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26대 사장으로 박민 취임
취임과 동시에 파격 인사개혁 단행
내·외적 잡음 잇따라...사퇴 비판도
취임 하루 만 대국민 기자회견 열어

13일 서울 영등포구 KBS본사에서 열린 제26대 사장 취임식에서 박민 사장이 취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KBS]<br>
13일 서울 영등포구 KBS본사에서 열린 제26대 사장 취임식에서 박민 사장이 취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KBS]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재창조 수준의 조직 통폐합과 인력 재배치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한 박민 KBS 사장이 출근 첫날과 동시에 주요 간부 및 뉴스·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전면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인사 물갈이에 돌입했다.

지난 13일 박 사장은 서울 영등포구 KBS본사에서 열린 제26대 사장 취임식에서 “KBS 위기 원인은 내부에 있다”며 “KBS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능력과 성과, 효율성이 조직 운영 원칙이 되는 상식적인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창조 수준의 조직 통폐합과 인력 재배치를 주저해서는 안되며 자기 혁신이 선행되면 KBS를 향한 국민 신뢰는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힘들지만 의미 있는 도전인 만큼 부족하지만 앞장서서 외풍을 막고 장애물을 제거하겠다”고 덧붙였다.

외부 출신이 KBS 사장이 된 건 2003년 정연주 전 사장 이후 20년 만이다. 그러나 취임과 동시에 KBS 내부적으로 인사이동이 대거 이뤄져 내·외적으로 발생되는 잡음 역시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씨 [사진제공=뉴시스]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씨 [사진제공=뉴시스]

‘칼바람’ 부는 KBS

14일 KBS에 따르면 박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4년간 ‘뉴스9’를 진행해 온 이소정 앵커와 제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씨를 하차시켰다. 이밖에도 본부장, 센터장, 실·국장, 부장급 인사 총 72명의 인사도 함께 냈다.

이에 주씨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오늘 오전 KBS에서 연락을 받았다”며 “이제 회사에 오지 말라는, 방송을 그만두라는 것이며 주진우 라이브에서 잘린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난 토요일 방송에서 오늘 오후에 돌아온다고 했는데, 마지막 방송도 못해 청취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해당 간부는 비상식적인 일이고,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안 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먼서 “사장이 워낙 강경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주진우 라이브’에 제가 없다. 앞으로 ‘주진우 라이브’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으나 곧 사라질 운명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주진우 라이브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고 끝맺었다.

매일 오후 5시 5분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주진우 라이브’는 이날부터 ‘특집 1라디오 저녁’으로 대체됐다. 기존 진행자인 주씨 대신 김용준 KBS 기자가 진행자로 투입됐다.

이 밖에도 KBS는 주요 뉴스 프로그램 앵커 및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대거 갈아 치웠다.

KBS 1TV에서 방송하는 ‘뉴스9’의 평일 새 앵커에는 박장범 기자와 박지원 아나운서가 투입됐다. 주말 앵커에는 김현경 기자와 박소현 아나운서가 발탁됐고, ‘뉴스광장’의 평일 남자 앵커로는 최문종 기자, 여자 앵커는 홍주연 아나운서가 담당한다. 홍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뉴스9의’ 스포츠 뉴스는 기존 ‘뉴스광장’ 앵커였던 이윤정 아나운서가 맡는다.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 ‘사사건건’은 ‘뉴스9’ 앵커를 했었던 송영석 기자가, ‘일요진단’은 도쿄 특파원과 경제부 팀장을 역임한 김대홍 기자, ‘남북의 창’은 사회부 팀장 등을 역임한 양지우 기자가 진행한다.

