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등 4자 대선후보 간 첫 ‘국민면접(TV토론)’이 지난 3일 밤 열렸다. 지상파 방송3사 합동초청으로 개최된 이번 토론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이며 역대 두 번째 흥행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만큼, 틀에 박힌 진행방식 또한 아쉬움이 많았다.

지난 4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는 전날 방송된 ‘2022 대선후보 토론’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 KBS 19.5%, MBC 11.1%, SBS 8.4% 등 합계 39%(전국기준)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이인제, 이회창 후보 간 3자토론 시청률은 55.7%를 기록해 역대 최고로 남아 있다.

채널 다양성 등에 따른 TV시청가구가 예전과 달리 크게 줄어든 상황을 감안하면, 이날 시청률은 이번 대선의 의미를 생각하는 국민적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특히 유튜브 등 텔레비전을 제외한 시청자들을 고려할 경우, ‘최종 시청률’은 4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질문·답변시간의 제한, 시간안분, 특정 주제 선정 등 틀에 박힌 규칙과 건조한 진행방식은 대선후보 방송토론 도입 25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었다. 이런 방식은 몰입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후보들의 역량발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긴장감도 없다.

불공정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런 토론은 대부분 수박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돕기 위한 실질적 역할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토론 이후의 편파적인 언론해석 등으로 민심이 왜곡되는 심각한 부작용만 양산하게 된다.

때문에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주제 제한 없이 네 후보가 번갈아가며 양자토론을 하는 것도 필요하고, 시간 제약 없는 ‘끝장토론’도 시도해봐야 한다. 그래야 후보 간 비교가 선명해지고 유권자 판단도 분명해진다. 물론, 시청률도 지금보다 더 높게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아쉬움이 컸던 첫 토론이었지만, 일부 후보 비교가 가능했던 장면들은 그나마 작은 소득이다. 특히, 윤 후보의 질문 답변이 눈에 띄었다. 고개를 숙인 채 질문지를 읽는 대선후보의 모습은 역대 토론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윤 후보는 재질문도 준비해 온 자료를 읽었다.

이 후보가 ‘RE100’과 ‘유럽연합 택소노미(EU Taxonomy)’ 등의 기후위기 용어를 들며 “RE100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라고 물었을 때, 윤 후보가 “그게 뭐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되물은 상황은 솔직함과 무지(無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명장면이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은 기후위기 문제와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윤 후보의 무지가 드러났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 후보는 “국민이 일상의 삶에서 모르는 건 있을 수 있지만, 전환시대에 국가경제를 설계하는 입장에서 모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며 윤 후보를 비판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대통령 될 사람이 RE100, 이런 거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좀 어려운 게 있으면 설명을 해줘가면서 하는 게 예의가 아닌가 싶다”며 당당하게 받아쳤다. 솔직함을 넘어 ‘그게 무슨 큰 문제냐’는 인식이 신박했다.

안 후보와의 주택청약 관련 토론 장면도 ‘신선’했다. 안 후보가 “군필자에게 청약가점 5점을 부여하겠다고 공약한 것으로 안다”며 “청약점수 만점이 몇 점인지 아느냐”고 묻자, 윤 후보는 “40점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안 후보가 “84점”이라고 지적하자 윤 후보는 급히 “아, 예, 84점”이라고 정정했다.

이어 안 후보가 또 “그러면 혹시 작년 서울 지역 청약 커트라인이 어느 정도인지 아냐”고 몰아붙이자 “글쎄요, 거의 만점이 다 돼야 하지 않냐”고 답했고, 안 후보는 “62.6점”이라고 바로 잡았다. 윤 후보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영상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윤 후보는 당내 경선 때도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어 본 적이 있냐”는 유승민 전 의원 질문에 “집이 없어서 만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한바 있다. 윤 후보는 사드(THAAD) 추가 배치 공약 관련 토론 장면에서도 경기도와 강원, 충청, 경상도 등의 지역을 언급해 관련 지역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후보 모두의 ‘즉석 동의’를 이끌어낸 안 후보의 ‘국민연금 개혁 공동선언’ 제안 장면도 손꼽을 수 있는 영상이었다. 안 후보는 “국민연금 개혁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하겠다고 우리 네 명 모두 공동 선언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후보들은 즉석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김건희씨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옹호 발언’에 대해 윤 후보의 사과를 이끌어 낸 심 후보의 질문 장면 역시 시선을 끌었다. 윤 후보는 “제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받으셨다면 (피해자) 김지은 씨를 포함한 모든 분들께, 공인의 아내도 공적 위치에 있으니 대신 제가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이런 식의 토론은 후보 선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5년 동안 3000조가 넘는 돈을 운용하는 자리다. 5000만명의 운명을 형식적 토론으로 결정한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마저도 서너 번에 불과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번 대선 과정을 지켜보며 이해할 수 없었던 또 하나는 토론이 ‘협상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사용자(국민)가 최종 후보로 선발된 ‘예비 머슴(대선후보)들’을 단체로 면접 보겠다는데, 면접 응시생들끼리 규칙과 날짜, 횟수 등을 정하며 국민 면접에 참여하네 마네하고 있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됐다.

동네 마트에서 천 원짜리 하나를 살 때도 물건을 비교한다. 하물며 대통령을 결정하는 일이다. 없는 토론도 만들어 유권자 앞에 내놔야 할 판에 예정된 일정까지 깨 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민심을 우습게보다간 큰 코 다친다. 국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