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부터 시작해 ‘장족의 발전’
2차례 시험발사 후 첫 실전 ‘성공’
모든 절차서 고도의 정밀성 요구
기술·안보 등 ‘거시적 이점’ 기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기술은 나날이 발전합니다. 이른바 “기술이 세상을 구한다”는 테크 오타쿠들의 신앙고백(?)처럼, 다양한 첨단 기술들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도리어 인간은 기술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물질 문화의 변화 속도를 비물질 문화가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죠. 이에 <투데이신문>에서는 다양한 신기술들을 알기 쉽게 풀어보며 이 같은 지체 현상을 해소해보고자 합니다. 서구권 엔지니어들의 잇(IT) 아이템인 덕테이프(덕트 테이프)처럼, 기술과 사람 사이 벌어진 틈을 잘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발사대로 옮겨져 기립 작업을 마친 누리호 [사진 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대로 옮겨져 기립 작업을 마친 누리호 [사진 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의 실용 발사가 25일 저녁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발사돼 달 궤도에 안착한 탐사선 다누리에 이어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언론에서도 발사대 기립 등 준비 상황부터 발사 과정까지를 실시간으로 알렸습니다. 방송사들은 뉴스특보를 편성하고, 실황중계를 위해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특설 스튜디오를 설치했을 정도죠.

여기서 잠깐, 누리호는 어떤 로켓이기에 이렇게 대서특필된 걸까요? 이번 발사가 왜 중요한 것이며,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번 주 IT Duck질에서는 대한민국 우주산업이 걸어온 발자취와 누리호 발사의 시사점을 알아보겠습니다.

■ 늦었지만 더 빨리

누리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19년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가 발간한 ‘한국항공우주산업㈜ 20년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선진 우주개발국에 비해 30~40년가량 늦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 8월 11일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주도적으로 개발한 ‘우리별 1호’가 ESA(유럽우주국)의 아리안4 발사체에 실려 발사된 것이 출발점이죠. 이로써 우리나라도 인공위성 보유국 반열에 올랐으며, 우리별 1호의 성공적인 발사는 이후 1993년과 1999년 발사된 2호와 3호 개발의 모태가 됐습니다.

국가 차원에서의 사업은 1996년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으로 공식화됐습니다. 위성 개발, 발사체 개발, 연구개발 및 국제협력 등으로 구성된 이 계획을 통해 우리나라는 각 부문별 계획에 맞춰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우주개발진흥법과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등을 수립해 추진했고, 지난 2018년에는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의결하기도 했습니다.

1993년 발사된 KSR-I [사진 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1993년 발사된 KSR-I [사진 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가 속한 발사체 부문은 1993년 발사된 KSR-I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한 이 로켓은 고체추진제를 사용하는 1단형 로켓으로, 이를 통해 기초기술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후 1997년과 1998년에는 2단형 중형과학로켓(KSR-II)를 발사했고, 2002년 11월에는 국내 최초 액체추진기관을 이용한 과학로켓(KSR-III)을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학로켓 국산화 개발 역량을 확보했으며, 위성 발사용 국산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죠.

이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서는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를 독자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13년 발사된 ‘나로호’를 기억하실 텐데요,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개발된 이 발사체를 통해 100kg급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이어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저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발사체를 개발해왔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번 시간의 주인공인 누리호입니다.  

■ 우주를 향한 조심스러운 여정

사실 누리호의 발사는 이번이 3번째입니다. 지난 2021년 첫 발사에서는 1.5톤의 위성모사체를 싣고 날아올랐고 목표 고도인 700km까지 오르는 데도 성공했지만, 최종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3단 엔진의 연소가 46초 이른 시점에 종료되며 궤도 유지에 필요한 속도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 그 원인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었지만, 2번째 발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1.3톤의 위성모사체와 성능검증위성을 싣고 지난해 6월 다시 한 번 날아올랐죠. 성능검증위성과 위성모사체를 계획대로 잘 분리해냈고, 남극 세종과학기지와의 교신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지구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번째 국가가 됐습니다.

