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기를 꺼리어 피하거나 얼굴을 돌림’. 외면의 사전적 의미다. 사실, 우리 사회에 외면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일상 속 사소한 사건부터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까지. 결코 놓쳐선 안 되는 문제들도 애써 못 본 척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축복받아야 할 삶의 탄생부터 숭고해야 할 죽음까지 이 같은 슬픔을 겪어야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외면을 피해 숨어 살 수밖에 없는 이들 ‘장애인’. 그들은 같은 땅 위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생애 주기 동안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그 긴 여정 속에서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전하고픈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귀담아 듣고 전하고자 한다. 더이상 그들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주>

<strong>뇌병변장애 F씨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nbsp;ⓒ투데이신문</strong>
뇌병변장애 F씨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264만4700명. 지난 2021년 까지 등록된 국내 전체 장애인 수다. 이를 올해 전체 인구대비 단순 수치로 환산한다면 5.123%. 전체인구의 약 20명 중 1명은 국내 등록 장애인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사고나 질병 등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는 경우를 포함한다면 추후 국내 장애인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소수로 통하는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 속 어려움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겪는 문제는 이동권, 노동권, 빈곤, 차별, 편견 등 다양하다. 게다가 각 문제마다 여전한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해 실질적인 혜택이나 정부의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복지 사각지대라는 그럴듯한 단어는 결국 외면에 가깝다. 복지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숱하게 반복되는 외면으로 인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는 다양한 분야에서 반복해서 지적돼왔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는 정부의 외면, 나아가 사회의 외면에 가깝다.

광주 지역 한 장애인이&nbsp;교통약자지원센터 소속 콜 택시에서 하차하고 있다.&nbsp;[사진제공=뉴시스]
광주 지역 한 장애인이 교통약자지원센터 소속 콜 택시에서 하차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첫 번째 외면, 발 묶인 ‘장애인 콜택시’

#4살배기 뇌병변 장애 아이를 키우는 A씨는 인천에 거주하는 탓에 수시로 서울을 드나들어야 한다. 꽤 먼 거리를 이동하기 쉽지 않은 탓에 장애인 콜택시에 예약 전화를 걸지만 늘 상 어려움이 따른다. 인천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장애인 콜택시는 이용이 가능하지만,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장애인 콜택시는 이용이 어렵다. 지자체별로 상이한 ‘규정’ 탓이다.

장애인 콜택시는 지자체별로 △이용 시간 △요금 △운행 규정 등이 제각각이다. 특별교통수단 운영 권한인 장애인 콜택시 운영은 지자체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불편이 제기되자 지난 2018년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등 운영에 관한 표준조례’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용 시간과 신청 방법 등은 각 지자체에 맡겨져 있어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은 건강권과도 직결된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병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을 한 장애인의 비율은 32.4%로 나타났다. 해당 경험의 주된 이유는 △의료기관까지의 이동불편(29.8%) △경제적 이유(20.8%) △증상의 가벼움(19.3%) 순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은 이동의 어려움으로 인해 진료조차 편히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본보가 만난 중증장애인 B씨는 “월요일 아침 병원 진료 차 서울에 방문해야 하는 일이 있어 오전 기차를 예매했다. 기차역으로 향하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지만 연결조차 되지 않아 기존에 예매 했던 오전 기차를 취소하고 다른 역에 위치한 오후 시간대의 기차를 타야했다”고 어려움을 표했다.

[사진제공=뉴시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메쎄에서 열린 '2022 스마트산업분야 장애인 취업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두 번째 외면, 상처만 남은 ‘장애인 의무고용’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C씨의 회사에는 전체 직원 중 44%의 장애인이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누가 등 떠밀어서 시킨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다. 이런 그가 ‘장애인 의무고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C씨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비정규직, 인턴 등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벌금 내면 그만이라는 사회 현상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르면 정부 기관과 공공기관 등은 장애인 일자리 보장을 위해 특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해당 법안은 올해로 제정 3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취지가 무색할 만큼 ‘꼼수 고용’과 ‘벌금으로 때우기’ 식의 대처가 만연하다.

