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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캐릭터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 2가 공개 첫 주 만에 비영어권 TV 부문 1위를 차지하며 그 인기를 증명했다. 고등학생 시절 박연진(임지연 분)과 그 일당에게 잔혹한 학교폭력을 당한 동급생 문동은(송혜교 분)이 십수 년에 걸쳐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해 가해자를 모두 처벌한다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스타 작가 김은숙과 유명 배우 송혜교의 이름값이 더해지며 티저 공개부터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유머가 돋보이는 대사와 출연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로 완성된 장면들은 각종 SNS를 통해 공유됐고, 이를 패러디하는 2차 콘텐츠 역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서 <더 글로리> 감독을 포함한 몇몇 유명인의 학교폭력 과거사가 재조명되는 등 <더 글로리>는 명실상부 2023년 상반기 화제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파트 2의 결말에 대한 시청자의 의견은 양극으로 나뉘었다. “용두용미였다”, “가해자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은 결말이라 좋았다”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 한편, “러브라인이 억지스러웠다”, “선정적인 장면이 많아 당황스러웠다”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비판적 견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드라마 전반을 꿰뚫는 주제의식에 던지는 의문들이었다. 한 트위터리안은 <스카이캐슬>과 <더 글로리>를 함께 언급하며 “미디어가 가해자를 ‘참교육’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또 다른 유저는 “영광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어 보였다”는 트윗을 남겼다.

다수가 경험했고 소수가 지독하게 시달렸을 학교폭력 경험과 그로 인한 아픔이라는 대중적 요소로 공감을 얻어 인기를 끈 것이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면모는 없었다는 것이다.

신은 왜 문동은을 돕지 않았을까?

폭력이 반복되는 복수가 반드시 피해자가 바라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점은 극 중 대사를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파트 1에서 문동은은 학교폭력 주동자 박연진을 향해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라고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파트 2에서는 “이봐, 신은 날 돕지 않는다니까? 고작 형벌? 그러니 어떡해, 이 감옥이 너의 지옥이길 (생략) 계속 비는 수밖에”라는 대사를 끝으로 박연진과의 면회를 끝낸다. 결과적으로 신은 문동은을 돕지 않았다. 박연진은 모든 걸 잃고 감옥에 갔지만 시간은 기회를 주기에 출소 후 그가 잃은 것을 얼마든지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극을 다루는 미디어가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피해자 캐릭터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가해자의 파멸을 원한다고 믿고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끝낸다는 것이다.

<더 글로리> 가해자들의 말미는 모두 형벌, 장애, 죽음으로 끝난다. 이는 각각 사법의 영향 아래 가장 큰 단죄인 감옥살이, 평생을 괴롭힐 신체의 영구적 훼손, 가해의 원천을 차단하는 생명의 박탈로써 흔히 복수의 종착지라 여겨진다.

문제는 이 세 가지 단죄가 미디어에서 과도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으로 그려지면서 그 본질인 피해자의 명예 회복을 흐리게 한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처음에 문동은의 착실한 복수 계획을 응원했다. 그의 흉터와 트라우마에 함께 슬퍼했다. 하지만 파트 2로 넘어가면서 그의 상처보다는 가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락에 치달을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문동은은 모든 가해자를 파멸의 길로 이끌었지만, 또 다른 복수극에 가담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의 구원은 이룩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20일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서 김은숙 작가는 ‘각본을 쓰기 위해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피해자들은 현실적인 보상이 아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결말부의 단죄가 과연 피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지에 대해 제작진이 진중하게 고민했을지는 의문이다. 피해자 문동은이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영광’을 제목으로 택하면서도 그의 마지막 뒷모습에 먹구름을 드리운 연출을 통해 김은숙 작가 역시 권선징악이 돼버린 결말에 영광은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형기를 마치면 다시 자유의 몸이 되고, 장애는 한 몸처럼 익숙해지며, 죽음은 짧고 쉽다. 피해자가 진정 원하는 복수의 종착역은 진심 어린 사과와 같이 그들 마음 깊숙이 변화를 일으켜 가해자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는 형태다. 그렇게 자신의 과거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평생을 사죄하며 사는 삶이 바로 신이 내린 천벌이다.

