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음파 등 파장 인공 제어 가능
국방·광학 등 광범위 응용 ‘기대’
안보 및 전략 기술 선정해 지원
종합적·연속적 연구 지원책 필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기술은 나날이 발전합니다. 이른바 “기술이 세상을 구한다”는 테크 오타쿠들의 신앙고백(?)처럼, 다양한 첨단 기술들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기술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물질 문화의 변화 속도를 비물질 문화가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죠. 이에 <투데이신문>에서는 다양한 신기술들을 알기 쉽게 풀어보며 이 같은 지체 현상을 해소해보고자 합니다. 서구권 엔지니어들의 잇(IT) 아이템인 덕테이프(덕트 테이프)처럼, 기술과 사람 사이 벌어진 틈을 잘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나노결정 소재 메타물질 완전흡수체 [사진 제공=ETR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나노결정 소재 메타물질 완전흡수체 [사진 제공=ETRI]

【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해리 포터 시리즈를 기억하시나요? 조앤 K. 롤링 작가의 원작 소설 시리즈부터 워너 브라더스의 실사영화까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쭉 훑어보면 흥미로운 아이템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투명망토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씩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혼자만의 세상에서 몽상의 나래를 펼치고픈 마음이 생기는데, 그럴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해리 역시도 은밀하게 뭔가를 찾아다닐 때 투명망토를 애용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이 투명망토를 실제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메타물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그 가능성이 부각됐는데요, 스마트 렌즈, 스텔스 전투기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될 수 있어 범용성도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과연 메타물질이란 무엇이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을지 이번 주 IT Duck질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세상에 없던 물질

우선 메타물질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어로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물질(Material)’의 합성어로, 아직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은 특성을 갖도록 설계된 인공의 물질을 뜻합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에서는 ‘비유전율 혹은 비투자율이 음수인,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의 물질’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발견될 수 없는 특별한 성질을 갖도록 인공적으로 설계된 구조로, 음의 유전율 및 투자율을 갖게 될 경우, 물질의 굴절률이 음수가 돼 일반적인 물리적 현상이 뒤바뀌고, 새롭고 신비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빛의 파장보다 매우 작은 크기로 만든 금속이나 유전물질로 설계된 ‘메타 원자’를 주기적으로 배열해 파장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인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물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연적인 물질의 배열과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꿔 빛이나 음파 등을 특이하게 반사하거나 굴절시키도록 만든 신소재인 것이죠. 

메타물질 연구개발은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고, 2000년대 초반 나노기술 및 공정의 발전으로 본격화됐습니다. 역사는 짧지만, 이에 대한 인류의 기대감은 높습니다. 지난 2007년과 2018년에 각각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와 세계경제포럼에서 10대 신기술로 선정했으며, 2014년 미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는 인터넷 이상으로 커질 4가지 기술 중 하나로 메타물질을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삼성 6G 포럼에서도 미래 통신 핵심기술로 주목받았죠. 

최근 국내에서도 민간 영역에서 메타물질 연구개발을 위해 뭉치는 모습이 관측됐습니다. 지난 1월 한국기계연구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파동에너지 극한제어연구단이 공동 주관한 ‘메타물질 포럼’이 열렸는데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병선 원장을 필두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메타물질 기술의 현 주소와 미래 발전전략을 모색했습니다.  

한국기계연구원 등이 지난 1월 개최한 메타물질 포럼 현장 사진 [이미지 제공=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실]
한국기계연구원 등이 지난 1월 개최한 메타물질 포럼 현장 사진 [이미지 제공=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실]

■ 극한의 범용성

여기까지는 과학도들이 열광할 만한 내용이고, 저를 포함한 일반인들에겐 이 메타물질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겠죠. 가장 눈에 띄는 활용처는 앞서 언급했던 투명망토가 될 것 같습니다. 빛의 파장을 인위적으로 바꿔 정상적으로 반사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군사 분야에서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선 전투병들에게 투명 망토나 방패 같은 물건들을 지급해 은엄폐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들의 생존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영국 인비저빌리티 실드 사에서는 가시광 대역에서 물체를 숨길 수 있는 방패를 개발하기도 했죠.

