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영화 ‘장기자랑’ 기자간담회

참사 피해자 편견 벗은 솔직, 발랄, 의욕 넘치는 엄마들의 모습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세 번째 작품, ‘장기자랑’ 실황 담아
관객들이 쉽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연극 '장기자랑' 공연을 마치고 객석에 인사하는 극단 '노란리본'의 뒷모습.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연극 '장기자랑' 공연을 마치고 객석에 인사하는 극단 '노란리본'의 뒷모습. [사진제공=영화사진진]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평범한 주부였던 일곱 명의 여자가 어쩌다 연극배우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창작물도 아니고, 실화 기반 소설도 아니다.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이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선보인 동명의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극 중에서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캐릭터로 분하여 춤추고, 노래 부르고, 서로 우정을 나눈다.

무대 위에서 봄날처럼 싱그러운 젊음을 연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무대 밖에서 사뭇 달라진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잠겨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피켓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상심의 나날만 있지는 않다. 모델을 꿈꿨던 아들을 닮은 ‘방미라’를 연기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최지영(순범 엄마), 아들이 좋아했던 만화 캐릭터 루피 역을 소화하기 위해 의상까지 철저히 준비하며 연극에 몰입하는 김도현(동수 엄마), 매일 랩을 연습했다는 아들처럼 장기자랑에서 랩 파트를 맡게 돼 생전 아들의 마음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된 이미경(영만 엄마) 등 떠나보낸 아이들의 흔적을 연극에서 찾아내며 특별한 마음으로 추모를 이어나간다.

<장기자랑>은 이렇듯 저마다의 방식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마냥 슬프지만은 않게 담아낸다.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라 말하는 영만 엄마처럼 때로는 솔직하고, 발랄하고, 의욕 넘치는 그들을 보면 편견에 갇힌 유가족 이미지에서 벗어난 엄마들이 얼마나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연극 '장기자랑' 연습에 매진 중인 단원들. 왼쪽부터 이미경(영만 엄마), 박유신(예진 엄마), 김명임(수인 엄마).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연극 '장기자랑' 연습에 매진 중인 단원들. 왼쪽부터 이미경(영만 엄마), 박유신(예진 엄마), 김명임(수인 엄마).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지난 24일 진행된 간담회에 연극 연출가 김태현,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현, 배우 김명임(수인 엄마), 김순덕(애진 엄마), 박혜영(윤민 엄마), 박유신(예진 엄마), 최지영, 김도현, 이미경이 참석했다.

이소현 감독은 “기존에 세월호를 다뤘던 영화와는 결이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했다. 참사 피해자가 아닌 가까운 이웃으로서 이들을 만난다면 관객들이 좀 더 쉽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즐길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제작 배경을 밝혔다.

연극 ‘장기자랑’을 연출한 김태현 연출가는 “처음 어머님들을 뵀을 때는 참사의 무거움으로 인해 어두운 일상을 보내고 계셨다. 당시 코미디 연극을 많이 연출했던 경험으로 이분들에게 연극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연극을 같이 준비하면서 조금씩 웃음도 찾고, 활력도 만들고, 서로 격려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들을 설득했다”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극단 ‘노란리본’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명임 배우는 “우리는 그저 살림하는 엄마들이었는데 참사를 겪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이제는 연극을 올리는 단원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로를 보며 더욱 끈끈한 정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연극 '장기자랑'을 마치고 생존 학생 애진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단원들. 왼쪽부터 차례로 김순덕(애진 엄마), 최지영(순범 엄마), 애진, 박유신(예진 엄마), 김도현(동수 엄마).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연극 '장기자랑'을 마치고 생존 학생 애진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단원들. 왼쪽부터 차례로 김순덕(애진 엄마), 최지영(순범 엄마), 애진, 박유신(예진 엄마), 김도현(동수 엄마).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생존자 엄마로서는 유일하게 극단에 남아 실의에 빠진 단원들을 다독이며 활력소가 되어준 김순덕 배우는 “감독님께 저는 생존자 엄마라서 많이 안 나와도 되니 그림자처럼 찍어달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내 마음을 많이 표현해 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라고 전하며 끝까지 함께해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박유신 배우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예진이 얘기를 할 때 내가 밝게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아까 우리가 율동을 하고 있을 때 객석에서 너무 많이들 울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 아프게만 기억하지 말고, 맑고 깨끗했고 그래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던 아이들이라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며 소감을 남겼다.

박혜영 배우는 “저희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 엄마들로 이루어진 극단인데, 초창기부터 ‘선례가 없어서 무대에 못 세운다’라며 거절을 많이 받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극단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른 참사 피해자의 가족과 만나서 소통하는 일은 기존에 없었던 문화다. 이런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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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기자랑> 간담회 단체 사진.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영화 속 “엄마가 대신 그 무대에 서서 한번 놀아볼게”라는 대사처럼, 아이들 대신 무대에 서서 웃고 즐기는 엄마들의 모습은 영화관에서 오는 4월 5일 <장기자랑>을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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