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재입사 후 초고속 승진 
‘수소밸류체인’에 그룹 역량 집중
지분 확대 통한 경영권 확보 숙제

HD현대 정기선 부회장이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 2023’에서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HD현대 정기선 부회장이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 2023’에서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HD현대의 정기선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의 막을 올렸다. 정 부회장은 사장 승진 이후 조선·정유·건설 등 기존 사업을 공고히 해왔으며 수소, 인공지능(AI) 등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지난 10일 정기선 사장의 부회장 승진 등의 내용을 포함한 그룹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와 함께 HD현대인프라코어 오승현 대표이사 부사장과 HD현대중공업 강영 부사장이 각각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로 정 부회장은 HD현대 권오갑 회장과 함께 회사를 이끌게 됐다. HD현대는 지난 30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지만 정 부회장이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고 초고속 승진을 이어오면서 사실상 오너경영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1982년생인 정 부회장은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HD현대 최대주주인 아산재단 정몽준 이사장의 장남이다. 정 부회장은 2009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재입사했으며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등을 거쳐왔다. 

HD현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대기업집단 자산총액 순위에서 9위에 올라있다. 주요 산업은 조선, 정유, 건설 등으로 지난해 연결 기준 연 매출 60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주요 해외 사업을 총괄하며 경영자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는 평가다. 실제 그는 2015년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와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사업을 이끌어 합작조선소 IMI 설립을 주도했다. 또 2021년에는 아람코와 수소 및 암모니아 관련 MOU를 체결했으며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만나 양자 간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수소에너지와 바다의 잠재력에서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21년에는 ‘수소 드림 2030’을 선포하고 수소의 생산부터 운송, 저장, 활용 등을 포괄하는 ‘수소밸류체인’ 구상을 공개했으며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열린 CES 2023에서는 ‘오션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은 친환경 에너지 생산에서부터 운송 및 활용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오션 모빌리티 ▲오션 와이즈 ▲오션 라이프 ▲오션 에너지 등을 핵심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 정 부회장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기후 변화 등 인류에게 닥친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다가 품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라며 “HD현대는 퓨처빌더(Future Builder)로서 바다의 근본적 대전환, 즉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인류 영역의 역사적 확장과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성장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정 부회장은 인재영입을 중요시하고 수평적 조직문화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실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정 부회장의 경영철학과 미래사업 비전은 기존 중공업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벗어내고 친환경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지분 확보를 통한 실질적인 경영권 승계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아산재단 정몽준 이사장은 HD현대 지분 26.6%를 보유, 탄탄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정 부회장의 지분은 5.26% 수준이다. 

계열사 합병을 통한 지분율 확보 방식은 삼성물산-제일모직 사례 이후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정 부회장이 정 이사장의 지분을 증여 받거나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30억원을 초과하는 대주주 경영권 주식에 대해 60%까지 과세하도록 돼 있다. 정 부회장의 상속세는 6000억원에서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최장 10년 분할 납부 한다고 해도 많게는 매년 800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계열사 상장(IPO)을 통한 자금 확보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올해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유가증권시장 상장 시점으로 내년 상반기를 지목한 바 있다. 조선업계 호황과 함께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시장 침체로 번번이 철회해야 했던 HD현대오일뱅크의 상장도 다시 한 번 논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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