현행법을 기준으로 장애인의무고용 단체 및 기업은 지방자치단체와 상시 50인이상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이다. 이중 공공기관은 전체 인력의 3.4%를, 인력 50인 이상 민간기업은 3.1%의 장애인을 장애노동자로 충원해야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공공기관과 기업은 벌금 성격의 부담금을 지불해야만 한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말 기준 장애인 의무고용 사업체의 장애인 고용현황’에 따르면 장애인 의무고용 사업체는 국가·지방자치단체, 상시근로자 50명 이상의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법인 기준) 총 3만478곳이다.

이 중 민간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전년보다 0.02%p 떨어진 2.89%로 의무 고용률(3.1%)에 닿지 못했다.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의 고용률도 2.73%에 불과했다.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중소기업 보다 낮은 것이다. 더욱 문제로 손꼽히는 점은 공공부문 중에서도 정부·지자체의 공무원 부문에서 전년 대비 0.03%p 하락한 2.97%에 그쳤다는 점이다.

또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못해 기업이 낸 부담금은 6900억원이 넘을 정도다. 지난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장애인 의무고용 미이행 민간기업 고용부담금 자료’에 따르면 민간 기업 7956곳이 지난해 납부한 장애인 고용부담금 규모는 6904억954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 세모녀 빈소 조문하는 시민들 [사진제공=뉴시스]&nbsp;
수원 세모녀 빈소 조문하는 시민들 [사진제공=뉴시스] 

세번째 외면, ‘신청주의’ 복지 시스템

#중증 연골 무형성증, 호흡기 및 뇌병변 장애, 지체장애 등 복합장애 판정을 받은 김영수(가명·16)군의 아버지 D씨는 주위 장애인 가정사이에서 국내 복지제도의 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전문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아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A씨는 부족한 홍보체계와 정보, 복잡한 절차탓에 무너지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복지서비스의 전문가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지난 8월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채 발견됐다. 60대 어머니 E씨는 난소암, 40대 두딸은 각각 희귀난치병과 정신질환이 있었다. 일상생활이 어려웠기에 그들은 오랜 시간 병마와 생활고를 겪어야만 했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화성시와 수원시는 모두 이들의 행방조차 알지 못했다. 지난 2020년 2월 화성시에서 수원시로 이사할 때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주소가 불분명한 경우 당사자의 소재를 끝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방침이나 이를 위한 방법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수원 세모녀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선 현장 공무원들이 직접 사각지대를 발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인력난까지 겹쳐 이마저도 어렵다. 

현행 복지 서비스는 수혜 당사자가 관련 정보를 모두 확보하고 신청해야 제공하는 ‘신청주의’를 따른다. 이로인해 신청을 하더라도, 복잡한 절차와 많은 구비서류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더욱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점은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조차 몰라 포기하는 이들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본보가 만난 영수군의 아버지 D씨는 “정부 복지 제도를 받기 위해선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수혜를 받을 수 있다”며  “실제로 아이가 아픈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때면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슴이 미어졌다. 복잡한 절차와 부족한 정보탓에 아픈 아이를 곁에 두고 복지 제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뇌병변 장애인 D씨의 화장실. 거동이 불편한 탓에 곳곳에 손잡이가 마련돼 있다.
뇌병변 장애인 D씨의 화장실. 거동이 불편한 탓에 곳곳에 손잡이가 마련돼 있다. ⓒ투데이신문

