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산율, OECD 회원국 ‘최하위’
“AI혁신과 함께 고용 능력도 키워야”
이자 비용 증가로 소비 침체 가능성
주택 부채 급격한 ‘디레버리징’ 경고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 연장으로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실제 지난 2021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을 확인했다. 본격적인 인구감소는 수요 감소와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기업의 생산성 저하로 경제 성장률에 대한 하락 압력을 가중시킨다. 이미 IMF(국제통화기금)는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진 일본보다 낮은 1.7%를 전망했다. 디플레이션 공포는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보다 경제시스템에 치명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온 만큼 <투데이신문>은 향후 인구감소에 따른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짚어보고 전문가를 통한 대응 방안 논의까지 확장해보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잡기가 한창이지만 최근 급속도로 진행되는 인구감소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저성장은 향후 장기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경제시스템에 훨씬 해롭다. 지난 2014년 IMF 라가르드 전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지니(Ginie)라면 디플레이션은 단호하게 싸워야 할 괴물(Ogre)”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저출산·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우리 경제가 일본형 장기부진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인구·경제 구조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일본과 동조화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2023년 일본-한국 인구 피라미드 왼쪽 일본, 오른쪽 한국 [사진출처=PopulationPyramid]
2023년 일본-한국 인구 피라미드 왼쪽 일본, 오른쪽 한국 [사진출처=PopulationPyramid]

일본 닮아가는 대한민국 인구구조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5174만명으로 2020년보다 9만1000명이 줄어들며 처음으로 연평균 인구 성장률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출생아수는 지난해 기준 사상 처음으로 25만명 밑으로 떨어져 합산 출산율 0.7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59명의 절반을 밑도는 수준으로 38개 회원국 중 최하위다. 문제는 일할 수 있는 연령대인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고령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성별·연령별 경제활동인구를 추산해 미래의 노동 공급 변화를 분석한 결과 2019~2030년까지 노동력이 연평균 0.68% 감소하면 같은 기간 연평균 잠재성장률은 2000~2010년 성장률에 비해 1.08%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증가세 둔화 또는 감소세 전환이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노동력 감소와 경제 성장률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OECD회원국 합산 출산율 비교 [사진출처=통계청]
OECD회원국 합산 출산율 비교 [사진출처=통계청]

일본의 경우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가 일찍이 진행됐다. 일본의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일본의 21세기 말 총인구는 중위 추계 기준 6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인구감소와 내수 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은 장기간 일본경제의 그림자로 존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소비자에게는 부담이 되지만 생산자에는 이득이 될 수 있다. 반면 디플레이션은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파괴적이다. 일본은 대략 한국경제를 10년 선행한다고 한다. 인구구조와 경제발전 모델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이후 20년, 30년까지 지속된 장기 디플레이션을 주목할 필요가 충분하다. 

일본의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심화됐다. 이에 일본정부는 극도로 민감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일제히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도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일본은행(BOJ)의 수백조 엔 유동성 공급에도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 국면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장기 침체 주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경우 인구감소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보다 정확히 말해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가계부채 문제를 장기 침체 유인으로 꼽는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경제의 일본형 장기부진을 가져올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인구구조 변화와 가계부채 문제며 그에 따른 내수침체 및 성장둔화”라고 분석했다.

연령계층별 구성비 [사진출처=통계청]
연령계층별 구성비 [사진출처=통계청]

