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자성·소송 등 변화 요구 직면
활로 개척 위한 시장 다변화 시도
‘지속가능성 의문 해소’ 숙제 남아
고질적 약점 ‘내러티브’ 보강 절실

그간 MMORPG는 K-게임의 주력 장르로 군림해왔다. ‘바람의 나라’로부터 시작된 국산 MMORPG의 발전사는 곧 국내 게임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MMORPG 위기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까지는 주요 경제활동 계층인 30대를 중심으로 높은 매출을 달성하고 있지만, 동종 장르 게임의 범람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피로도가 급증한 것이다. 여기에 BM(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비판과 게임 이용 트렌드 변화 등 여기저기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높은 자유도와 게이머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이야기 등 장르 자체가 가진 매력은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나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모 디렉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MMORPG는 게이머들의 삶의 일부이자 오랜 시간을 들인 추억을 담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투데이신문>에서는 국산 MMORPG가 직면한 현 상황과 전망을 톺아보고, 앞으로의 돌파구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엔씨소프트의 대표작 ‘리니지M’ 대표 이미지 [이미지 제공=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의 대표작 ‘리니지M’ 대표 이미지 [이미지 제공=엔씨소프트]

【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기존의 관성에 대해 이용자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K-MMORPG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특히 엔씨소프트와 웹젠 사이의 저작권 침해소송 1심 판결이 나오면서, 소위 ‘리니지라이크’로 대표되는 게임 내 시스템과 콘텐츠에 대한 대폭 수정도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따라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는 중이다. ‘플레이 투 언(P2E)’이나 NFT 등 블록체인을 도입해 유저들의 게임 내 경제활동을 실제 수익으로 연결시키는가 하면, 특정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 경로를 다각화하는 등 여러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선, 결국 ‘지속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업계 전문가는 이제 기술이 아닌 ‘작품’의 관점에서 새로운 IP(지식재산권)를 창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족한 심도를 자유도로 커버하며 ‘얕고 넓은’ 게임을 만들어왔던 지금까지의 기형적인 기조에서 벗어나, 깊이까지 충분히 갖춰 글로벌 보편성에 호소할 수 있는 IP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트리플A급 게임들이 높은 자유도와 탄탄한 내러티브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에 반해, 국내 게임업계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약점을 갖고 있어 이 부분을 보완해 글로벌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격변의 시기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하면서, 국내 게임업계도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다. 비판의 표적이 됐던 주요 기업들 내부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나왔고, 업계 리더들도 변화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언을 주문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소송 1심에서 ‘R2M’이 ‘리니지M’을 모방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을 중심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형국이다. 재판부는 모바일 MMORPG ‘R2M’의 복제와 배포, 전송 등을 금지하고, 웹젠으로 하여금 원고(엔씨소프트)에 10억원을 지급할 것을 판시했다.

양측 모두 항소심으로 넘어가면서 당장 ‘R2M’의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는 막았지만, 이용자들의 환불 요구가 이어지는 등 이번 판결이 다른 리니지라이크 게임에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비록 ‘아인하사드의 축복’ 등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되지 않았으나, 이를 모방한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와 웹젠의 저작권 침해소송 1심이 진행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 제공=뉴시스]
엔씨소프트와 웹젠의 저작권 침해소송 1심이 진행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 제공=뉴시스]

특히 엔씨소프트는 이전부터 모방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되는 게임에 대해서는 법적 분쟁을 불사해왔는데, 이츠게임즈의 ‘아덴’에 대한 소송 제기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카카오게임즈의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을 표절했다며 웹젠과 마찬가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항소심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이 반복된다면, 게임사 입장에서는 ‘리니지라이크’라는 형식을 취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임사들도 새로이 나아갈 길을 찾아 나선 모습이다. 대표적으로는 시장 다변화가 꼽힌다. 특정 지역과 플랫폼을 제한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특히 주요 게임사들이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북미·유럽과 일본 시장에서는 주력 장르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콘솔 플랫폼으로의 진출이 화두가 된 상황이다. 

