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 향한 열망이 사육곰 산업으로 활개
88올림픽 앞두고 돌연 수입 중단돼 궁지
‘웅담 채취’는 남은 2년 간 여전히 합법
곰 보호시설 두고 국가와 민간 차이 있어
사육 종식 이후 거취 불확정성 해결해야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임시 보호시설 속 ‘S1(가명)’.지난달 26일 추가로 구조한 두 마리 중 하나. 구조 농장 이니셜을 따서 임시로 ‘S1’,‘S2’로 부르다 현재는 이름을 공모 중이다. ⓒ투데이신문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임시 보호시설 속 ‘S1(가명)’.지난달 26일 추가로 구조한 두 마리 중 하나. 구조 농장 이니셜을 따서 임시로 ‘S1’,‘S2’로 부르다 현재는 이름을 공모 중이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단군신화 속 웅녀는 백일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나왔다. 그리고 여기. 10여년 동안 철장에서 개사료와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웅담이 될 뻔한 곰이 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6일 강원도 화천의 곰보금자리프로젝트(곰 보금자리) 보호시설을 찾았다. 이들은 동물권행동 카라(카라)와 함께 기존의 ‘곰 농장’을 인수해 임시 보호시설을 꾸려 현재 14마리의 곰을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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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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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시작된 가파른 한국의 경제 성장 속에서 보신을 향한 열망은 ‘이색 음식’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발현된 웅담 수요는 암암리에 야생 곰으로 충당했다. 말려 가루를 내서 알약으로 먹거나 쓸개즙을 그대로 채취해 주사기를 통해 술에 타 먹는 식이다. 

곰 보금자리 최태규 수의사는 “(웅담은) 귀한 대접의 상징이기도, 서양 의학으로 치료되지 않는 질병을 치료할 ‘마지막 묘약’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81년 광주에 나타났다가 붙잡힌 반달곰의 쓸개는 16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당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한다. 1983년 설악산에서는 한국 마지막 야생곰이 사냥됐다. 이때 정부는 곰 사체를 수습해 웅담은 경매로 내놨다.

말린 형태의 웅담 [사진제공=녹색연합]
말린 형태의 웅담 [사진제공=녹색연합]

이러한 인기로 국내 야생 곰의 씨가 마르자 정부는 1981년부터 외국의 곰 수입을 허가했다. 우리나라 사육곰 산업의 시작이었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에 발간한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1권에 따르면 한국은 1차 산업 중심에서 2·3차 산업 중심의 구조로 빠르게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 정책과 수출 지향적 발전 전략이 실행됐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곰 수입과 사육도 정책적으로 장려했다. 명목은 ‘재수출용’이다. ‘들여와 키우고 외국에 되팔면’ 농가 소득 증대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번식을 시켜 곰을 많이 생산해 쓸개즙이나 곰 발바닥 등을 파는 ‘내수용(內需用)’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재수출된 기록은 없다.

곰 보금자리 최태규 수의사는 “어느 나라든 안 먹는 동물은 없다지만 그것을 산업으로 키운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정의했다. 수요가 산업을 만들지만 한 번 산업이 되고 나면 더 큰 수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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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적 비난 여론에 “수입 중단”...남은 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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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사육은 곧 ‘문제’가 됐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사육곰과 웅담 채취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거세진 것이다. 그러던 1985년, 정부는 4년 만에 수입을 중단시킨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국내외에서 불거진 우려의 목소리와 더불어 ‘우루사’와 같은 대체 약품이 대중화되면서 웅담의 인기는 한풀 꺾였다. 사육곰 산업의 쇠퇴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러자 곰 사육업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남은 곰들의 거취는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2005년 정부는 도축 가능한 곰의 나이를 기존의 ‘24세 이상’에서 ‘10세 이상’으로 낮추고 2014년부터 전 개체를 대상으로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2014년에 1007마리던 사육곰은 2015년 800마리, 2017년 660마리, 2019년 448마리, 2021년 360마리로 감소했다. 물론 이 숫자 사이에는 수술 과정과 후처치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곰들도 포함된다.

2022년에는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임종성 의원 등)’이 발의돼 곰 사육이 금지되고 농가에서 사육되던 곰들은 인도적 보호의 대상이 됐다.

경기도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사진제공=녹색연합]
경기도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사진제공=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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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목적X, 돌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공간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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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사육곰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주면 안 될까? 사육곰도 반달가슴곰이고, 마침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을 풀어줬다는데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복원하고 있는 69마리의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 쪽에 서식해 토종 곰과 같은 ‘우수리 아종’인 반면 사육곰은 일본이나 동남아 쪽에 서식하는 종으로 분포지역에 따른 아종(종의 하위 단계)이 달라 생태계에 교란을 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남아있는 사육곰들은 야생에서 살아남을 능력을 잃었다는 것에 있다. 이들은 철창 안에서 태어나 남긴 발자취 하나 없다. 사람이 주는 먹이만 받아먹고 살았기 때문에 방사 이후에도 사람에게 다가와 서로가 위험해질 수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도 “무작정 방사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정부 지자체가 협력해 ‘지정 구역’을 설정하고 곰이 자신의 생태와 습성에 따라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지정 구역을 갖는다’는 것은 ‘생츄어리(sanctuary·안식처)’ 개념의 시작이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곰 보금자리)와 동물권행동 카라(카라)는 2021년 6월부터 화천 곰 농장의 사육곰 15마리를 인수해 농장을 보수‧개조해 돌보고 있다. 곰 보금자리 대표인 최태규 수의사는 “웅담 채취용 사육 곰 산업을 종식시키고 ‘생츄어리’를 만들어 그 곰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생츄어리는 동물들이 구조돼서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이어 그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동물 복지가 최우선인 공간이라는 것이 동물원과의 근본적 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들은 애니멀스 아시아(Animals Asia Foundatiion)가 운영하는 베트남의 탐 다오 국립공원(Tam Dao National Park) 생츄어리 사례를 소개했다. 정부가 국립공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비정부기구(NGO)인 애니멀스 아시아가 시설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또한 해당 생츄어리는 세계 생츄어리 연합에서 최고등급을 받은 곳으로, 12헥타르(ha) 크기의 부지에 178마리의 곰을 수용 중이다.

