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주 아카데미극장 지키는 시민단체 ‘아카데미의 친구들’

무분별한 개발 속 등한시되는 근대 문화유산 보존 문제
지방소멸시대 타개할 개발 계획, ‘옛것 vs 새것’ 쟁점화
리노베이션으로 미래 세대에게 소중한 유산될 수 있어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 신동화씨(왼쪽), 오현택씨(가운데), 원주근대도시건축사연구소 서교하 소장(오른쪽). ⓒ투데이신문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 신동화씨(왼쪽), 오현택씨(가운데), 원주근대도시건축사연구소 서교하 소장(오른쪽).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건립됐으며, 원형을 보존한 국내 최고(最古)의 단관극장이다. 원주 평원로에 위치한 이 극장은 시민의 노력 끝에 다시 개방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는 문화공간이 됐다. 하지만 60년 만에 원강수 원주시장이 철거를 결정하면서 아카데미극장은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대다수 언론이 해당 사건을 원주 시민사회의 분열과 정당 갈등으로 써 내려갈 때 묵묵히 지역 원로와 원도심 상인의 목소리를 규합한 이들이 있다. 주 연령층이 청년인 원주 시민으로 구성된 단체 ‘아카데미의 친구들(이하 아친)’이다.

지난 11일 원주에 방문해 아친 수호대장으로 활동하는 오현택(34)씨와 신동화씨(36), 아친의 원로 멤버 서교하 소장을 만났다. 그들의 초대로 방문한 사무실은 아카데미극장 옆에 나란히 붙은 건물 3층에 위치해 있었다. 1997년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와 ‘트위스트 현숙 스페셜 쇼’ 공연 포스터가 도면함 위에 놓여있었고, 그 옆으로 난 창문을 열면 아카데미극장 영사실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보였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사무실에서 발견한 도면함과 포스터(왼쪽), 창문을 열면 보이는 영사실 출입구(오른쪽).&nbsp;ⓒ투데이신문
‘아카데미의 친구들’ 사무실에서 발견한 도면함과 포스터(왼쪽), 창문을 열면 보이는 영사실 출입구(오른쪽). ⓒ투데이신문

‘옛것은 만들 수 없습니다’ - 아카데미의 친구들 캐치프레이즈

뉴트로(New-tro·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의 시대. 유행은 돌고, 살아남은 것들은 클래식이 된다. 아카데미극장이 원주의 유일한 단관극장이 된 2016년 이후 이곳을 지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연대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재생시범사업인 ‘안녕 아카데미’나 시민 기획 프로그램인 ‘아카데미 방탈출’ 등이 진행됐고, 시민 모금으로 1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2022년 1월 원주시가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하고 문체부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돼 국·도비로 39억원을 받게 되면서 극장 리모델링과 재생사업은 눈앞에 온 듯했다. 하지만 원주시가 국비를 지원받지 않겠다고 결정하며 극장 존폐 여부가 기울었다.

원도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오현택씨는 원주 토박이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아카데미 극장을 방문했고, ‘안녕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그곳에 대한 애착을 더욱 느끼게 됐다고 한다. 2023년 3월 원주시가 극장을 폐쇄한 이후 시민들이 극장 외관에 붙여 놓은 메시지를 예고 없이 떼어버리고 현수막으로 가리는 등의 일방적 조치를 취하면서 오씨의 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변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으로 활동하는 오현택씨(34).&nbsp;ⓒ투데이신문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으로 활동하는 오현택씨(34). ⓒ투데이신문

아카데미극장 철거 찬성 여론을 대표하는 원주시소상공인연합회에 대해 오씨는 “모든 상인이 같은 의견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상인들에게 지지 서명을 받으려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친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도, 원도심 발전을 위해서라면 철거든 보존이든 상관없다는 중립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가 보존 근거로 내세운 7000여명의 서명에는 원도심 상인 316명이 포함돼 있다.

원강수 시장이 아카데미극장 철거 이후 그곳에 야외공연장과 주차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 오씨는 “극장 맞은편 문화의 거리에 잘 쓰이지 않는 야외공연장이 건재하게 있고, 중소벤처기업부의 전통시장 주차환경개선 사업에 선정돼 지상 5층 규모의 주차장도 곧 건설될 예정이다”라며, “이미 존재하거나 곧 만들어질 시설을 한 번 더 만드는 일이 극장 보존보다 중요한가”라고 비판했다. 