군 항공기에도 활용할 여지가 있는데요, 현재까지의 스텔스 전투기들은 RCS(레이더 반사 면적)를 줄이기 위해 굴곡을 최소화한 매끈한 설계와 스텔스 도료 등을 적용하고 있죠. 여기에 메타물질을 적용하면 형태에 관계없이 RCS를 줄이거나 아예 시각적으로도 잘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마찬가지로 은밀성이 중요한 잠수함의 외형 소재로 메타물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요. 

이미지 센서나 렌즈와 같은 장비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작은 크기의 렌즈와 이미지 센서에서도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최근 스마트폰 카메라가 AI(인공지능)를 만나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는 하나, 센서 사이즈 등 기본적인 ‘체급’의 차이는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사진에 관심이 많고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전 속도에 놀라워하고 있지만, 현재 사용 중인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의 결과물과 비교해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어쩌면 메타물질이 돌파구가 될 수 있겠네요.

이외에도 6G 등 차세대 통신이나 IoT 및 모빌리티 센서, 의료장비, 흡음·차음 패널 등 ‘파동’을 이용하는 분야라면 어디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얼마 전 누리호에 실려 우주로 나간 큐브위성 같은 물건에 쓸 고성능 안테나를 만들 수도 있겠네요. 적용 가능한 분야가 무척 광범위한, 범용성 높은 기술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됩니다.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로 알려진 F-22 랩터 [사진 제공=뉴시스]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로 알려진 F-22 랩터 [사진 제공=뉴시스]

■ 아직은 먼 미래

기대효과는 크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기술이기도 합니다. 국내외 주요 연구들을 살펴보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하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이를 활용한 상용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다만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전을 이룰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계 주요국들이 이를 중요 기술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죠. 실제로 미국 등은 메타물질을 안보 및 전략 차원에서 핵심 기술로 보고 광범위하게 지원하고 있으며, 국방 등 일부 분야에서는 비공개로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기술동향브리프 ‘메타물질’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009년 설립된 메타물질 관련 산학협동 연구센터 CfM(Center for Metamaterials)을 비롯해 다양한 연구기관을 신설했습니다. 유럽에서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유럽방위청(EDA)이 메타물질 기술의 국방 분야 응용을 위해 각종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있죠. 일본에서는 민간 단위에서 투자 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싱가포르에서는 대학 내에 연구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정책 동향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위 보고서에서는 각 부처에서 기초연구 등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안보 및 전략기술 관점의 종합적 지원정책 및 방향은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있는 지원도 연속적이지 않고, 종합적 투자방향과 프로젝트는 부재한 상태라는 것이죠.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국방과학연구소, 방위사업청, 교육부 등이 관련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형 프로젝트의 종료 시점이 도래하고 있음에도 후속 프로젝트가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전략 기술로 선정하는 등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기술 실증을 넘어 산업 육성으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정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메타물질 포럼’에서도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을 촉구하는 주요 기관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정병선 원장은 “메타물질은 다양한 산업에 파괴적인 혁신을 불러올 기술로,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선두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확보한 기초원천기술 성과의 지속적인 개발과 응용확산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파동에너지극한제어연구단/한국기계연구원 이학주 단장 역시 “혁신 기술인 메타물질의 연구 및 산업 응용 동향을 논의하고, 축적된 기술의 산업응용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지속 성장을 위한 방안을 같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창윤 실장은 “정부 주도의 중장기 연구개발사업인 글로벌프런티어사업을 통해 선진국 대비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를 확보했으며, 이전에는 상용화를 기대할 수 없었던 원천기술 연구 분야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원천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스케일업 정책과 지원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이 실장의 이 같은 발언이 실제 정책지원으로 이어질 지도 주목해볼 대목입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