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사업비중 확대에 9조원 투자
수소사업·폐플라스틱 재생 등 신사업도

정유업계는 대외요인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높고 탄소 배출이 높은 점을 동시에 극복해야할 숙제를 안고 있다. 사업 전환과 함께 탄소 저감도 이뤄야하는 묘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묘수를 실현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S-OIL(에쓰오일)은 9조2580억원을 투자하는 샤힌 프로젝트 추진을 확정하고 친환경 에너지 화학기업으로의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다. 국내 제조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만한 소식이다.

시장 여건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유사업은 정제마진 악화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고 석유화학업계도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물론 업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샤힌(Shaheen)이란 아랍어로 ‘매’을 일컫는다. 높이 비상한 매의 시야에는 어떤 미래가 보였던걸까.

S-OIL 잔사유 고도화시설 [사진제공=S-OIL]
S-OIL 잔사유 고도화시설 [사진제공=S-OIL]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에쓰오일은 지난해 11월 17일 샤힌 프로젝트(2단계 석유화학 확장 프로젝트) 투자를 이사회에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 같은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 맞춰 이뤄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에쓰오일 지분 63.4%를 보유한 아람코의 대주주다.

샤힌 프로젝트란 울산시 온산국가산업단지에 대규모 석유화학 생산기반을 구축해 에쓰오일의 석유화학사업 비중을 기존 12%에서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이를 통해 광범위한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친환경 에너지 화학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샤힌 프로젝트는 한국과 사우디 간 경제협력의 대표적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설업계와 울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시공은 현대건설 컨소시엄(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DL이앤씨)이 맡았으며 오는 2026년 6월 완공할 예정이다. 건설 과정 동안 1일 최대 1만70000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동 이후에는 400여명을 상시고용하고 약 3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늘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근 올레핀 하류시설(ODC) 산업체에는 모노머(합성수지, 합섬원료 등 화학제품의 중간 원료로 사용) 제품을 배관으로 공급하게 된다.

샤힌프로젝트 공정 흐름도 [자료제공=S-OIL]
샤힌프로젝트 공정 흐름도 [자료제공=S-OIL]

샤힌 프로젝트의 상징적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팀 크래커를 꼽을 수 있다. 이 스팀 크래커는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에틸렌을 연간 180만톤이나 생산할 수 있다.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 원료(LPG, 나프타)로 전환하는 신기술이 적용된 TC2C 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외에 플라스틱을 비롯한 합성수지 원료로 쓰이는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폴리머 시설과 저장탱크 등의 설비도 함께 구성된다.

스팀 크래커와 TC2C시설에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 효과가 뛰어난 최신 기술이 적용된다. 스팀 크래커는 자가발전 설비에서 발생한 폐열(스팀)을 재활용해 가동에 투입하는 선도 기술이 도입될 예정이다. 또, TC2C는 단순화된 공정과 높은 에너지 효율을 통해 전통적인 설비보다 낮은 탄소배출량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특히 아람코가 개발한 저부가가치 중유제품들을 분해해 스팀 크래커의 원료로 전환하는 신기술이 세계 최초로 상업화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원유를 직접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고 연료유 정제 과정에서 생성되는 부생가스를 비롯한 다양한 저부가가치 중유제품까지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게 된다”라며 “샤힌 프로젝트는 경쟁사들의 기존 나프타 크래커 대비 원가 경쟁력에서 강점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샤힌 프로젝트 박차…“석유화학 바닥인 지금이 투자 최적기”

에쓰오일은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을 열었다. 이날 기공식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이창양 장관, 울산시 김두겸 시장, 사우디 아람코 아민 나세르 CEO 등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해 에쓰오일의 새 출발을 축하했다.

에쓰오일이 샤힌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는 동안 정작 석유화학업계는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올해 주요 석유화학 제품 공급과잉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주로 중국에 제품을 수출했으나 올 상반기 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24.7%나 감소했다. 특히 중국이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을 높이면서 향후 업황이 밝지는 못한 모습이다.

S-OIL이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샤힌 포르젝트 기공식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S-OIL]
S-OIL이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샤힌 포르젝트 기공식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S-OIL]

그럼에도 시장에선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투자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지난해 11월 샤힌 프로젝트에 “장기적인 석유 수요 둔화 대응, 다각화에 기반한 사업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의견을 냈다.