애니멀스 아시아가 운영하는 베트남 탐 다오 생츄어리.&nbsp;[사진제공=곰보금자리프로젝트]
애니멀스 아시아가 운영하는 베트남 탐 다오 생츄어리. [사진제공=곰보금자리프로젝트]
곰보금자리프로젝트 U라인 시설 구조. 왼쪽 콘크리트부터 실내 공간인 내실과 사육장, 색이 짙은 철근은 복도 겸 ‘곰숲’ 출입통로&nbsp;ⓒ투데이신문
곰보금자리프로젝트 U라인 시설 구조. 왼쪽 콘크리트부터 실내 공간인 내실과 사육장, 색이 짙은 철근은 복도 겸 ‘곰숲’ 출입통로 ⓒ투데이신문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관리하는 시설은 크게 세 부분. 윗 줄과 아랫 줄, 그리고 임시 방사장으로 나뉜다. 그들은 이를 각각 U(Upper)라인, L(Lower)라인, ‘곰숲’으로 부른다. U라인과  L라인에 각각 8개, 7개씩의 방이 있고, 라인 별로 이어진 복도는 ‘곰숲’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곰들이 생츄어리 건립 이전에 사육장 너머 자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난해 9월 임시방사장 ‘곰숲’을 만들었다.

카라 최인수 활동가는 “그때 저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며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모아서 빨리 생츄어리를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림(생츄어리)대로 나오기 전에 죽는 개체들이 계속 나올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 같다”며 “생츄어리도 (민간단체인 입장에서 부지 선정이나 매입 등의 어려움으로) 생각만큼 빨리 되고 있지도 않는데 하루라도 빨리, 이 정도(임시 방사장)라도 밟아보고 느껴보면서 사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곰 보금자리 최 수의사는 “몇 발자국 걷고 나면 다시 벽을 마주하는 삶이 아닌 흙바닥을 밟을 수 있고, 물웅덩이에서 헤엄칠 수 있고, 나무에 오를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일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덕에 곰들은 차례로 곰숲을 거닐 수 있게 됐다. 이날은 U라인 5번째 방에 사는 ‘우투리’가 방사장에 나왔다. 곰 보금자리는 “우투리는 화천 곰 중 처음으로 이름을 갖게 된 곰이다”라며 “시민들의 공모로 비범한 영웅 우투리의 이름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날 우투리는 곰숲에서 돌 사이의 먹이를 찾아 먹고, 나무 위까지 손을 뻗어보곤 했다. 최 수의사는 “곰을 가둬둘 수밖에 없다면 가둬진 삶 속에서라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생츄어리에서 곰들이 함께 거닐 수 있도록 합사 훈련도 병행 중이다. 

동물권행동 카라 최인수 활동가도 “한 단계 나아갈 때마다 뿌듯하고 계속 욕심이 생긴다”며 “임시 방사장이 더 큰 방사장이 되고, 방사장이 생츄어리가 될 날을 꿈꾼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곰숲에 나온 우투리. 용감한 곰이 되길 바라며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에서 이름을 따왔다.&nbsp;ⓒ투데이신문<br>
곰숲에 나온 우투리. 용감한 곰이 되길 바라며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에서 이름을 따왔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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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육 종식되고 생츄어리 생겨도...갈 곳 없는 부랑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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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구례와 서천에 각각 49마리, 70마리 수용이 가능한 규모의 생츄어리를 짓겠다는 계획으로 착공에 들어갔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도 민간 차원의 생츄어리 건립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태규 수의사는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운영하고 돌볼지가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민간 차원의 생츄어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도 국가가 건립하는 생츄어리의 자문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가둘 수밖에 없다면 이렇게 가둬야 한다는 본을 세우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생츄어리 착공에 이어 지난해 1월에는 환경부와 사육곰협회, 시민단체의 ‘곰 사육 종식 선언’이, 5월에는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임종성 의원 등)’이 나오며 사육곰 산업 종식의 가닥이 잡혔다. 현재는 10살령 이상 곰의 경우 웅담 채취를 위한 도축이 합법이지만 2026년부터는 사육곰 산업을 끝내겠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되면 사육곰은 도살이 아니라 생의 주기에 따라 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육 종식 이후 곰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여전히 구멍으로 남아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19개소 농장에 308마리의 사육곰이 남아있다. 운 좋게 보호시설로 들어갈 119마리를 제외하면 갈 곳 없는 곰은 189마리다.

이에 대해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이정원 사무관은 “보호시설에 119마리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한 방에 한 마리가 들어갈 것을 상정했을 때의 경우”라며 “합사를 하거나 해외에 있는 생츄어리로 이동시키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답변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는 “곰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해결할 문제”라며 “여생을 행복하고 자신의 생태와 습성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에는 280억원 넘는 예산을 투입하면서 같은 반달가슴곰인 사육곰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정부가 들여왔으니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며 이는 ‘의지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철창 안에서 지나간 세월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남은 여생 동안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하기 나름’ 아닐까.

상근활동가가 내민 민들레 향기를 맡는 ‘S1(가명)’ ⓒ투데이신문
상근활동가가 내민 민들레 향기를 맡는 ‘S1(가명)’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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