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허위병가·근무지 이탈 등 ‘도덕 불감증’ 사례 다양
근무 중 골프 치고·경마장 가고...무단 결근인데도 월급 챙겨
끊이지 않는 공금횡령...제 식구 챙기기 등 이익 추구 혈안

국민 일상에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몸집에 비해 재무구조가 부실한 경우가 늘고 있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도덕적 해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8년 58%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는 비기축통화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것이고, 향후 증가 속도는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한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기관 대수술이 필요한 때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된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 악화 문제와 방만경영 및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3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업무태만, 기강해이, 근무 시간 중 골프 및 경마장 이용 등 다양한 도덕적 해이 사례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공공기관은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공공기관에 대해 국민들은 ‘부패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월 발표한 공기업에 대한 부패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중 공기업이 ‘부패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2020년 39.2%, 2021년 58.9%, 2022년 45.6% 수준이다. 일반 국민은 공기업의 부패가 행정기관 및 민간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국정감사나 9월 감사원이 발표한 ‘출연·출자기관 경영관리실태’ 감사 결과 보고서에 드러난 공공기관의 비위 행각을 보면 도덕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준공무원인 공공기관 직원들이 일상적인 비도덕적 행위를 일삼거나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다 무더기로 적발되는 등 취약한 감시 시스템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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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음주운전...허술한 관리에 징계 피하고 승진까지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다. 하지만 공공기관 소속 직원들의 음주운전 행위가 여전히 잇따르고 있다. 더군다나 음주운전으로 행정처분을 받고 해당 사실을 소속 기관에 알리지 않아 징계 조치를 피하기도 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환경공단 등 18개 기관에서는 총 24명(팀장급 이상)이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 또는 취소 등 수사기관의 행정처분을 받고도 소속 기관이 인지하지 못해 징계처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공단 등 18개 기관은 소속 직원의 음주운전 비위 발생 사실을 자진 신고하도록 하거나, 직원으로부터 운전경력증명서를 제출받아 확인하는 등의 음주운전 비위 자체 점검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24명 중 환경공단, 고전번역원, 해양진흥공사, 지능정보사회진흥원 등 6명의 직원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징계처분 대상인데도 지난해 10월 징계 시효가 넘거나 퇴직해 처분을 내리지 못했다.

심지어 환경공단과 국방과학연구소, 가스안전공사, 과학기술원, 국제협력단, 보건산업진흥원, 산언인력공단, 원자력안전기술원 등 8명은 음주운전 이후 징계처분을 받지 않은 채 승진하거나 상위 보직에 임용됐다. 내부 견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근무 시간 중 골프·경마장 가 물의...남의 자료 대놓고 베끼끼 국감 도마에

불성실한 근무 행태와 근무지를 장기간 무단으로 이탈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며 “농식품 벤처육성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 사업이행 성과 관리·감독, 현장모니터링, 국고지원금 집행 및 정산관리 등 역할을 하는 농진원 직원의 도덕적 해이 등 총체적 관리 부실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이행 성과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농진원은 벤처기업에서 제출한 사업 계획서와 현장 모니터링 사진이 100% 동일하다”며 “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고 베낀 것”이라고 꼬집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도로교통공단 임금피크제 1년차 직원 24명 중 13명은 6개월간 거의 출근하지 않거나 주 1회 출근하는 등 장기간 무단결근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직원 9명은 지난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재택 근무지나 출장지를 무단 이탈해 인근 골프장을 이용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도 지난해 2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5개월간 9차례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경마장에 출입, 총 1089장 금액으로는 377만원에 달하는 마권을 구매하고 경마 경주를 관람하고 근무시간 종료 때까지 근무지로 복귀하지 않았다.

서류를 허위로 조작해 병가를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3개 기관 직원 3명은 문자메시지 조작 등으로 허위 증빙을 제출해 병가를 사용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무실 내부.[사진출처=뉴시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무실 내부.[사진출처=뉴시스]

출장비는 빼돌리고 가족 식사·양육비까지 부당하게 챙겨

공금을 눈먼 돈으로 여긴 공공기관 직원들도 대거 적발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 등 9개 기관에서 총 38명의 임직원이 413건의 출장에 대해 정상적으로 수령 해야 할 출장비보다 2641여만원을 과다하게 챙긴 사실이 확인됐다.