한신평은 “적극적으로 석유화학, 저탄소 에너지 등의 사업 확장을 추진하는 모회사 아람코 차원의 전략적 방향성 하에 기술력 확보, 공정 운영, 제품 판매 등에 있어 아람코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투자기간이 장기간에 걸쳐 분산돼 있고 자체적인 영업현금 창출을 통해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재무부담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의 석유제품 수요 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석유화학부문의 사업다각화를 통해 사업역량과 수직계열화된 생산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정유산업의 본원적인 변동성에 대한 대응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한신평은 “에틸렌 시장이 2023년 하반기부터 공급 부담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2025년 이후에는 중국, 동남아시아 중심의 신규 설비 공급으로 증설 압박이 가중될 수 있다”면서 “점진적인 수요 정상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실제 상업가동 시점인 2026년에는 산업 전반의 공급 부담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상업가동 시점의 수급여건과 유가 수준 등에 따른 수익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에쓰오일은 앞서 2018년 준공한 석유화학 1단계 프로젝트에 4조8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이번 샤힌 프로젝트까지 합하면 석유화학에 14조원을 투입하게 된다. 이로써 2026년 상업가동 이후에는 국내 4위 규모인 연간 약 200만톤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에서 화학으로’ 주사위가 던져진 셈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황이 바닥을 다지고 있는 지금이 바로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의 최적기”라며 “석유화학으로의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은 물론 회사 비즈니스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확신과 성장을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소경영 시스템 고도화…“신사업 통한 지속성장 견인”

에쓰오일은 2050년 탄소배출 넷제로(Net Zero)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기후변화 대응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사업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수소의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수소 산업 전반에 걸쳐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람코와 석유화학 신기술, 저탄소 미래 에너지 생산 관련 연구개발, 벤쳐 투자 등 대체 에너지 협력 강화를 위한 4건의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블루 수소와 블루 암모니아를 국내에 저장 및 공급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관련한 기회발굴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아람코와는 탄소중립 연료인 이퓨얼(e-Fuel) 연구와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관련 기술 개발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S-OIL이 지난 3월 23일 서울 마포 본사에서 페인트 벤처 회사 이유씨엔씨(EU CNC)와 지분 투자 체결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S-OIL]
S-OIL이 지난 3월 23일 서울 마포 본사에서 페인트 벤처 회사 이유씨엔씨(EU CNC)와 지분 투자 체결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S-OIL]

이뿐 아니라 삼성물산, 남부발전 등과 함께 수소 생태계 조성을 위한 대규모 청정수소 프로젝트 컨소시엄에도 참여하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2050년 탄소배출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탄소경영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대응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수소 생산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수소 분야 진출을 계획하고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에쓰오일은 폐플라스틱과 바이오연료 분야의 실증사업을 진행하고자 규제샌드박스 2건을 신청해 지난 6일 승인받았다. 규제샌드박스는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일정 조건 하에서 시장에 우선 출시해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이에 에쓰오일은 지난 3월 현재 석유사업법상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정제공정에 원료로 투입할 수 없어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을 통해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특례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샌드박스 승인을 받으며 온산공장의 기존 정유화학 공정에서 국내외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제조한 열분해유를 원유와 함께 처리해 휘발유, 등유, 경유, 나프타, 폴리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실증사업이 본격 시행될 계획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앞으로 2년 간의 실증 기간에 최대 1만톤의 열분해유를 기존 정유화학 공정에 투입해 자원순환형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시운전을 통해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열분해유를 기존 설비에서 성공적으로 제품화한 뒤 지속가능성 국제 인증(ISCC PLUS)을 신청해 탄소배출 감축 성과를 구체화하고 저탄소·순환경제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폐플라스틱은 85% 이상 재자원화가 가능하며 1톤의 폐플라스틱을 재생하면 소각에 비해 약 1.2톤의 이산화탄소 저감효과가 있다. 

ESG 경영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에쓰오일은 탄소 저감에 관련된 사업과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에 투자하고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신기술과 탈탄소 관련 사업 분야의 국내 벤쳐기업에 공동 투자하고 이를 통한 관련 신기술 확보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에쓰오일은 지난 4월 특수 페인트 생산 기술을 보유한 페인트 벤쳐회사 이유씨엔씨(EU CNC)와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이유씨엔씨는 특수 첨가제를 개발해 단열과 차열을 동시에 실현한 친환경 수성페인트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저탄소, 순환형 신에너지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해 ‘최고의 경쟁력과 창의성을 갖춘 친환경 에너지 화학기업’이란 비전을 실현하겠다”라며 “사회적 가치실현과 친환경 트렌드에 발맞추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어 “장기 성장전략 ‘비전 2030’을 통해 기존 사업분야인 정유, 석유화학, 윤활사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수소, 연료전지,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바이오매스 원료 기반 친환경 제품 개발 등 신사업 분야에서도 회사의 지속성장을 견인하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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