아카데미극장 내부 상영관 모습. 현재는 폐쇄돼 들어갈 수 없다. [사진제공=아카데미의 친구들]
아카데미극장 내부 상영관 모습. 현재는 폐쇄돼 들어갈 수 없다. [사진제공=아카데미의 친구들]

지방 소멸 시대, 대안은 무엇인가

책방을 운영 중인 신동화씨는 10년 전 원주에 정착했다. 극장이 재개방되면서 내부에 처음 들어간 그는 문화공간으로써 그곳의 역사성과 독특함에 감명받았다. 이후 극장에서 진행된 다양한 행사와 시민 기획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이러한 활동을 아카이브 하고자 지역 창작자 위주로 책을 만들기도 했다.

타지 사람이 원주에 정착한 이후 이곳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무엇인지 묻는 기자의 말에 신동화씨는 “지금은 노마드(nomade·특정 가치나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바꾸며 창조적인 자아를 발견하는 사람)의 시대다. 정통성이나 정당성보다는 개인적인 가치와 선택에 집중하는 세대가 우리인 것 같다”고 답했다.

민주주의 정신과 공동체 가치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원주의 시민력이라고 설명하는 신씨는 토박이 못지않은 지식과 애정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인구가 점차 유실되는 원도심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개발 계획에 아카데미극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단언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으로 활동하는 신동화씨(36).&nbsp;ⓒ투데이신문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으로 활동하는 신동화씨(36). ⓒ투데이신문

신씨는 “정부에서 계속해왔던 문화도시 사업의 기조는 결국 ‘지역균형개발’이다. 수도권의 기라성 같은 웅장함을 좇기보다는 원주만이 가진 지역성을 바탕으로 브랜딩하는 개발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카데미극장을 모든 연령대의 시민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 자원으로 봐야 한다며 그곳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또한 신씨는 극장 철거 사안이 민주당 소속 원창묵 전 원주시장 때부터 이어져 온 일이라 말하며 해당 사안이 정파의 문제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토박이도 아니고 중장년층도 아닌 사람들이 아카데미극장에 무슨 추억이 있겠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신씨는 “지방 소멸 시대에 타지 청년들이 이주해와서 터를 잡으려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가. 토박이만큼이나 원주를 사랑하고 가꿔나가고 싶은 우리의 진심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원로 멤버인 원주근대도시건축사연구소 서교하 소장.&nbsp;ⓒ투데이신문<br>
‘아카데미의 친구들’ 원로 멤버인 원주근대도시건축사연구소 서교하 소장. ⓒ투데이신문

원주의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청년들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아친 활동에 합류한 서교하 소장은 원주의 지리·역사·건축을 연구하고 아카이빙하는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아카데미극장이 단관극장의 원형을 잘 보존한 근현대 건축물로 가치를 평가받으며 문화재청상을 수상한 배경에는 시민의 제안을 받아서 공모전에 지원한 서 소장의 노력이 있었다.

서 소장은 “선진국은 근대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을 일찍이 도입했지만 한국은 이러한 인식을 이제 막 하기 시작했다”라며 아카데미극장을 일개 낡은 건물로 보고 철거하는 것은 근시안적 시정이라고 말했다.

문화유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오래됐다고 무작정 부수지 말고 구조물을 리노베이션(renovation) 작업해 100년, 200년 가게 만든다면 미래 세대에게 소중한 유산이 된다”고 설명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을&nbsp;리노베이션(renovation)한 건축모형.&nbsp;ⓒ투데이신문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리노베이션(renovation)한 건축모형. ⓒ투데이신문

서 소장은 아카데미 철거를 둘러싼 원 시장과 범시민연대 간 갈등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방에 이런 조그마한 건물이 있다고 국민이 어떻게 알겠나. 이 사태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진다면 원주를 문화유산이 잘 보전된 곳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대한민국은 지역 균형 개발의 필요성과 대면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노동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그곳의 인프라는 비대하게 발전했다. 지난 수십 년간 수도권이 끝도 모르고 몸집을 키우는 동안 지방의 발전은 논외로 내쳐졌다.

많은 지방 도시가 인구 유실을 막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도권을 모방하기에만 급급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보존 문제는 좌시되고 있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몰개성의 콘크리트 건물들 속 하나의 극장조차 보존돼서는 안 될 흉물이라면, 그곳에서 자라날 미래 세대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이럴 때일수록 온고지신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논의의 장이 필요해 보인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외관 모습. 정문에&nbsp;‘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현수막이 붙어있다.&nbsp;ⓒ투데이신문
원주 아카데미극장 외관 모습. 정문에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현수막이 붙어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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