앞서 2차례의 시도가 누리호의 수송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 발사였다면, 이번 발사는 실전이었습니다. 모사체나 성능검증위성이 아닌, 실제 위성을 싣고 진행하기 때문이죠. 3번째 발사체에는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에서 개발한 차세대소형위성 2호가 탑재됐으며, 550km 상공에서 지구 해수면과 산림 등 기후변화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우주 날씨 관측을 위한 큐브 군집위성 도요샛 4기와 민간기업의 위성 3기 등 총 7개의 큐브위성도 함께 실렸습니다. 누리호의 총 비행시간은 18분 58초로, 주탑재 위성 사출 이후 7기의 위성을 20초 간격으로 분리해 목표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이번 임무의 목표였습니다.

누리호 3차 발사에 탑재되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 [이미지 제공=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
누리호 3차 발사에 탑재되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 [이미지 제공=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

준비 과정을 살펴보면, 아주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3일 발사대로의 이동 과정에는 별도의 특수이동 차량이 동원됐는데, 1.8km를 이동하는데 1시간 34분이나 걸릴 만큼 매우 천천히 이동했다고 하죠. 혹시나 모를 충격에 의한 손상이나 오류를 막기 위해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어 오전 11시 33분 기립장치 ‘이렉터’를 통해 발사대에 수직으로 세워졌고, 전기적 점검도 마쳤습니다. 이날 오후에도 연료와 산화제, 전력 등을 공급하기 위한 탯줄 역할을 하는 ‘엄빌리칼’을 연결하고, 추진제 누수여부를 확인하는 기밀점검 등 발사를 위한 준비작업들이 진행됐습니다. 최종 발사시간이 결정된 이후 연료와 산화제 공급을 시작했고,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누리호는 기립장치에서 분리돼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4일 오후에 발사관리위원회를 열고, 기술적 준비상황과 기상 여건, 우주물체와의 충돌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발사시각을 예정대로 24일 오후 6시 24분으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면서 한 차례 발사가 연기됐고, 결국 하루 뒤인 25일 6시 24분에 진행됐습니다. 

너무 유난 떠는 것 아닌가 싶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 사고를 떠올려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사고원인을 조사한 결과, 발사 과정에서 외부 연료탱크로부터 떨어져 나온 단열재 파편이 좌익 전연에 충돌하며 구멍이 생겼고, 재돌입 과정에서 이 구멍에 고온의 공기가 유입되며 날개가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륙 시의 충격으로 단열재가 떨어져나가는 현상이 당시에는 빈번하게 발생했고, 단열재 같이 가벼운 물질이 선체에 손상을 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됐던지라 미 항공우주국(NASA, 이하 나사)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방심의 틈에서부터 비극은 시작됐던 것이죠.

앞서 누리호 1차 발사의 실패 원인이 3단 엔진의 46초 이른 연소 종료였다고 말씀드린 바 있었죠. 고작 1분도 안 되는 차이가 로켓 발사 과정에서는 성패를 좌우하는 어마어마한 오차로 작용할 수 있음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절차들이 정확하게 시나리오대로 이뤄져야만 성공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인간의 오류’가 허용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뜻이죠.

발사 후 비행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순조롭게 이뤄졌습니다. 항우연에서 원격수신정보를 초기 분석한 결과, 누리호는 목표 궤도에 투입돼 차세대소형위성 2호를 성공적으로 분리, 궤도에 안착시킨 것이 확인됐습니다. 다만 부탑재위성인 큐브위성 7기 중 3기와 교신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지속적으로 교신을 시도하겠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입니다. 

