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새벽 택시기사 고 방영환씨 영면
부당해고 승소판결받았지만…사측 변화 없어
아직 장례 안 치러…유족 “고인 뜻 이룰 것”
전액관리제 시행에도 ‘변종 사납금제’ 만연해
노조 “임금체불 문제 해결·월급제 정착돼야”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앞 분향소에 놓여진 故(고) 방영환(55)씨의 영정사진.&nbsp;ⓒ투데이신문<br>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앞 분향소에 놓여진 故(고) 방영환(55)씨의 영정사진.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지하철과 버스가 다니지 않는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혹은 급한 일이 있거나 무거운 짐이 있을 때 우리는 대개 택시를 이용한다.

이처럼 편리하게 이동하라고 운영되는 교통수단이지만, 그 안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사투’의 현장이나 다름 없다.

일일 19만여원 일부 택시회사가 노동자에게 ‘기준운송수입금’이라는 이름으로 걷는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매일 미친 듯이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택시노동자는 난폭운전, 총알운전 등 무리하게 운전해왔고 건강을 위협하는 극도의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는 ‘사납금제’라고 불리는데, 택시회사가 기사로부터 하루 수익 일정 금액을 떼어가는 제도다. 오랜 시간 동안 택시업계에 뿌리내린 이 제도는 노동자를 과로와 난폭 운전 등으로 내몰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2020년 1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통해 폐지됐다.

이후 수익금을 회사에 전액 납부하고 일부를 노사 합의로 정한 비율에 따라 받는 전액관리제(월급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름만 바꾼 ‘변종 사납금제’가 슬금슬금 운영되기 시작했다. 회사가 초과 수익금을 기사와 배분하겠다는 이유로 ‘기준금’을 설정하고는 이를 충족하지 못할 시 노동자의 고정임금, 상여금에서 공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택시회사들은 사납금제가 없으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게 되고 이가 수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택시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승객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서라 택시발전법과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한 대로 근로계약을 맺고, 기준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앞에 마련된 故(고) 방영환(55)씨의 분향소. ⓒ투데이신문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앞에 마련된 故(고) 방영환(55)씨의 분향소. ⓒ투데이신문

이 같은 반대의 목소리에 최전방에는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55)씨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 해성운수 측에 완전월급제 시행을 요구하며 택시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안타까운 비극이 시작된 것도 바로 그가 지난 2020년 2월 해성운수로부터 사납금제에 대한 반발로 인해 부당해고를 당하게 된 사건부터다.

방씨가 소속돼 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에 따르면 당시 회사는 방씨에게 전액관리제라는 가면을 쓴 사실상의 사납금제가 담긴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해성운수의 기사는 매일 실 영업시간 즉, 손님이 탑승해 미터기가 작동한 시간으로 매일 5시간 30분 이상을 달성해야 했다.

만일 실 영업시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실제로 기사가 몇 시간을 근무했는 지와 상관없이 일 노동시간 6시간 40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납금제의 기준이 됐던 ‘최소금액’과 유사하게 ‘최소 손님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내세운 뒤, 하루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시 월급에서 공제하는 편법 사납금제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를 본 방씨는 사측이 제시한 계약서가 최저임금법 등을 위반한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이에 해성운수는 서명하지 않는다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통고서를 네 차례 발송한 뒤, 방씨를 해고 처리했다.

이후 그는 복직을 위한 투쟁에 돌입했고,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승소판결을 받아 복직했다.

하지만 그에게 다시 돌아온 건 소정 근로시간을 하루 3.5시간으로 축소하는 불이익이 담긴 근로계약서였다. 심지어 실 노동시간을 적용해 급여 100만원만 지급하기까지 했다. 이에 반발한 방씨는 체불임금 지급과 월급제 적용을 요구하며 올해 2월부터 해성운수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실제로 올해 7월 방씨가 받은 급여는 기본급, 근속수당 등을 모두 더해도 세전 103만2129원에 불과했다. 더불어 사측은 집회 중인 방씨에게 폭언 및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씨는 △택시현장 완전월급제 정착 △불법 갑질 대표 처벌 △체불된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227일째 시위가 이어지던 지난 9월 26일, 방씨는 회사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승소판결 결과를 손에 들고 당당히 직장에 복귀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분신하는 모습을 발견한 회사의 한 임원이 급히 소화기를 가져와 불을 끄려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그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열흘 뒤 지난달 6일 새벽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죽음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노동당, 유족 등으로 구성된 공동 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꾸려졌다. 공대위는 사망 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방씨가 원하던 회사의 사과나 법을 어긴 근로계약에 대한 처벌 소식은 아직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고인의 뜻을 함께 하고자 책임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노동청 등 관리당국의 조사가 있을 때까지 장례를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측은 유족에게 연락조차 취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과를 요구하는 노조와의 교섭도 미루고 있는 상태다.

이외에도 공대위는 공공운수노조 지역본부사무실, 한림대학교 한성심병원 앞 분향소를 설치해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 7시 ‘방영환 열사 분신 사태 책임자 처벌 투쟁 문화제’를 열고,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서 농성 등을 이어가고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 앞 농성장에서 만난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이삼형 정책위원장. ⓒ투데이신문<br>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 앞 농성장에서 만난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이삼형 정책위원장. ⓒ투데이신문

본보와 만난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이삼형 정책위원장은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 앞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고인을 애도하며 택시노동자들의 임금 등 처우 개선을 소망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택시 사업주들은 사납금제를 도입해 경영 리스크를 자신들이 부담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싶어 한다”며 “이는 엄연히 법을 어기는 것인데 정작 처벌하는 기관이 손을 놓고 있으니 변종 사납금제가 업계에 만연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서울시·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의 최저임금법·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전수 조사 △사업주 형사처벌 △체불된 임금 지급 △월급제 정착 △유족 측에게 진심 어린 사과 등을 촉구했다.

그는 고인의 죽음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비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이 안타까운 사실을 세상에 많이 알려야 하는데, 저희 노조가 부족한 측면도 있고 세상도 많이 무감각해졌다”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과 방씨의 사망과 관련해 투데이신문은 해성운수 측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故(고) 방영환(55)씨가 생전 서울시청 앞에서 법 위반 택시사업주 처벌을 촉구하며 1인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br>
故(고) 방영환(55)씨가 생전 서울시청 앞에서 법 위반 택시사업주 처벌을 촉구하며 1인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노조는 그의 이름 뒤에 ‘열사’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열사란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을 의미한다.

방씨는 누구보다 택시노동자 동료들을 사랑했고,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앞장섰다. 부적절한 회사 계약에 반기를 들고 투쟁했고, 떳떳하게 사측과의 싸워 이기고 돌아와 노동자들의 희망이 됐다.

하지만 그는 하늘의 별이 되며 우리 곁에 열사로 남았다. 방씨가 생전 ‘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 달라’라는 말을 남기고 간 만큼, 공대위는 ‘있는 법’을 지켜달라는 호소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공대위는 “많은 분들이 택시를 자주, 친근하게 이용하시는 것에 비해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부족하다”며 “교통사고 등 여러 사건, 사고의 원인이 변형된 사납금제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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