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실업급여’ 관련 발언 도마 위 올라
‘주 69시간 사태’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와
연대회의 “노동 주체로서 여성 인정 안 해”
갑질 단속·양질 일자리 창출이 우선돼야

서울 서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구직자가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서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구직자가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즐기고 있다”(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업무 담당자)

당정이 실업급여 하한액(최저임금 80%)을 폐지 혹은 인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로, ‘실업자’를 ‘베짱이’로 빗대는 등 마치 실업급여 수급자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여성·청년들을 향해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해외여행을 가거나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는 고용노동부 직원의 발언은 더 큰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노동계는 이번 제도개편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으로 사실상 폐지된 ‘주 최대 69시간 사태’와 비슷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행법상 실업급여는 직장에서 해고 등 비자발적 실직을 당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재취업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급여를 지원하는 제도다. 실업급여는 ‘실업 전 3개월 평균임금 60%’를 지급하되, ‘최저임금 80%’(월 184만원)를 하한선으로 규정했다. 당정은 실업급여 하한액이 실제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월급(월 179만원)보다 높은 것을 두고 실업자의 구직 의지를 저해할 수 있다며 개편을 결정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17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업급여 삭감 및 폐지 추진한 당정을 규탄했다.

이들은 “실업급여는 공적 부조가 아니라 사회보험으로 노동자들이 취업 중에 낸 보험료를 실직 후에 받는 것”이라며 “그런데 마치 정부는 실업급여를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하고 있으며 저소득 청년·여성들이 복지에 중독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의 73.1%(119만명)가 대부분 청년, 고령,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이들은 급여 하한액 적용을 받고 있는 조건에서 최저임금 대비 소득대체율(실업급여의 하한액)마저 낮추거나 폐지한다면 저임금노동자의 실업 기간 동안 생계유지에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고 꼬집었다.

‘주 69시간 사태’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앞서 지난 3월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해당 개편은 현행 ‘주52시간제’(기본 40시간+최대 연장 12시간)에서 주 단위의 연장근로를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해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민주노총 김수현 청년사업차장은 “윤석열 정권이 주69시간제를 엎질렀다가 황급히 닦으려 하더니 이제는 해고당한 노동자의 울타리도 부수려 하고 있다”며 “청년과 여성이 실업급여를 받는 다수라면 청년과 여성이 부당하게 해고 당하는 다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연히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규범을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노동개악을 일삼는 윤석열 정권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한국여성민우회 등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진행된 ‘실업급여 삭감 운운하며 노동자 삶 위협하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여성민우회]
지난 14일 한국여성민우회 등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진행된 ‘실업급여 삭감 운운하며 노동자 삶 위협하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여성민우회]

“베짱이로 낙인” 여성단체 ‘반발’

여성계도 강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이 소속된 여성노동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지난 14일 ‘실업급여 삭감 운운하며 노동자 삶 위협하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실업급여 개편으로 정부의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신혜정 활동가는 “실업급여는 일 안 하고 싶은 사람이 베짱이처럼 놀고먹으며 공짜로 타먹는 돈이 아니다”며 “실직을 대비해 고용보험을 들고 그에 바탕해 받는 재원이며, 이는 실직한 기간 동안 재취업 활동을 하는 기간 동안 생계 불안감을 덜어낼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장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성원이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국가의 책무다”며 “노동자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실직한 노동자도 사회 구성원이다. 국가는 이들이 사회에서 내버려졌다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게끔 만들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급여의 부정 및 반복수급에 대한 통계를 제시하며 실업자를 마치 일하기 싫어서 퇴사를 반복하며 실업수당을 ‘타먹는’, 국가 예산을 축내는 존재로 낙인찍어 왔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연대회의는 “정부는 노동의 주체로서 여성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일을 쉬어도 생계에 문제없는 사람, 국가와 기업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 일 안 하고 과한 소비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양산하고 있다”며 “또 노동시장에 갓 발을 디딘 청년 노동자 역시 일할 의지가 없고 기성세대에 비해 적극적으로 구직하지 않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 일련의 놀라운 발언과 하루아침에 실업급여 하한제 폐지까지 운운하는 정부의 행보는 그간 노동정책을 들여다보면 놀랍지도 않다”며 “주 4.5일제 도입 논의를 이어오던 시민사회에 현 정부는 갑작스럽게 주69시간 장시간 노동을 추진한 적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잠시 멈춤’ 택한 당정

당정은 여론의 역풍은 물론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 혹은 인하 근거로 제시한 통계도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당정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월 184만7040원,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을 179만9800원으로 계산한 결과를 제시하며,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당국은 수급자가 퇴직 전 받은 월 근로소득에서 10.3%를 빼는 방식으로 세후 임금을 산정했는데, 국세와 지방세, 사회보험료 각각을 구성하는 세부 항목과 항목별 비율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더불어 근로소득세, 사회보험료를 명목으로 근로소득에서 10.3%를 빼는 등 세후 임금 산정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업급여 개편 추진이 도마 위에 오르자, 정부는 잠시 ‘멈춤’을 택했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려되는 내용들은 잘 알고 있으며, 그런 부분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고 있다”며 “국민적인 관심사가 높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들어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만들도록 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직장갑질119 조영훈 노무사는 “(실업자에 대해) 밝고 명랑한 얼굴, 해외여행, 명품 선글라스의 발언은 성실하게 구직활동을 하며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들을 모욕하는 말”이라며 “실업급여받겠다고 실업자 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냐. 실업급여를 ‘공돈’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같은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실업급여는 노동자들이 일정 기간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비자발적으로 이직하게 된 경우 등의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만 지급된다”며 “정부가 신경을 쓰고 돌봐야 할 것은 ‘시럽급여’라는 유치한 말장난에 기댄 실업자 모욕이 아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실업급여 갑질의 단속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