[사진출처=네이버영화]
[사진출처=네이버영화]

가해자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모든 가해자를 용서 빌 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납작하게 묘사할수록 그들은 사죄하는 삶에 대해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학교폭력 주모자 박연진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하예솔을 사랑하게 되듯, 가해 사실 자체는 평면적이더라도 사건 이후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 삶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바로 그 입체성을 조명해야만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삶이 변화한다. 극 중 자신의 과거를 예솔이가 알게 될까 불안에 떨었던 박연진처럼.

‘박연진’ 캐릭터가 세상 모든 가해자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영화 <러덜리스>, <유코의 평형추>,  <목소리의 형태> 속 인물들은 가해자와 그의 가족으로서 입체적으로 다뤄지며 <더 글로리>의 결말과는 다른 시사점을 제시한다.

<러덜리스>는 교내 총기난사 사건 범인인 조쉬의 아버지 샘(빌리 크루덥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잘나가던 광고기획자였지만 아들의 범행과 죽음으로 집도 직업도 버린 채 요트에서 살아가던 그는 아들이 만든 노래를 통해 다시금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6명의 학생과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아들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외면받는 샘의 앞날은 여전히 먹구름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아들의 살인죄를 대신 책임지며 살아가려는 그의 모습은 가해자의 가족이 어떤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또한 그들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어떤 시련을 감내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지난 2020년 10월 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유코의 평형추>에는 다큐멘터리 감독 유코가 등장한다. 학교폭력과 연쇄 자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틈틈이 학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와 강사를 겸하는 그는 피해자 가족과 학원 학생들의 삶에 점차 스며든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유코는 직업의식도 가족관계도 모조리 흔들리는 충격을 받는다. 유코로부터 잘못을 추궁당한 그의 아버지는 혼란과 수치를 겪고, 부녀 관계 역시 위태로워진다. 유코가 잘못을 바로잡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수치를 느끼는 건 그의 아버지였다. 거대한 비밀일수록 숨길 수 없다. 그걸 가족에게 발각당한 삶은 혼돈의 방향을 향해 급속도로 틀어진다.

<목소리의 형태>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쇼코와 이를 주동했던 가해자 쇼야의 재회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생각 없이 저질렀던 지난날의 과오와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살아갈 의지를 잃은 쇼야는 죽음을 결심하기 전 쇼코를 만나 사과하기로 결심한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쇼코도 쇼야의 노력에 점차 마음의 문을 연다. 극적인 화해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로 피해자의 인생이 비로소 원점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목도하면 가해자가 나락으로 떨어지기만을 힘주어 바라던 두 손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더 글로리> 캐릭터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더 글로리> 캐릭터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가해자에게 사죄하는 삶의 영광을

지난 13일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씨 일가의 호화생활과 범죄 행위를 폭로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전씨는 17일 현재까지 수십개의 사진과 영상을 통해 상세한 내용을 업로드하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가해 사실을 부정했던 한 인간의 최후는 친애하는 가족의 손에 의해 더럽혀지게 됐다.

진정한 복수의 끝은 가해자의 불명예가 아닌 피해자의 명예여야 한다. 피해자만큼 가해자에게도 명예가 중요하다. 잘못을 외면하는 뻔뻔한 삶에 명예란 없다. 사죄하고 책임지는 인생에만 영광이 주어진다. 그럼으로써 피해자에게도 찬란한 글로리가 내려지게 된다. 가해자를 처단한다는 명분만 업고 진정한 영광의 길에 대해서는 모르쇠 하는 자극적인 복수극이 되풀이될지는 앞으로의 시청자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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