‘생산연령인구’ 감소 따른 디플레이션 가능성

생산연령인구란 15~64세에 해당하는 인구로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핵심이며 나아가 경제 성장률과 직결된다. 생산연령인구를 GDP 요소로 치환하면 ‘소비가능인구’로 다시 말할 수 있다. 폐쇄경제를 가정하면 GDP는 소비·투자·정부지출로 구성된다. 그중 소비는 GDP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곧 GDP 역성장을 견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생산연령인구는 전체의 70.5%를 차지하고 있으나 2070년에는 46.1%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핵심노동력(25세~49세)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전체 노동력에서 핵심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기준 61.5%에서 2030년에는 48.8%로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생산과 소비활동 위축을 위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정년 퇴직자 증가와 취업자 수 감소로 생산연령인구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민 경제의 종합적인 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혹은 인플레이터)는 1990~2000년대 연평균 –1%대를 기록했다. 당시 일본경제는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더라도 노동생산성만 올리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로 상쇄할 수 있다는 경제학적인 공식을 맹신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해당 공식이 틀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GDP는 각 생산단계에서 추가된 부가가치의 총합으로도 말할 수 있다. 통상 GDP 규모를 늘리려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생산연령인구 감소 진행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만으로는 결코 정상적인 GDP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음이 드러난 것이다.

노동생산성은 부가가치액을 노동자 수로 나눈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공식으로만 보면 기술 혁신으로 인한 기계화·자동화를 통해 노동자 수를 감소 시킨다면 1인당 노동생산성은 증가한다. 그러나 변수는 분자인 부가가치다. 부가가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소비가능인구가 줄어듦을 의미한다. 결국 생산성 향상만으로는 생산연령인구감소에 따른 저성장을 피할 수 없다. 

하나경제연구소 장보형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챗GPT 등 AI를 활용한 생산성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고용으로 인한 부가가치를 놓친다면 결코 제대로 된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없다”며 “AI혁신과 함께 고용 능력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BIS기준) [사진출처=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BIS기준) [사진출처=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

또 다른 트리거...높은 가계부채와 급격한 부채조정

IMF는 지난해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이 경계할 단계에 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정책입안자들은 지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처하기 위해 대규모 유동성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었고 자산 가격은 급등했다. 이는 물가와 금리를 동시에 올리게 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향후 생산연령인구감소에 따른 저성장과 내수 부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 문제가 심화될 경우 일본의 불황과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지난달 27일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가계부채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3%를 기록했다. 2010년 73%에서 2022년 6월 106%까지 치솟았으며 2019년 초 2위인 호주와의 격차가 30%포인트에서 8.3%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비중도 2010년 148%에서 2021년 207%로 급증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131%를 크게 상회 하는 수준이다. 하나금융경제연구소 정희수 연구위원은 “소득 증가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자 비용 증가는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져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플레이션은 소비지출 연기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고물가 잡기에 혈안이지만 향후 물가 수준의 정체 내지 하락으로 부채의 실질 상환 부담이 증가할 경우 금융기관의 부실화, 신용경색 등으로 이어져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부채디플레이션 가능성의 우려도 존재한다. 채무자의 경우 향후 물가 하락에도 동일한 수준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부채의 실질 상환 부담 증가로 인한 채무 불이행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이 경우 내수 침체와 더불어 금융기관 부실로 인한 금융위기까지 떠안을 수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다중채무자는 450만9000명으로 이들의 전체 채무액은 598조3345억원에 달한다.

특히 생산연령인구인 20대 다중채무자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현상은 매우 부정적이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전 차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한국의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미국의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에 한국이 금리 인상에 더 취약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채무상환을 위한 자산매각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자산 가격 하락이 가속화돼 소비 투자지출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종대 경영학부 김대종 교수는 “국내 채무자 중 약 70%가 주택담보대출로 향후 급격한 디레버리징이 진행될 경우 자산 가격 급락으로 인한 소비 및 내수 부진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디레버리징이 본격화되지 않은 현재도 소비와 투자 위축은 진행 중이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 동향을 나타내는 소매액판매지수(계절조정)는 103.9(2020년 기준=100)로 2.1% 감소했다. 소비 판매는 지난해 11월(-2.1%), 12월(-0.2%)에 이어 올해 1월(-2.1%)까지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설비투자 역시 전월 대비 1.4% 줄어들며 두 달째 감소세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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