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 투데이신문 윤철순 정치부 부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유력주자가 전 정권을 적폐로 규정하며 사실상 ‘정치보복’을 선언한 것이다.

윤 후보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당선되면) 전(前)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수사가 정치보복으로 흐르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내로남불’이라고 반박했다.

윤 후보는 “자기네 정부 때 정권 초기에 한 것은 헌법 원칙에 따른 것이고, 다음 정부가 자기네들의 비리와 불법에 대해 하는 건 보복인가”라며 “다 시스템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윤 후보의 이번 발언은 우발적으로 나온 게 아니다. ‘멸콩’처럼 정치적 노림수를 염두에 둔 계산된 메시지라고 봐야한다. 윤 후보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 기사화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얘긴 미리 준비했거나 평소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시기에 이런 얘길 한 걸까. 아무리 정치 초짜라 해도 ‘적폐청산’이란 단어가 불러올 후폭풍이 어느 정도 일지는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그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는 건 이쯤에서 ‘레이스(정치적 도박)’를 한 번 걸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최근까지의 대선후보 지지율추이를 보면, 윤 후보는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를 확실하게 벌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층 결집과 단일화 여론을 동시에 잠재울 수 있는 ‘적폐청산 카드’는 상당히 흥미로운 계책인 셈이다.

남은 투표일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별한 대책도 없다면, 판을 한 번 세게 흔들어 반전의 모멘텀을 만드는 것 또한 하나의 선거 전략일 수 있다. 또 제대로만 먹힌다면 ‘일타쌍피’가 될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도 없었을 테다.

지지층을 결속시킬 수 있는 전략인데다, 골치 아픈 문제(후보단일화)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어쩌면 윤 후보는 무릎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후보단일화 부담을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윤 후보 입장에선 ‘신의 한 수’라 여겼을 수 있다.

전장(戰場)은 이미 ‘윤 후보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전했고, 거대 양당은 적폐청산 이슈에 화력을 총 동원하며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까진 윤 후보의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드는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대선은 ‘코어(core)’ 싸움이다. 한 사회심리학자는 대선을 ‘핵심 지지층이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로 중원을 빨아들이는 게임’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어설프게 중원으로 나가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결국 중도를 잡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가 중요해졌다. 유권자들의 후보 결정 심리가 굳어진다는 투표일 보름 전후가 될 다음주말쯤, 폭발력이 크면서도 물리적 검증이 불가능한 이슈를 내놓는다면 윤 후보의 전략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주 대선후보 여론조사 관전 포인트는 윤 후보에게 국민경선 방식 단일화를 전격 제안한 안 후보의 지지율이 얼마나 빠지고 양 세력의 결집효과가 어떻게 드러날지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과 윤 후보는 안 후보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바로 ‘국민피로감’이다. ‘박근혜 탄핵’ 지지율은 80%가 넘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절반(41.09%)에 불과한 득표율로 당선됐다. ‘촛불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적폐청산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꼈고, 진영 대립은 격화됐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국민은 정확히 둘로 쪼개졌다. 분명한 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던 국민 모두는 보수, 진보, 중도 구분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 다시 검찰뉴스로 도배되는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국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온 사방에서 적폐몰이와 검찰 얘기만 들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 중도층 유권자 역시 적폐청산보다는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하는 정부를 보고 싶어 한다.

윤 후보의 적폐청산 카드가 ‘신의 한 수’가 될지, 악수(惡手)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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