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발전 선도…‘한류 원조’ 기능
모바일 시장 규모 확대에도 기여
과금·유사작 범람 등 피로도 심화
장르 하향세 뚜렷…Z세대 멀어져

그간 MMORPG는 K-게임의 주력 장르로 군림해왔다. ‘바람의 나라’로부터 시작된 국산 MMORPG의 발전사는 곧 국내 게임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MMORPG 위기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까지는 주요 경제활동 계층인 30대를 중심으로 높은 매출을 달성하고 있지만, 동종 장르 게임의 범람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피로도가 급증한 것이다. 여기에 BM에 대한 비판과 게임 이용 트렌드 변화 등 여기저기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높은 자유도와 게이머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이야기 등 장르 자체가 가진 매력은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나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모 디렉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MMORPG는 게이머들의 삶의 일부이자 오랜 시간을 들인 추억을 담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투데이신문>에서는 국산 MMORPG가 직면한 현 상황과 전망을 톺아보고, 앞으로의 돌파구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로스트아크’ 대표 이미지 [이미지 제공=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대표 이미지 [이미지 제공=스마일게이트]

【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MMORPG는 지금까지 국내 게임 시장에서 주류 장르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PC온라인 게임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모바일 게임에서도 시장 규모를 폭발적으로 키운 주역이기도 했다. 높은 자유도와 경쟁 중심의 콘텐츠, 특정 집단 단위 결속 등 국산 MMORPG의 특징적인 게임성들이 정교해진 BM(비즈니스 모델)을 만나 시너지를 창출하며 높은 매출을 일궈냈다는 분석이다. 

상업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효자 장르지만, 점차 노후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작 게임은 많이 나오고 있으나 대부분이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어 이용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트럭 시위’에서 볼 수 있듯 게임사들의 과도한 과금 정책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도 중요한 포인트로 지목된다. 

특히 MMORPG를 즐기는 유저층이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위기론의 주요 근거가 된다. 현재 국산 MMORPG의 주력 유저층은 30대로, 어린 연령층으로 갈수록 이용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래 세대를 잡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된 셈이다. 

K-게임 전성기를 이끌다

국산 MMORPG는 우리나라 게임산업과 그 시작점을 같이 한다. 1995년 출시된 넥슨의 클래식 게임 ‘바람의 나라’가 그 주인공으로, 지난 2011년에는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1998년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도 K-게임의 태동기를 함께 한 타이틀로 꼽힌다. 특히 이 게임은 국내 게임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출시 25주년을 맞이하는 현재 시점까지도 대다수의 국산 MMORPG는 ‘리니지’의 기본 설계를 따르고 있을 정도다. 이른바 K-MMORPG의 형식을 세운 셈이다.

곧 서비스 1만일을 맞이하는 ‘바람의 나라’ [이미지 제공=넥슨]
곧 서비스 1만일을 맞이하는 ‘바람의 나라’ [이미지 제공=넥슨]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가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던 게임들도 상당수가 MMORPG였다. 중국 시장에서 히트를 기록한 ‘미르의 전설2’가 대표적으로, 이미 2011년에 기준 누적 매출 2조원을 넘기는 등 ‘국민게임’ 위상을 구축했다. 이른바 ‘원조 한류게임’이었던 셈이다. 

다만 이 게임들도 노후화를 피할 수 없었던데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글로벌 대작의 등장은 국내 게임업계에도 새로운 도전과제를 던졌다. 막대한 시간과 개발비용을 들이는 하이퀄리티 경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임들이 이른바 ‘2세대 MMORPG’라고 불리는 게임들이다. 대표적으로는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 있으며, 이후 ‘테라’와 ‘블레이드 & 소울’, ‘아키에이지’ 등이 히트를 거두며 그 계보를 이어나갔다. 

시장의 패러다임이 모바일 게임으로 넘어간 이후로는 신작 출시가 뜸해졌지만, 블록버스터급 PC MMORPG를 원하는 대기수요는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다. ‘로스트아크’가 보여준 흥행이 이를 증명하는 대목으로, 엔씨소프트의 ‘쓰론 앤 리버티(TL)’도 올해 하반기 출격을 앞두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모바일서도 ‘효자상품’

국내 게임 시장의 트렌드가 모바일 게임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MMORPG는 주력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개발한 게임들이 국내로 넘어와 성과를 거뒀지만, 점차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직접 개발에 나서면서 판도가 바뀐 것이다.