시도는 좋지만…명확한 한계

글로벌·콘솔 시장 진출에 있어 관건이 되는 부분은 BM이다. 국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커졌지만, 서구권 일부 국가에서는 법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금지시키는 등 고강도 BM에 대한 반발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콘솔 게임의 경우 PC 및 모바일과는 다른 BM이 필요한 만큼, 해당 시장으로의 진출이 가속화될수록 새로운 모델 개발 역시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엔씨소프트가 준비 중인 ‘쓰론 앤 리버티(TL)’의 경우 초기부터 콘솔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해 왔으며, 파이널 테스트를 통해 배틀패스 등 전작들보다 느슨해진 BM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블록체인을 통해 글로벌 공략에 나선 사례도 있었다. 위메이드의 ‘미르4’가 블록체인을 탑재한 글로벌 버전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른바 ‘P2E’라는 물결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이는 동남아시아와 남미 등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게임 아이템에 대한 유저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거래를 보장한다는 콘셉트를 통해 현지 이용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이 그 이유로 꼽힌다. 

다만 이 같은 시도들은 모두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의문부호가 붙어있는 상황이다. 콘솔 시장 진출은 곧 글로벌 개발사들과의 무한경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단위 인력과 자본 등 충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주요 게임사들이 실적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BM을 느슨하게 가져갈 경우 단기 수익성이 약해져 대작 개발을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P2E의 경우 유틸리티 코인의 매수-매도 불균형이 기축 코인의 시세에 악영향을 주는 문제가 발생하며 빠르게 식어버린 측면이 있다.  

한국게임정책학회 이재홍 학회장 ⓒ투데이신문
한국게임정책학회 이재홍 학회장 ⓒ투데이신문

관련해 한국게임정책학회 이재홍 학회장(숭실대학교 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은 ‘리니지라이크’라는 이름의 부화뇌동이 국산 MMORPG, 나아가 국내 게임산업의 구조적 약화를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부실한 기초공사 위에 세워진 건물이 튼튼할 수 없듯, 구조적인 약점을 외면한 결과 글로벌 시장의 보편성과 멀어지게 되며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리니지’는 원작 만화의 서사를 제대로 녹여내지 않고 캐릭터 명칭 등 몇 가지 요소들만 차용해 스토리텔링이 빈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서구권 MMORPG에 비해 깊이가 부족한, ‘얕고 넓은’ 구조라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업계 전체가 ‘리니지’를 모방하며 이는 국산 MMORPG 전체의 약점으로 비화됐다. BM 측면에서도 초기 정액제 모델에서 F2P로 전환되며 수익성을 위해 여러 아이템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확률형 아이템으로 이어지는 등 유저를 착취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됐다고 지적했다. 

게임 아닌 IP 만들어야

현재 국내 게임업계와 K-MMORPG는 일종의 딜레마에 놓인 상황이다. 수익성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이용자들의 충성도가 떨어지고, 이는 다시 수익성 약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들을 곳곳에서 제시하고 있지만, 이내 또 다른 한계로 이어지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이 학회장은 기존의 인기작을 계속 답습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신규 IP를 창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동차 등 제조산업은 이미 수년 전에 차기작을 계획하며 시리즈를 이어가는데, 유독 게임업계는 한 IP에 손을 대면 바꾸질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인기 있는 핵심 IP에만 연연하면서 플랫폼, 장르 변화에도 이를 우려먹기에만 급급했고, 그 결과 서브컬처 쪽으로 이동하는 유저들을 잡지도 못했고 크로스플랫폼 시대에도 콘솔에는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가 생각하는 IP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내러티브’다. 지금까지는 기술의 경쟁이 이어져 왔지만, 앞으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상상력, 스토리의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트리플A급 콘솔 게임들의 경우 국산 MMORPG들과는 반대로 스토리텔링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데다, 글로벌 보편성과도 연관이 있는 만큼 이 부분에서의 경쟁력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블리자드의 PC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인게임 스크린샷. 지난 2004년 출시된 이 게임은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방면으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며 현 시점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MMORPG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지 제공=블리자드]
블리자드의 PC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인게임 스크린샷. 지난 2004년 출시된 이 게임은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방면으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며 현 시점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MMORPG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지 제공=블리자드]

이 학회장은 “피부 색이나 민족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같은 감성과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 부분이 바로 글로벌 보편성이 되는 것”이라며 “스토리부터 시작해 그래픽 요소 등 눈에 보이고 감성으로 끌어당겨지는 부분들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글로벌 유저를 감동시키고 보편성을 갖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은 국내 게임업계가 이미 가지고 있으며, 이제는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디자이너보다는 스토리텔러를 기용해 보다 높은 퀄리티의 스토리텔링을 해나가야 한다”며 “나아가 콘솔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의 프로젝트에 매진해 세계 유저들을 감동시키는 놀이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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