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치버스·데이비드 치버스|김성훈 옮김|135*210mm|268쪽|김영사|1만6800원

평가 기준이란 다면적이고 복잡해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용물에 불과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특성이다. 언론 종사자들도 그런 점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언론에는 개인 보호 장비 물품이 몇 개나 생산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뿐, 그 각각의 물품이 N95 등급 마스크인지, 고무장갑 한 짝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굿하트의 법칙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평가 기준을 자주 바꿔주거나 다중의 평가 기준을 이용해서 평가하면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측정법도 밑바탕 현실을 온전히 포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이 항상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작가 윌 커트는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완벽한 요약 통계를 찾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책표지 카피를 찾는 것과 같다.”  218쪽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 영국에서 “자폐증 급속 확산, 54명 중 1명”이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가 쏟아졌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발표한 자폐증 환자 비율을 살펴보면 2000년 150명 중 1명에서 2016년 54명 중 1명으로 몇 배나 급격히 높아졌는데 여러 전문가와 언론은 중금속 오염, 살충제, 냉담한 부모까지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단순했다. 의학계에서 자폐증 측정 범위를 확대해왔기 때문. “혐오범죄, 5년 동안 2배 증가”, “코로나19 확진자 수급증” 같은 헤드라인도 바로 이 사례와 마찬가지다. 

# “베스트셀러의 공통 특성, 2800가지 밝혀져”라는 기사가 영국에서 보도됐다. 해당 사례 역시 완벽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각자 다른 색 모자를 쓴 1000명에게 주사위를 굴리게 했는데, 네 번이나 연속으로 6이 나온 주황색 모자를 쓴사람을 보고 “주사위를 굴려 연속으로 6이 나오는 비밀은 주황색 모자를 쓰는 것이군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악랄한 범죄자를 조사해 그가 평소 폭력적인 게임을 좋아했다는 것을 점을 두고 “폭력적인 게임을 즐길수록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특정한 결과에 편향된 표본을 끼워 맞추는 ‘생존자 편향’의 전형적인 사례다. 

# 영국 예산책임청에서는 2020년도 경제성장률을 1.2퍼센트로 예측하며 불확실성 구간(p값)을 -0.8에서 3.2퍼센트로 뒀다. 사실상 이 불확실성 구간 수치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거대한 경제호황 사이의 어디쯤’ 정도의 오차범위가 굉장히 큰 수준이지만 헤드라인에는 그 중간인 1.2퍼센트만 보도됐다. “코로나19 사망자 수 50만 명 넘을 것”, “실업률 2% 낮아질 것” 이라는 헤드라인 속 숫자는 불확실성 구간에서 가운데를 차지하는 값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통계 없이 진실을 말하기는 어렵다”라는 통계학자 프레더릭 모스텔러의 말처럼, 정확하게 숫자를 읽는 힘은 세상을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도서 <숫자에 속지 않고 숫자 읽는 법>은 부정확하거나 모순되는 결과들을 그럴싸한 숫자로 포장한 것을 가려내고,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래프’, ‘더 타임스’ 등 최근 영국의 실제 뉴스 헤드라인을 예시로 들어 꼭 필요한 통계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수학 지식이 전혀 없어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겉으로 단순해 보이는 숫자가 어떻게 본질을 호도하고 오류를 낳는지 설명한다.

올해의 과학작가로 뽑히고 영국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한 톰 치버스와 그의 사촌인 더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데이비드 치버스 콤비의 친절하면서도 유쾌한 서술이 돋보인다.

위트 있는 유머와 흡인력 있는 사례들을 통해 중앙값, 표본, p값 등 기본적인 통계 용어부터 체리피킹, 표집편향, 베이즈 정리 같은 평소에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까지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총 22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장마다 여러 사례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부록으로 수록한 ‘통계 스타일 가이드’는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언론인부터 미디어 기업, 정치인, SNS나 유튜브 등 매체를 다루는 인플루언서, 트렌드와 이슈에 민감한 콘텐츠 에디터, 직장인 등 숫자를 책임감 있게 다루어야 할 사람과 숫자에 속지 않기 위한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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