그 중심에도 ‘리니지’가 있었다. 2016년 출시된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을 시작으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리니지2M’ 등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리니지2 레볼루션’의 경우 출시 첫 날 매출 79억원, 첫 달 매출 2060억원 등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리니지M’은 출시 당일 10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두 게임은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판도가 액션 RPG에서 MMORPG로 넘어오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지난 6월 서비스 6주년을 맞이한 ‘리니지M’ [이미지 제공=엔씨소프트]
지난 6월 서비스 6주년을 맞이한 ‘리니지M’ [이미지 제공=엔씨소프트]

‘리니지2M’은 두 게임을 통해 한 번 커진 판을 또 다시 키운 타이틀이다. 매출 측면에서는 ‘리니지M’의 초기 흥행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동종 장르임에도 카니발리제이션(한 기업의 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없이 1조원에 육박하는 연매출을 거둔 것이다. 

당시 엔씨소프트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리니지M’과 ‘리니지2M’ 간 이용자 중복은 약 5% 수준에 불과하다”고 전했으며,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의 통계에서는 ‘리니지2M’ 론칭 전후 ‘리니지M’의 DAU(일일 활성 이용자수)와 사용시간 등 유저 관련 지표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시장에서는 ‘리니지M’의 유저 풀을 잠식하는 대신, 새로운 소비층을 창출해냈다는 해석을 내다.

이후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트렌드는 한동안 온라인 게임 IP 이식으로 굳어졌다. 또한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게임들이 ‘리니지M’의 인터페이스와 핵심 게임성, BM 등을 답습했고, 이른바 ‘리니지라이크’라는 새로운 범주가 등장했다. 

점차 드러나는 한계

게임사 입장에서는 상업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이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실험적 시도는 리스크가 크고, 특히 중소 개발사들은 자칫 게임이 실패했다가는 회사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글플레이 최고매출 차트를 살펴보면, 최상위권 10개 게임 중 8개가 MMORPG이며 온라인 게임 IP 기반의 작품은 5개에 이른다. [이미지 출처=구글플레이 갈무리]
구글플레이 최고매출 차트를 살펴보면, 최상위권 10개 게임 중 8개가 MMORPG이며 온라인 게임 IP 기반의 작품은 5개에 이른다. [이미지 출처=구글플레이 갈무리]

하지만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이 시장에 난무하며 이용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지는 모습도 관측된다. 추억의 IP를 모바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뜨다가도, 막상 게임이 출시되고 나면 ‘리니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작 포지션에 있던 타이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대체재로 이동하는 것 역시 쉬워졌다.

20대·여성·라이트 유저 등 고객층 확장을 꾀했다 실패했던 ‘트릭스터M’과 ‘블레이스 & 소울2’의 사례가 이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트릭스터M’의 경우 ‘귀여운 리니지’를 표방하며 ‘리니지’와 접점이 없던 라이트 유저층에게 어필하겠다는 의도였지만, 페이 투 윈(Pay to Win) 기반의 경쟁 시스템 등으로 오히려 반감을 샀다.

‘블레이드 & 소울2’도 격투 게임을 방불케 하는 창발적 액션 등을 강조했지만, 막상 게임이 출시되자 여러 논란이 일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최적화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원작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이용자들의 기대와 달리 리니지라이크의 작법과 과금 요소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주 요인으로 지목된다.

더욱 큰 문제는, 미래의 주력 고객층이 될 1020세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내일연구소가 발표한 ‘2022 MZ세대 게임 이용 행태 및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선호하는 PC게임 장르에 대한 질문에 전기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45.9%가 RPG·MMORPG를 즐긴다고 답했고, 후기 밀레니얼 세대 역시 41.7%를 차지했지만, Z세대에서는 28.9%에 불과했다. 모바일게임의 경우에도 전기 밀레니얼 세대는 39.8%가 RPG·MMORPG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반면, 후기 밀레니얼과 Z세대에서는 각각 25.0%, 27.3%에 그쳤다. 

MZ세대의 모바일 게임 선호도 분석 결과 [자료 제공=대학내일20대연구소]
MZ세대의 모바일 게임 선호도 분석 결과 [자료 제공=대학내일20대연구소]

MMORPG의 하향세는 비단 국내에 한정된 문제만이 아닌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한데, 긴 호흡과 하드코어한 게임성이라는 MMORPG의 특성이 경쟁적이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짧고 가벼운 콘텐츠를 선호하는 1020 세대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아직까지 MMORPG가 막대한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20 세대와 멀어지는 최근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락인 효과’에 있다. 실제로 넥슨의 대표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즐겼던 유저들이 성장해 경제력을 갖게 된 이후에도 꾸준히 플레이를 이어오며 게임을 지탱하고 있다. ‘리니지M’의 흥행 비결도 ‘리니지’의 향수를 가진 이용자들 때문이었고, 많은 게임사들이 유명 온라인 게임 IP 기반의 게임을 내놓는 것 또한 여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대다수 게임사들은 주력 매출원인 30대 이상 성인을 타겟으로 게임을 설계하고, 또한 출시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점차 Z세대를 비롯해 알파세대 등 미래 세대가 점차 경제력을 갖고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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