이 중 1인당 부당 수령한 출장비가 100만원 이상으로 확인된 캠코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56회에 걸쳐 출장을 허위로 신청하거나 5회에 걸쳐 정산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비 약 950만원을 부당하게 수령했다.

창업 지원 전담 공공기관인 창업진흥원(창진원)에서는 한 직원이 법인카드로 개인 차량의 전기 충전비를 결제하거나 초과 근무 수당을 부정하게 수령하기도 했다.

강원랜드에서는 직원 식당에서 가족에게 사원증을 사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총 181회의 식사를 이용하게 하고 서류를 조작해 동거·양육하지 않는 자녀의 양육비를 부당하게 챙긴 사례도 있었다. 더불어 직원 6명이 직원, 가족, 지인들의 저녁 뷔페 비용을 누락 또는 취소하는 방법으로 불법 이용한 사례가 드러났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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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알바 가족 우선 채용...도 넘은 ‘제식구 챙기기’

직원 가족과 퇴직자 등 내부 관계자들에게 일자리나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는 이제 흔한 비위 사례 중 하나가 됐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가기술자격시험을 관리 감독하는 시험위원에 직원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 등 가족을 위촉했다.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치를 때마다 직원 배우자 328명을 시험위원(감독관 등)으로 위촉해 1회당 평균 24만원씩 39억원을 지급했다.

환경부 산하에 있는 한국환경공단은 과도한 전관예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공단은 퇴직자가 설립한 폐비닐업체와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위탁계약을 체결하면서 기획재정부가 정한 용역 단가보다 인건비를 과다 책정해 총 71억원을 지급했다. 환경공단은 퇴직 당시의 보수 수준 등에 소정의 인상률을 적용한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해 과도한 인건비를 지급한 것으로 확인된다.

신용보증기금(신보)은 대표이사 및 이사로 근무하는 법인과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는데도 신보 사우회가 100% 출자하고 퇴직자가 대표이사인 회사와 수의계약을 맺었다. 이에 해당 회사는 10여 년간 237억원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보장받고 있고 신보는 해당 회사에 매년 채용요청자 명단을 제공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71명을 수탁업무 관리자로 채용하는 등 퇴직자 재취업 수단으로 활용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출연금 출자 기관에 자사 퇴직자 총 8명을 추천해 채용되도록 했다. 한수원은 에너지·전력산업 기반연구사업 협약서에 따라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에너지경제연구원(에너지연구원)에 매년 25~30억원 사이의 사업비를 지급했다.

견제 시스템 한계...공공에 대한 인식 살펴 공공기관 종사자 뽑아야

정치권에서는 공공기관 전반에 퍼져 있는 도덕적 해이에 대해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쇄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인사규정을 위반한 것은 내부적으로 도덕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방증”이라며 “각종 사건·사고로 국민 신뢰가 바닥을 친 만큼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임원들이 기강해이가 없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당부도 나온다. 한국의희망 양향자 의원은 기술보증기금 국정감사에서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최근 3년간 적발된 비위행위 중 성희롱이 차지하는 비율이 50%다. 금품 등 수수, 직장 내 괴롭힘 등 기본의 비위행위가 심각한 상황인데 특히 징계를 받은 인원들은 모두 임원 및 간부급이었다”고 꼬집었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해마다 심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한 전문가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도덕적 해이가 사회의 병폐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임도빈 교수는 “국가나 공동체보다 개인을 더 중요시 여기고,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니까 최소한의 일을 하고 이익을 내려는 것이 시대적 변화인 것 같다”며 “공공에 대한 의식, 국가관을 많이 보고 선발을 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임 교수는 “김영란법이나 윤리강령 등 여러 가지 내부 견제 시스템이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강력한 징계 등의 일벌백계이고 무엇보다 ‘국민 세금으로 먹고 살고 있다는’ 책무감을 갖춘 건강한 조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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