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차기 대통령 지지도에서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에게조차 밀리며 칩거에 들어갔던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17일 닷새 만에 침묵을 깨며 선거운동을 재개했지만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미디어리서치가 OBS(경인방송) 의뢰로 지난 18~19일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선후보지지도 결과, 심 후보는 2.4%를 얻으며 2.6%를 기록한 허 후보에게 또다시 밀렸다. 다른 조사에서도 심 후보의 지지율은 비슷한 양상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심 후보는 이튿날 한 라디오방송에서 “벽에 둘러싸인 단절된 공간에서 선거를 하는 느낌이었다”며 거대 양당 후보의 ‘역대급 비호감’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원인을 ‘선거제도 개혁 실패’와 ‘조국 사태에 대한 침묵’이라고 진단했다. 숙고 끝에 내린 ‘자아성찰’이었다.

참으로 신박한 발상이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잠적하듯 칩거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5일 만에 나타나 둘러댄 변명이 선거제도 실패와 조국사태 침묵 때문이라니. 선대위까지 해체되는 걸 보며 잠시나마 ‘후보사퇴’나 그에 버금가는 ‘결단’이라도 내릴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역시나였다.

심 후보는 “20년 정치하면서 가장 뼈아픈 오판”이라며 자신의 지지율하락 원인을 조국 전 장관에게 떠 넘겼다. 판단력이 흐려진 것인지 문제를 모르는 건지, 심 후보의 인식은 국민 정서와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그러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고민의 흔적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정의당이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역구는 ‘민주당후보’를 찍어도 비례대표는 정의당(진보진영)을 밀어주자”는 진보 유권자들의 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 후보의 이번 ‘자아비판’은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꼴이 돼 버렸다.

물론 ‘진중권 복당’이라는 ‘큰 수확’을 거두긴 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영근 열매일지 껍데기만 남은 쭉정이일지 까봐야 안다. 탈당을 고민하고 있다는 정의당의 한 ‘진성당원’은 “(진중권 복당이) 얼마나 실익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젠더와 페미에 휩쓸리는 당에 미련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의당이 ‘몰락’의 길로 접어든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진보진영의 분열이다. 정의당은 진보진영 분열 과정에서 민중의 삶에 뿌리박고 있던 ‘기층조직’과 결별했다. 뿌리가 없으니 민심을 읽을 수 없고, 민심을 모르니 국민정서와 동 떨어진 변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빅마우스의 부재'다. 진보정당이 살아남으려면 ‘노회찬’ 같은 빅마우스를 키웠어야 했다. ‘심상정 스피커’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의당엔 그런 시스템이 없다. ‘비례국회의원은 반드시 지역구를 통해 재선에 도전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고집스러운 원칙’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정의당이 지금의 의석수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나마 노회찬 이라는 스피커가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며 이슈를 선점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젠더와 페미’로 대표되는 지금의 ‘정의당 얼굴들’은 스피커는커녕 ‘논란의 이슈’로 잦은 비난과 거부감만 양산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어젠더(agenda·의제)를 선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의당은 ‘진보 진영만이 선점할 수 있는 주요의제를 무시하고,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집착한다’는 지적이 왜 나오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시대적 핵심 어젠더가 뭔지 모른 채 시류에 휩쓸리며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탈당을 고민하는 ‘진성당원’은 “지금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핵심의제는 젠더, 페미 같은 이슈가 아니라 ‘기본소득’이다. 이 같은 어젠더는 정의당이 얼마든지 앞서서 이끌고 갈 수 있는 주제”라며 “기본소득만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도 지금의 지지율보다는 몇 배 더 나올 것”이라 하소연 한다.

마지막은 ‘공천 실패’다. 정의당의 21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은 ‘젠더’에 방점이 찍혔다. 일정 정도 이슈를 선점하긴 했지만, 과연 이 주제를 ‘먹고사는 문제나 빈부격차 해소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제라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당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

세상 모든 이슈에 참견하며 역할을 분산시킬 게 아니라, 작은 정당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으로 생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지자들은 정의당에 ‘세상의 모든 정의를 이뤄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단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하게 해결해주길 바랄 뿐이다. 22대 국회에서도 정의당 의원들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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