KBS는 “KBS뉴스9은 물론 주요 종합뉴스 등의 앵커를 교체함으로써 균형 잡힌 뉴스로 공정성 확립을 통해 KBS의 위상을 되찾아 갈 것이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 취임에 항의하는 피켓팅 [사진제공=전국언론인노동조합 KBS 본부]
박민 취임에 항의하는 피켓팅 [사진제공=전국언론인노동조합 KBS 본부]

내부 상황은 ‘쑥대밭’

대대적인 개혁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입장문을 통해 박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충분한 숙의 없이 진행된 인사 개혁 단행이라며 적극적으로 반발에 나선 것이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박민 사장 임명 재가 이후 KBS 내부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말로 ‘점령’ 이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장 임명 직후부터 KBS 내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제작자율성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는 박민씨가 과연 사장 자격이 있는가”라며 반문하며 “야밤에 군사작전 하듯 KBS를 점령한 박민 사장은 취임식에서도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KBS 강성원 본부장은 “취임 첫날 KBS의 주요 시사 프로그램이 별다른 설명도 이유도 없이 편성에서 사라지는 일이 시작되고 있다”며 “지난 15년간 부침의 역사 속에 쌓아왔던 KBS 자산과 시스템이 이렇게 망가지고 부서지기 시작했다”고 개탄했다.

이어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평생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이라고는 고민해 본 적 없는 사람, 공정을 고민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 언어를 무기로 점령군처럼 KBS에 입성했다”고 비판하며 “언론 자유가 결국 승리해 왔다는 것,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결국 이길 것이라는 그 역사의 단순한 사실을 우리 다시 투쟁으로 증명하자”고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도 박 사장을 향해 “군사 쿠데타를 방불케 한다”며 거들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 대책회의에서 “방송 진행자, 방송 개편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진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박민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KBS 점령작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다. 진짜 군사쿠데타를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조승래 의원도 같은 회의에서 “민주당이 왜 방송 3법을 통과시켜 공영방송을 독립시키려 했는지 지금 KBS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며 “박민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 보장하는 방송법과 KBS 편성규약 노조 단체협약을 헌신짝 취급하며 점령군처럼 방송 현장을 짓밟고 있다. 여권에 비판적 목소리 전부 차단하고 케이를 정권의 나팔수로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KBS 박민 신임 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KBS 박민 신임 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머리 숙인 박민

KBS와 관련해 공영방송 신뢰도 추락에 대한 잇따른 지적에 박 사장은 “효율적인 공영 방송으로 거듭나겠다. 국민의 회초리를 맞을 각오가 돼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 사장은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가진 기자회견 자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같이 발언했다.

그는 “저 자신과 임원은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임금 30%를 삭감하겠다”며 “나머지 간부들도 동참하도록 하고, 명예퇴직을 확대 실시해 역삼각형의 비효율적인 구조를 개편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대만큼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구조조정도 적극 검토하고, 앞으로 공영방송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KBS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KBS는 지난해 수신료 7000억원을 받았지만, 방만 경영으로 100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도 8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현재 수신료 분리 징수로 과거 IMF보다 비상 상황을 맞았다. 기존 경영 방식으로는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을 만큼 특단의 경영에 나서겠다”고 했다.

박 사장을 이를 위해 인사시스템을 전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입사하면 능력과 성과 상관없이 승진하는 직원이 없도록 할 것이며 제작비 낭비도 원척적으로 차단할 것”이라며 “순번식 제작 관행을 없애고 능력 있는 연출자를 기용하고, 제작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그동안 KBS가 잘못한 점을 사과하고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공영방송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하고 국민 신뢰를 잃어버려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조합원들은 기자회견장 앞에서 ‘대국민 사과 말고 사퇴를 선언하라’, ‘진행자 교체, 프로그램 폐지. 방송독립 파괴 규탄한다’ 등의 피켓을 들고 직접 항의했다.

한편 박민 제26대 KBS 사장은 지난 1992년 문화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과 정치부장, 편집국장들을 거쳤다. 이후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및 관훈클럽 총무 등을 역임했다. 임기는 오는 2024년 12월 9일까지로 이는 김의철 전 KBS 사장의 잔여 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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