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 사령탑 부임 초기부터 난제 처리 탁월한 모습 선봬
당국과 각 세우기 대신 신한금융 시절 주목한 밸류로 돌파구 마련

은행연합회 조용병 회장 [사진출처=뉴시스]
은행연합회 조용병 회장 [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당국의 ELS 분쟁 기준안이 발표된 따끈따끈한 날이지만, 지금은 얘기할 입장이 아닙니다. 각 은행들마다 처한 입장이 다르고, 공통적인 사안과 개별적인 사안을 파악해 소통할 것입니다(11일 은행연합회장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은행연합회가 관심을 끌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용병 회장이 각종 현안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견이 시끄럽게 돌출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모습을 임기 초반부터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 협회 회장 자리는 업계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당국과 소통해야 하는데다, 경제 불황과 정권이 중반에 접어드는 미묘한 상황이 겹쳐 있다. 당장 윤석열 정부는 4월 총선에 패배할 경우 레임덕 가능성 등 최악의 국면도 고려해야 한다.

당국이 군기잡기에 나설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큰 때인 셈. 이런 때 금융감독원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 ELS) 분쟁조정기준을 발표하는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은행연합회의 반응은 ‘밸류업’이라는 관념으로 더 중요한 부분을 집중하자는 어젠다로 나타났다. 

‘자학 개그’ 통한 업계 성찰 유도, 진중한 소통 필요성 공감대 형성

단순히 당국과 각 세우기를 당장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말을 돌리는 식의 신중한 모습이 아니라, 업계의 근원적 발전을 엎어진 김에 쉬어가며 정비하자는 뜻을 은행연합회 수장인 조 회장이 직접 제시한 것이라 눈길을 끈다. 

조 회장 본인도 당국과 매끄럽지 않은 시절을 겪었다. 사실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한 번 더 연임하는 대신 용퇴한 것도 사모펀드 문제로 당국의 주시를 받은 꼬리표가 결국 말끔히 메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조 회장은 “저도 (과거 신한금융 재직 당시) 사모펀드에 얽혀서 고생을 많이 했고 반성도 했다”고 간담회에서 발언했다. 그는  “이후 금융소비자법도 도입됐는데 이런(홍콩 ELS) 사태가 다시 발생한 점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면서도,  “홍콩 ELS 배상안은 당국과 은행, 투자자 간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이런 부분이 축적돼서 은행권의 자본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의 경험이 녹아든 조언을 통해 업계 큰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협회=은행업계 스스로 밸류 높이도록 돕는 조력자...역할 모델 설정

특히 조 회장은 홍콩 ELS 배상 등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피하면서, 은행연합회의 역할과 은행의 ‘밸류(가치)’ 상승 방안에 대해 강조했다.

우선 조 회장은 은행연합회의 역할에 대해 “은행이 스스로 ‘밸류’를 높일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은행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기 위한 다양한 의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당국과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그가 언급한 것은 다양하다. 즉 조 회장은 “은행의 미래를 위한 과제인 비금융·플랫폼·디지털 역량 강화, 사업다각화와 해외진출 촉진을 위한 환경 조성에 힘쓰겠다”며 “은행의 ‘밸류’ 상승이 경제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을 촉진하고 우리 사회와의 상생으로 이어지도록 비전을 제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업영업도 현재는 대출중심인데 기업들도 자산관리 쪽으로 (영업을)해야 한다”고 후배 은행원들을 통렬히 꾸짖기도 했다. 그는 “자본관리를 토탈로 할 수 있는 금융지주 차원의 채널 전략이 있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은행업의 미래 환경을 전망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관념은 밸류를 높여야 한다는 것과 맞닿는다. 신한금융 조용병 당시 회장의 모습. 그는 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일하는 지금, 홍콩 ELS 사태라는 어려운 문제와 마주했다. 새삼 신한 시절 천착해 온 밸류 문제를 이번에도 제시하고 있다. [사진제공=신한금융]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관념은 밸류를 높여야 한다는 것과 맞닿는다. 신한금융 조용병 당시 회장의 모습. 그는 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일하는 지금, 홍콩 ELS 사태라는 어려운 문제와 마주했다. 새삼 신한 시절 천착해 온 밸류 문제를 이번에도 제시하고 있다. [사진제공=신한금융]

업계 분담금 등 빠르게 잘 매듭...신한식 밸류 선견지명, 새롭게 활용

사실 밸류 문제는 이번에 새롭게 조 회장이 들여다 본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겐 일종의  ‘전공’ 같은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한금융 사령탑 시절 이 개념을 통해 조직의 미래 준비를 독려했던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고객들에게 선택받으려면 새로운 경험을 시켜 주면 된다는 지론 하에 금융업의 밸류업을 강조했다. 또 신한금융에 새로운 중기 전략으로 ‘밸류업 2025! 리부트 신한! ’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신한 ESG 밸류 인덱스(신한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를 통해 사회적 공헌 가치를 측정, 관심을 제고했다.

그의 리더십과 미래 산업 방향에 대한 관심은 은행연합회 부임 후 이번에 처음 발휘된 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21일, 취임 후 첫 과제였던 ‘은행권 상생금융 시즌2’를 성공적으로 매듭짓고 발표했다.

당국이 간접적인 압박을 통해 은행권에 상생금융을 요청하는 분위기 속에서, 조 회장은 은행 간 이해관계 조율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 상생금융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은행연합회 주도로 ‘은행권 민생금융 지원방안 마련 태스크포스(TF)’가 운영됐지만, 조 회장이 나선지 한달도 안 돼 합의안을 만들어낸 것은 기준을 제시하고 의견을 듣는 조 회장의 태도에 큰 몫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물론 조 회장의 앞길에 다른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상생금융 지원책에 대한 계획이 잘 수립되고 올해에 잘 집행되도록 감시와 지원을 마무리해야 한다. 

홍콩 ELS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한 것도 중요하지만, 반발이 전혀 없을 수 없어 가급적 연착륙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은행계에서는 당국 배상안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지만, 법리상 부담(즉 배임 논란) 등 때문에 전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자율배상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숙제로 바라본다. 

또 사실상 암묵적으로 은행이 홍콩ELS를 불완전판매했다는 전제를 수용해 배상 처리하는 경우, 해당 은행 더 나아가 은행업 전반에 대한 고객 불신이 팽배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조 회장으로서는 이런 문제들, 특히 홍콩 ELS 건이 부득이 소송전으로 이어질 경우 가급적 고객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업권과 당국, 고객들 사이를 잘 조율해 내야 한다. 불황기 금융업 도전 등을 모두 아우르면서 이런 디테일들까지 챙겨야 할 그와 은행연합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과거 어느 시절보다 고되면서도 위상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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