네번째 외면, 늦은 밤 화장실 가다 죽을 뻔 했다

#올해로 70살인 F씨는 뇌병변장애 2급 장애인이다. 지팡이가 없이 홀로 서 있지도 못하는 F씨는 월 153시간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는다. 하루 6시간 정도 나눠도 부족한 시간이다. 늦은 새벽 시간, 활동지원사 없이 홀로 화장실을 가던 F씨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시야가 흐려지고, 호흡이 가빠졌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방에 설치된 119 비상벨까지 기고 또 기었다. 겨우 도착한 소방대원 덕분에 F씨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고작 화장실을 가는 동안, F씨는 생사를 넘나들어야만 했다.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이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활동지원 급여를 제공하는 서비스인 ‘활동지원 서비스’. 장애인이 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서비스인데, 정작 필요한 시기에 제 때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 등급에 따라 최대 480시간 (하루 16시간)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16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는 1구간에 해당하는 장애인은 전국에 5명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하루 평균 2~5시간 정도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는다.

지난해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전달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최중증장애로 분류되는 1~6구간은 전체의 1.67%(1460명)에 불과했다.  85%의 수급자가(7만4409명) 12~15구간(하루 5시간~2시간) 몰려 있었다. 16시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1구간 장애인은 올해 6월 30일 기준 전국 단 11명 뿐이다.

아쉽게도, 정부와 지자체가 장애 유형 및 정도와 더불어 당사자의 욕구와 특성을 반영할 수 있게 조사 항목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름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개선은 제자리걸음이다. 

본보가 만난 D씨는 “활동 지원 시간을 늘여달라”고 힘겹게 말했다. 뇌병변장애 2급, 중증 언어장애가 있는 그가 이 짧은 한 마디를 뱉는데 걸린 시간은 10분이다.

서울시의회 앞에서 폭우참사로 희생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시의회 앞에서 폭우참사로 희생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다섯번 째 외면, “부모가 무너지면 결국 장애아도 무너진다”

#24시간 돌봄. 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한 부부는 주·야 교대로 12시간 씩 아이를 돌본다. 아이가 태어나 지금까지의 8년이 흘렀다. 그 기간동안 이 부부는 단 한 번도 함께 잠들지 못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결국 장애를 얻게 된다’. 본보가 만난 장애인 가족은 요즘들어 이 문장이 뼈에 사무치도록 공감된다고 전했다.

실제 장애인 가족돌봄자10명 중 3명이 우울·불안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24일 서울시는 서울시복지재단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고위험 장애인가족 지원방안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가족돌봄자의 36.7%가 우울·불안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35.0%는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린 적이 있거나,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정신건강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는 돌봄 스트레스 75.5% 경제적 문제 68.6% 우울·불안 66.5% 등으로 나타났다. 또 양부모 중에서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 장애가 있는 '장애 부모 가구', '장애 자녀를 홀로 키우는 한부모 가구', '저소득 가구' 등은 그렇지 않은 장애인가구에 비해서 생활영역 전반에서 위기도 수준이 높았다.

이 같은 가구의 경우 돌봄자 본인의 몸이 아파도 휴식을 취할 수 없고, 심하면 치료를 받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등의 문제에 처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돌봄을 위해 직업 선택에 어려움을 겪어 생계 문제 해결에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본보가 만난 장애인 돌봄 가족은 “장애아에 대한 집중도 물론 중요하지만 장애가정에 대한 폭넓은 지원이 필요하다. 아이의 장애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부모의 마음의 병도 심각해진다”며 “부모가 무너지면 결국 장애아도 함께 무너진다”고 호소했다.

앞선 다섯 가지의 외면은 이들이 겪어온 삶들 중 극히 일부다. 무거운 화장실문을 열지 못해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참아야만 하는 이부터 축하받아야 할 자신의 생일날, 장애인콜택시가 잡히지 않아 축하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이까지. 장애인들은 알게 모르게 그들만의 슬픔을 감내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이에 본보는 장애를 갖고 세상에 태어나 장애를 갖고 세상을 떠날때 까지. 그 기나긴 일생기동안 그들이 겪어온 아픔을 전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강구하고자 한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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