수십 년간 세습하는 것은 물론 총리까지 ‘일부 가문’이 다 해먹는 일본의 예만 봐도 제도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단순 비교가 무리일 순 있지만, 한 때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지금처럼 형편없어진 건 그 나라의 정치 환경과도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민심을 읽는 것부터 시작된다. 중국공산당은 ‘대약진운동’ 직전 당 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하방(下放)을 실시했다. 당원과 공무원들을 벽지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실제 노동을 시키며 민심을 체득하도록 한 것이다. 이참에 우리도 ‘4선 금지’에 더해 정치인들의 ‘민심탐방(하방)’ 시간을 의무화 하도록 하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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