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노동자,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 다반사
업계 관행 ‘공짜 노동’...“아침 업무 강도와 압박 높아”
건물 관리 종사자 임금...인적 속성, 숙련, 역량 고려X
건물관리업 종사 노동자 문제...정책적 지원 필요해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서울의 3대 업무지구 중 한 곳인 여의도 업무지구(YBD). 종로·중구 일대와 강남·서초 권역에 이어 서울을 대표하는 업무지구 여의도엔 금융 및 증권업 분야 기업 사옥이 집중돼 있어 건물관리업 종사 노동자들이 대거 근무하고 있다. 해당 직종들은 대체로 간접고용 및 기간제 계약이 중첩된 형태로 돼있어 고용불안, 중간착취 가능성이 존재했는데, 실제 노동자 중 비중이 가장 큰 청소직의 경우 원래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하루에 약 9시간을 사업장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 새벽 출근하는 직장인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제공=뉴시스]

계약상 출근 오전 6시인데, 실상은 오전 5시까지

여의도 한 오피스빌딩 건물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A씨의 하루는 새벽 3시 40분부터 시작이다. 누적된 피로를 해소할 틈도 없이 A씨는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한 뒤 4시 10분에 집을 나와 첫차에 몸을 맡긴다. A씨의 근로계약상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하지만 A씨는 이보다 한 시간 이른 오전 5시 전에 근무지에 도착한다. 정해진 출근시간에 맞춰 출근한다면 입주사 직원 출근 전에 사무실 청소를 모두 마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장에 도착하면 A씨는 지하 3층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혹은 각 층에서 작업복으로 환복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대형쓰레기통이 올려진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해 수거하는 것이 A씨의 주된 업무. 플라스틱 두 종류, 종이컵, 파지, 유리, 알루미늄캔 등이 A씨의 분리수거 대상이다. 이 밖에도 배달음식 용기에 담긴 잔반과 비닐 등도 정리하고 나머지 쓰레기 수거 작업을 모두 마치는데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A씨가 1시간 일찍 출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정식 출근 시간인 6시 무렵이 된다. 이때부터 A씨는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 거울, 바닥을 주로 세척한다. 변기는 물을 내린 다음 ‘세제물’을 만들어서 부어놓고 수세미로 닦고 다시 물을 내린 후 걸레로 닦아내는 작업을 한다. 세면대, 거울은 ‘긁개’로 긁어내리고 마른 걸레로 다시 닦아낸다. 화장실 청소도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고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A씨에겐 쉴 틈이 없다. 오전 7시 부터는 사무실 청소에 돌입해야 한다. 더러운 쓰레기통을 씻어서 엎어놓고 말린 다음 각자 자리에 다시 놓는다. 사무실 파티션과 창틀을 걸레로 닦아낸다. A씨가 근무하는 건물의 복도에는 카페트가 깔려져 있어서 오염된 부분이 있으면 그때그때 청소기로 흡진 작업을 한다. 청소노동자들은 보통 새벽에 근무를 하는데, 전날 퇴근 후 쌓인 쓰레기와 오염물을 모두 치우고 세척해야하는 까닭이다.

이후 계약서 상의 휴게시간인 8시부터 9시30분까지 A씨는 휴식을 취하며 아침식사를 한다. 휴식이 끝나면 A씨는 다시 계단과 복도로 향한다. 계단을 한 칸씩 닦으며 내려가고, 화장실 관리는 수시로 진행한다. A씨의 퇴근 시간은 오후 4시. 일을 마친 A씨는 밀린 집안일을 마무리 하고 이른 저녁 8시에 잠에 든다. 다음 날 새벽 출근을 위해서다.

고단한 청소 노동자들의 하루. 고된 노동으로 인해 가뜩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들이 한시간 일찍 나와 ‘공짜 노동’을 하는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관련 업계에서 만연한 ‘관행’이 지목됐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류한승 조직부장은 “보통 출근시간을 주로 6시나 5시로 응답하나, 노동조합 상담이나 면접조사 등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1시간가량 일찍 출근하는 관행이 존재한다”며 “아침 업무의 강도가 높고 정규직 직원들의 출근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여의도 업무지구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사진제공=영등포구청]

저임금에 공짜노동 압박까지...이중고 겪는 청소 노동자

청소·경비직종 관련 조사연구는 2000년대 이후 비정규 노동문제가 부각되면서 본격화됐다. 특히 청소·경비직종은 여전히 대표적인 중고령, 저임금, 비정규노동으로 꼽힌다.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와 협력해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건물관리업 종사자 노동환경에 대해 조사한 ‘여의도 업무지구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들이 해당 직종에서 일한 기간은 평균 8년8개월, 평균 연령은 64.3세로 집계됐다. 청소직종의 월평균 임금은 총액 기준 187만3000원, 실수령액 기준 175만7500원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진행 된 당시 2022년 최저임금은 시급 9160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여액은 191만4440원이며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을 받은 경우 최저임금의 80%를 지급할 수 있다. 직종별 기본급을 주당 노동시간에 따라 시급으로 환산해보면 청소직종은 9420원, 시설직은 9790원으로 최저임금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지만 실질적인 임금 수준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류한승 조직부장은 “면접과 노동조합 상담을 통해 급여명세서를 직접 확인한 경우 청소노동자구분 급여총액, 기본급, 주당 노동시간의 임금은 모두 최저임금과 일치했다”며 “그런데 설문조사에서 임금이 노동시간 대비 최저임금보다 다소 높게 나타난 이유는 기본급에 주말근무로 인한 연장‧휴일근로수당이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포함시켜 답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사결과 청소노동자의 39%가 2주 1회 이상의 주말근무를 한다고 응답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청소직종의 임금은 어디서나 정확하게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고 “인적속성이나 숙련, 역량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청소업무에 대해서는 사업장에 머무는 시간 내내 높은 헌신과 조직몰입을 요구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한 청소 노동자는 “휴게시간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부른다. 청소를 잘 못했다거나, 무슨 물건이 들어왔으니 나오라고 하고, 퇴근하려고 하면 들어와서 일시키고 점심시간에 일을 시키지만 휴게시간에 부르면 빨리 가서 일을 한다. 위법이라고 생각해본 겨를도 없고 욕먹으면 어떡하지, 잘리면 어떡하지 생각하며 얼른 청소한다”고 호소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연 지난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이모 조합원이 근무했던 기숙사 휴게실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반복되는 건물관리업 종사 노동자 문제...정책적 지원 필요

근로기준법 9조에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중간착취의 배제를 분명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청, 용역, 도급 등 다양하게 호칭되는 수많은 간접고용 관계에서 중간착취는 여전히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의 ‘여의도 업무지구 실태조사 결과’는 지역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 증진을 위한 정책 방향 설정과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각종 지원 사업의 참고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센터는 또 △직종별 노동법 교육 △매월 노동정보 문자소식지 발송 △심리 상담 △힐링 프로그램 △여의도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 소규모 사업장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동시에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공동 캠페인을 꾸준히 추진할 계획이다.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홍윤경 센터장은 “센터의 설립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지역 내에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지원할 것인가”라며 “영등포구, 고용노동부 남부지청과 협력해 여의도 용역 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례 제정 추진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등포구 석승민 일자리경제과장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 약자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호를 위한 대책, 지원 사업들을 마련해 모든 노동자의 가치가 존중받는 영등포구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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