지난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이륙 장면. 이 기체는 우주에서의 임무를 수행한 뒤 지구로 돌아오던 도중 폭발했다. [사진 제공=나사]
지난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이륙 장면. 이 기체는 우주에서의 임무를 수행한 뒤 지구로 돌아오던 도중 폭발했다. [사진 제공=나사]

■ 2조원의 가치가 있을까

다만 누리호에 대해 마냥 응원의 메시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로켓을 개발해 발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주발사체 개발 및 실용화에는 엄청난 시간과 자원이 들어갑니다. 누리호의 경우 1조9572억원의 예산과 연간 2만여명에 달하는 인력, 12년3개월의 기간이 투입됐습니다. 지난해 말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의 경우 개발기간 10년, 총 사업비 2조132억원이 책정됐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비용을 충당하는데다 요즘 경제도 어렵고 하니, 우주발사체 개발의 의미를 체감하기 어려운 분들 입장에서는 ‘2조원짜리 불꽃놀이’로 느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거시적 측면에서는 우주발사체 국산화가 주는 이점도 상당합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외국 발사체를 이용해야 했기에, 발사일정 등을 원하는 대로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군사위성 같이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는 민감한 물건의 경우 보안 유출이나 국제 문제 유발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가 있었죠. 하지만 발사체 국산화를 통해 이러한 어려움들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군사 분야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ICBM(대륙 간 탄도 미사일)이 있습니다. 대륙 너머 먼 거리에 있는 목표지점에 전략 무기를 투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이 미사일은 우주발사체 기술을 응용한 것으로, 상호 대체 이용도 가능한 수준입니다. ICBM에 재래식 폭탄을 탑재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핵무기와 같은 전략무기 투발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지난 2016년 북한의 광명성 로켓 발사에 미국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오랫동안 핵 개발 문제로 국제사회의 골치를 썩게 했던 북한이 우주발사체 발사에 성공했다는 것은 곧 핵폭탄을 미국으로 보내기 위한 ICBM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죠. 

지난 2021년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폐기로 한국형발사체(KSLV) 계획에 탄력이 붙었다는 뉴스가 많이 나왔었는데요, 이 점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지침에 의거해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발사체의 추력이 제한돼 있었는데, 이 부분이 풀린 것이죠.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한-미 미사일 지침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한-미 미사일 지침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통상 우주발사체에는 주로 액체연료를 활용하는데, 분사량을 조절할 수 있고 고체연료보다 무게당 추력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 난이도도 고체연료 발사체에 비해 낮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개발도 수월하죠. 누리호 역시 액체연료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액체연료의 경우 주입 과정 등 발사에 필요한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독성이 강해 작업 과정에서 위험성이 크고, 연료탱크를 부식시키는 문제도 있어 미리 넣어둘 수도 없죠. 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제타격을 당할 수도 있기에 미사일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미사일에는 보통 고체연료를 사용해왔고, 한미 미사일 지침에서도 고체연료 사용 발사체를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주탐사용 로켓에 고체연료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고요, 부스터 등에도 활용할 수 있죠. 그러다 보니 한-미 미사일 지침은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에 있어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제약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고체연료 발사체와 하이브리드형 등 더욱 다양한 파생 옵션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는 점도 중요한 메리트입니다. 로켓 하나를 발사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들이 동원된다는 점 때문이죠.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하더라도 이륙에 필요한 엔진을 비롯해 인공위성 제작, 교신에 필요한 통신 등 다양한 분야가 결합되죠.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생활 속 파생 기술들도 상당한데요, 태양광 패널을 비롯해 화재경보기, 정수기 필터, 메모리폼, 테크니션의 친구 WD-40 등도 실은 나사에서 발사체와 우주선을 개발하는 도중에 나온 발명품들입니다. 심지어 콩국수를 만들 때 쓰는 업소용 믹서기에 들어가는 모터도 나사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우주개발이 국가 주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어느 정도 기술적 성숙을 달성한 뒤에는 민간으로 기술을 이전함으로써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누리호 역시 3차 발사까지는 항연이 발사체 개발 및 제작을 주도했지만, 이후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제작을 주관하게 됩니다. 이번 발사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초로 발사 운용 등에 참여했고요.

관련해 과기정통부 측은 “2027년까지 누리호를 3차례 반복 발사함과 동시에 성능이 향상된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추진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며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긴 하지만, 언젠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같은 기업이 국내에도 나타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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